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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7.14 17:23 수정 : 2010.07.14 17:23

원기업 제공

[매거진 esc]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 극
무뚝뚝한 디자인 벗어나는 전봇대 vs 디자인의 독창성 뛰어난 등대

지난주 전시장에 작품을 설치하면서 조명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 까칠한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을 위해 콘크리트 천장에 구멍을 뚫어 조명을 달았더니 작품이 한결 사랑받는 듯 보였다. 알전구, 할로겐 조명, 형광등 모두모두 고마웠다. 조명기구를 보면서 ‘형설지공’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났다. 반딧불이를 두 손에 동그랗게 모아서 빛을 만들어 공부를 했다니. 인간의 삶에서 빛이란 그토록 간절한 요소일까.

디자인 역사에서도 스탠드 조명은 20세기 초 유럽 디자인의 꽃이었다. 작고 가벼웠고 제작 기술도 간편했다. 특히 책상 위에 놓는 테이블 램프는 가정에 대량 공급할 수 있는 표준화, 대중화된 사물로 최적격이었다. 지금 대중화된 조명기로는 거리의 전봇대가 대표적이다. 전봇대는 어두운 밤거리를 다정하게 밝혀주지만 외모는 무뚝뚝한 콘크리트 자체다. 전봇대의 유일한 발주처는 한국전력이다. 키는 10m가 넘고 전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어지럽게 몸 위에 붙어 있는 노란 전단지, 빨간 포스터가 전봇대의 몸통을 다 가린다. 그런데 전봇대가 없다면 어떻겠는가. ‘집 나간 우리 집 강아지를 찾아주세요’라는 전단지를 어디다가 붙일 것인가 말이다.


동해지방해양항만청 제공
공공디자인의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면서 전봇대 디자인도 이런 무뚝뚝함을 벗어나고 있다. 국내에 콘크리트 전봇대를 처음 제작한 기업 중 하나인 원기업은 2009년 겨울 콘크리트에 화강암·대리석 등을 넣어 독특한 질감과 색깔을 낸 ‘디자인 폴’을 개발했다. 이 ‘디자인 폴’은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을 받았다. 도로용 가로등, 보행자용 보안등, 교통표지판 등에 폭넓게 이용된다. 전봇대의 원래 얼굴은 밋밋하지만 벽화 등으로 표정도 바꾼다. 부산 중구청은 지난해 희망근로사업의 일환으로 전봇대 벽화 조성 사업을 벌였다. 전봇대에 남아 있던 흔적들을 다 없애고, 미대생들이 그림을 그려 넣었다.

전봇대가 육지의 흔한 조명이라면 바다에는 귀한 등대가 있다. 최근 해발고도 67m의 묵호항 동문산에 위치한 묵호등대를 다녀왔다. 무늬 없이 단순하게 쭉 뻗은 원형 구조는 등대의 탑을 위해 존재한다. 바다로 빛을 발사하는 등명기가 달린 등대 윗부분인 등롱에는 방향을 알리는 나침반이 뱅그르르 돌아간다. 하얀 원형 콘크리트의 묵호등대는 위기에 빠진 바다 사나이들의 생사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듯 침착한 외모였다.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 극
전봇대와 등대는 빛을 내는 기능 면에서 닮아 있다. 둘 모두 빛을 통해 시야를 밝게 한다. 등대 또한 전봇대처럼 바닷가의 공공디자인이다. 대항해 시대 새로운 세계에 탐닉한 멋들어진 항해사들이 아니더라도 오징어배의 사람들, 해군들 모두 등대를 바라보며 바다의 밤을 보낸다. 등대는 아직 빛이 있다고, 여기를 보고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등대 디자인은 전봇대와 달리 ‘희귀성’과 ‘독창성’이 있다. 국내에선 최초의 콘크리트가 실험된 건물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인 1904년 첫 불을 밝힌 등대부터 2013년 경주에 건설될 예정이라는 첨성대 모양 등대까지 돌담과 창문, 정문 하나하나가 특유의 품격과 지역적 특색을 지녔다. 조명과 등대는 이렇게 다르지만, 빛을 발한다는 점에서 참으로 호혜적인 디자인이다. 적어도 빛을 비추는 순간만큼은, 남을 생각한다.

현시원 독립 큐레이터 sonvadak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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