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곰사장의 망해도 어쩔 수 없다
근래 붕가붕가레코드에서 일어난 일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장기하의 금주 선언이다. 이유는 7월 말의 지산 페스티벌에서 거의 반년 만에 무대에 서게 되어 몸을 좀 만들어두겠다는 것. 술 좀 안 마실 수 있지 그게 뭐 대단하냐 싶기도 하겠지만, 그건 우리 회사의 음주 문화에서 장기하가 차지하는 위치를 모르고 하는 얘기다. 그는 절대로 술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는 일이 없다. 따라서 그가 있다는 얘기는 곧 아무리 늦게 마셔도 같이 마셔줄 사람이 있다는 게 된다. 술자리 지속의 보증서 같은 인물인 것이다. 이런 그가 두 달 동안 금주 선언을 한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본인도 스스로를 믿을 수 없었던 듯, 트위터에서 일만오천 팔로어를 대상으로 공개적으로 금주를 선언하고 만약 맹세를 어길 시에는 홍대 앞 길거리 한복판에서 곤장을 맞기로 했다.(곤장은 내가 치기로 했다.) 그리고 31일째, 그는 금주에 성공하고 있는 중이다.회사 제일의 호주가가 이렇게 나오니 나도 왠지 모르게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그간 늘어난 뱃살 중 팔할은 술이지만 나름 정당화할 이유가 있었다. <수호전>을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되는 패턴이, 처음 만난 호걸들이 죽도록 싸우다가도 결국 화해에 이르러 “사해는 모두 형제”라며 하는 일이 술과 고기를 시켜 놓고 밤새 창봉 쓰는 얘기, 주먹질하는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싸움질 얘기 대신 음악에 대한 얘기를 한다는 것만 다르다 뿐이지 음악 사업을 하는 것도 이와 매한가지라 생각해 왔다. 즉, 술은 음악 하는 사람끼리 서로 배짱을 맞추기 위한 필수 요소라는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따져보면, 사실 붕가붕가레코드에 술을 즐기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심지어 태반은 맥주 한 잔에 혼미한 지경에 이르는 사람들이다. 구성원들 중 이런 이들이 점차 늘어나기도 하고 만날 술 먹는 것도 지겹고 해서 요새는 술자리가 계속 줄고 있는 상황인데, 사실 일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관계가 딱히 소원해지지도 않았으니, 결국 술이 사업을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불어나는 체중과 지방간 등을 고려하여 나도 술을 끊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장기하한테도 경고한바, 일시적 금주의 끝은 급격한 다이어트 뒤의 요요현상처럼 나중에 더 퍼먹게 되는 불상사를 초래할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술은 (그리고 고기는) 내 인생의 큰 낙이다. 즐겁게 사는 게 인생의 제일 목표인 나로서는 이걸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다. 즐거움과 건강을 동시에 획득하고 싶다. 그래서 김창완 선생님이나 크라잉넛의 한경록 형같이 나 같은 풋내기는 비교도 안 되는 음주생활을 영위하시며 건강도 지키시는 호주가 선배님들을 본받기로 한다. 그분들을 보면 술을 많이 드시고서도 꼬박꼬박 운동을 하시더라. 이것이 바로 지속가능한 음주생활의 비결, 그래서 운동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잘될지 모르겠다. 나도 곤장 맞기를 내걸어볼까?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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