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7.21 17:38
수정 : 2010.07.21 17:38
[매거진 esc] 책에서 배우는 위로의 기술
“나는 그때 변변찮은 소설을 쓰고 있었고, 몇 군데의 출판사에서 거절 편지를 받았고, 문학상 응모에는 매번 떨어졌다. 책을 사면 늘 저자의 나이를 계산해봤다. 몇 년생인지, 첫 번째 책은 몇 살에 펴냈는지 늘 확인하곤 했다. ‘이 사람은 서른두 살에 첫 책을 냈군. 아직 내겐 7년이 남았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거나 ‘스물두 살에 데뷔하다니, 천재네, 천재. 부럽군’이라며 나의 재능 없음을 한탄했다.”
<대책없이 해피엔딩>에 소설가 김중혁이 쓴 글을 읽고, 아이고,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 하고 혼자 웃었다. 좋아하는 작가가 ‘잘 풀리기 시작한’ 나이가 언제인지를 셈하는 일은 그의 불행의 시간을 헤아리는 일이기도 했다. 딱하게도 타인의 행복보다는 불행에 이입하기가 더 쉬웠고, 나 혼자 불행의 도가니에서 발버둥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책의 본문보다 책날개의 저자 소개와 몇몇 숫자들에 먼저 눈길을 주곤 했던 이유는, 부끄럽게도 그랬다. 타인의 행복에 자극받기보다 타인의 불행으로 이해받고 싶었다. 이런 고민, 이런 외로움은 ‘예술 하고 싶어요’라는 뜻은 아니다. 기껏 고생해서 들어간 회사, 한참을 준비해서 시작한 공부, 오랜 망설임 끝에 결정한 결혼. 뭘 해도 ‘여기가 내 자리 맞나’ 하는 고민에 시달린다. 그러다 보니 잘나가는 친구의 자랑을 듣기보다 막장드라마 보면서 손가락질하는 게 정신건강에는 더 낫다.
맬컴 글래드웰은 <그 개는 무엇을 보았는가>에서 대기만성형 예술가에 대해 논한다. 10년 동안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완성하지 못했던 마크 트웨인이나, 20대보다 60대에 이르러 천재를 꽃피운 세잔이 그 주인공이다. 문제는 우리가 ‘몇년을 견디면’ 안정을 찾는지, 인정을 받는지 미리 알 길이 도통 없다는 데 있다. 아무리 속도가 나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노력하는 일은 그래서 언제나 힘들다. 잘되지 않을 땐, “아이고,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 한숨 한 번 쉬고 다시 하던 일로 돌아가시라. 김중혁 작가처럼 언젠가 훗날, 당신도 지금 이 시절을 웃으며 추억할 날이 오겠지. 그 사실을 믿고 꾸준한 자에게 복이 오는 법이다.
이다혜/<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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