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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ECHO)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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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카메라 히스토리아
20세기 가장 아름다운 여성은 누구일까? 영국의 연예전문지 〈OK〉가 지난 1일 2000명의 ‘여성’ 독자들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1위는 ‘오드리 헵번’이었다. 지난날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여성은 오드리 헵번이 유일하다. 친구들이 소피 마르소와 피비 케이츠에 열광할 때도 흔들림이 없었다. <로마의 휴일>(1953년)에서 앤 공주 역을 맡았던 오드리 헵번은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짧은 파마머리를 하고 젤라토를 먹는 오드리 헵번의 모습에 반하지 않았던 남자가 어디 있으랴. 〈OK〉의 설문조사 결과만 놓고 보더라도 오드리 헵번은 성별 관계없이 사랑을 받았던 스타였다. 아내가 미용실에 간다고 하면 지금도 “그럼 짧게 깎고 헵번 스타일로 해보지”라고 말이 튀어나온다. 나의 일관된 권유에 대한 아내의 대답은 항상 똑같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또 한다. 그 머리가 얼마나 관리하기 힘든데….” 사실 ‘헵번 스타일’은 디자이너 지방시의 작품이지만 헵번 스타일의 9할은 <로마의 휴일> 앤 공주 이미지다. 사춘기 시절 ‘주말의 명화’에서 처음 봤던 <로마의 휴일>을 지금도 몇 번이나 다시 볼 정도다. 사진에 빠지면서 더 몰입했다. <로마의 휴일>의 사진기자 어빙 래도비치(에디 앨버트)가 들고 다녔던 (앤 공주를 찍던) 조그만 라이터 모양의 카메라 때문이었다. ‘몰카’ 용도로 딱인 이 카메라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일본 카메라 박물관 스파이용 카메라 전시부스에 “<로마의 휴일>에 출연했던 카메라”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 ‘에코(ECHO)8’을 직접 봤을 때 느꼈던 기쁨이란. 어떻게든 구해보려고 충무로와 남대문, 카메라 사이트를 뒤질 때는 볼 수가 없었다. 일본 카메라 박물관에서 실물을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도대체 이런 카메라를 누가 만들 생각을 했을까 싶었는데 역시 일본이다. 스즈키 광학에서 1951년부터 56년까지 생산했다. 에코8의 외형만 보면 지포 라이터와 비슷하다. 하지만 내부는 카메라 기능에 충실하다. 라이터만한 크기에 온전한 카메라 기능을 모두 집어넣으려니 작은 필름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필름이 워낙 작아 16㎜ 필름을 반으로 잘라 썼다. 한 컷의 크기는 6×6㎜, 새끼손톱보다 작다. 15㎜ 고정렌즈가 달려있고 최소 조리개 수치는 F3.5, 셔터 속도는 B(벌브 모드)와 1/50초.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이 세력 다툼 하던 냉전시대였으니 스즈키 광학의 에코8은 상당히 인기 있는 스파이용 카메라였을 것이다. 아마 <로마의 휴일>의 어빙처럼 특종을 원하는 사진 기자들에게도 매력 넘치는 카메라였으리라. 에코8은 6년 동안 기능이 개선된 한 가지 모델만(A, B모델로 나뉜다) 나왔을 뿐 꽤 오랫동안 장수한 카메라다. 에코의 성공에 힘입어 기능을 줄이고 값을 낮춘 카메라라이트(Camera-Lite)도 생산했다. <로마의 휴일> 마지막 신, 앤 공주의 ‘일탈’ 사진으로 한몫 잡으려던 노름 좋아하는 신문사 기자 조 브래들리(그레고리 펙)는 공모했던 어빙을 설득해 ‘로마의 휴일’을 끝낸 앤 공주에게 사진을 돌려준다. 그 장면을 독자들도 기억할 테다. 조가 사진을 돌려준 이유는 앤 공주를 사랑해서였을까, 아니면 기자의 양심 때문이었을까. 글 조경국/카메라 컬럼니스트·사진 출처 vintagephoto.tv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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