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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로드롭’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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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 극
디자인의 눈으로 본 대중목욕탕 의자부터 자이로드롭·사코 의자까지 극과 극의 비교 대상이 꼭 두 가지여야 하는 법은 없다. 불가사리 모양을 떠올리며 이번 극과 극은 네 개의 의자 디자인에 주목했다. 디자인 역사가들은 이름 있는 디자이너가 만든 ‘단 하나’의 의자에 관심을 갖는다. 미스 반데어로에의 바르셀로나 의자, 장 프루베의 대학 의자, 아르네 야콥센의 개미 의자까지 보기만 해도 눈동자가 커지는 매혹적인 의자들이 많다. 디자이너들의 의자는 유기적인 디자인 형태의 실험이자 자기 사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거울이다. 의자는 어떤 가구보다도 사람의 몸이 직접 닿고, 자주 의인화되는 사물이기도 하다. 유명 디자이너의 손길은 닿지 않았지만 실용성을 인정받은 의자로는 대중목욕탕 의자가 있다. 이 가벼운 플라스틱 의자만 있다면 빈자리 어디든 가서 앉을 수 있다. 어떤 값비싼 의자보다 편하고 엉덩이에 꼭 맞아 의지가 되는 디자인이다. 하얀 색깔 목욕탕 의자에는 작고 동그란 구멍이 뚫려 있다. 물이 통과하는 장치지만 무엇보다 ‘이동식’ 의자라서 그렇다. 구멍 뚫린 부분에 손을 넣고 의자를 들고 목욕탕의 빈자리를 찾는다. 여탕에서 한 손에 목욕바구니를 들고 한 손에 의자를 든 엄마와 딸은 아마조네스의 여전사처럼 씩씩하다. 목욕탕 의자가 직접 의자를 들고 앉을 곳을 찾는 간소한 디자인이라면 어떤 의자는 통째로 이동하기도 한다. 대중교통에 있는 의자들이다. 그중에서도 흥미로운 건 케이티엑스(KTX)의 역방향 좌석이다. 거꾸로 가는 기차에 앉아 있다 보면 초현실주의적인 기분에 휩싸인다. 객실 내 직원에게 역방향 좌석의 이유를 물어봤다. “테제베와 계약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원래 그랬답니다, 고객님~”이라는 친절하지만 알맹이 없는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역방향 디자인은 ‘평등’의 산물이었다. 유턴할 수 없는 레일을 운행하는 기차들이 있는데 그럴 경우 상행선에서 바로 갔던 모든 승객들이 하행선에선 거꾸로 가게 되기 때문이다. 모두 다 함께 거꾸로 가느니, 공평하고 안전하게 반반씩 거꾸로 가자는 제안은 민주주의가 반영된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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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코’(Sac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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