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9.16 10:13
수정 : 2010.09.16 11:43
|
‘플레이’의 테이블에서 포즈를 취한 홍석천. 사진 한겨레 박미향 기자
|
[매거진 esc] ‘커밍아웃 10년’ 레스토랑 7호점 오픈한 배우 홍석천 인터뷰
딱 10년이 됐다. 오는 20일이면 배우 홍석천(사진 가운데)이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커밍아웃을 하자마자, 방송과 라디오에서 줄줄이 퇴출됐던 그는 이제 ‘동성애자 홍석천’보다 ‘레스토랑 시이오(CEO) 홍석천’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방송 퇴출 이후 먹고살 길이 없어서 시작한 레스토랑이 ‘대박’이 나면서 이태원과 홍대 등지에 프랜차이즈를 합쳐 7개를 오픈했고 현재 마포에도 레스토랑을 오픈 공사중이다. 이만하면 가히 ‘요식업계의 큰손’이다.
지난 6월 배우 이승연씨와 함께 손을 잡고 오픈한 홍대의 이탈리아·타이 레스토랑 ‘플레이’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 내내 드나드는 손님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고 테이블에 신경을 쓰는 그에게 레스토랑 창업 계기부터 성공 비결까지 물어봤다.
|
‘플레이’의 타이식 비프 샐러드. 사진 한겨레 박미향 기자
|
|
홍석천이 최근 홍대에 오픈한 ‘플레이’의 조개 파스타. 사진 한겨레 박미향 기자
|
처음에 레스토랑을 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10년 전 커밍아웃을 하면서 백수가 됐다. 할 일도 없고 아무도 날 찾아주지 않으니까 ‘내 공간은 내가 만들어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커밍아웃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레스토랑을 했을 것이다. 워낙 요리나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다. 사주를 보면 물장사, 밥장사로 남에게 ‘식보시’ 하는 팔자라고 나온다. 커밍아웃 때문에 시기만 빨라진 것뿐이다.”
첫 비스트로 ‘아워 플레이스’부터 타이 음식점 ‘마이 타이’, 중국 음식점 ‘마이 차이나’, 와인바 ‘마이쏭 바’, 뉴욕스타일 레스토랑 ‘마이 첼시’ 등 5곳은 모두 이태원에서 열었다. 그 이유가 뭔가?
“15년 전 독립해서 처음 자취를 한 곳이 해방촌 지하 단칸방이었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이태원이란 지역에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게 됐다. 그리고 이태원은 음식 등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한국의 첫번째 관문인 곳이다. 서울을 모르는 외국인도 이태원은 안다. 먹고 마시고 춤추고 자는 게 한꺼번에 해결되는 드문 곳이다. 이런 매력 때문에 이태원을 사랑하게 됐다.”
그런데 최근 레스토랑인 ‘플레이’는 홍대에 냈고 또다른 ‘마이 타이’는 마포에서 오픈 공사중이다. 지역을 옮기게 된 이유는?
“이태원에서 오래 하고 또 잘되다 보니 좀 지겹기도 하고 내가 너무 안전한 것만 찾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안방에서 호통치는 할머니 같은 느낌이랄까.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역을 확장했고 또 지방에도 오픈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홍대는 원래 내가 좋아하는 곳인데, 너무 20대를 위한 공간만 있어서 30~40대와 아이를 가진 젊은 부부를 위한 편안한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플레이’는 그런 공간으로 타깃화했다. 또 ‘아워 플레이스’도 8년 정도 되니깐 좀 지겨워졌다. 그래서 ‘마이 치킨’으로 바꿔서 퓨전 한식을 제공하고 있다. 치킨부터 번데기, 골뱅이, 막걸리까지 파는 곳이다. 언젠가 한식을 하고 싶은데 그 ‘테스터’로서 그곳을 운영하고 있다.”
여러 레스토랑 중에서 특히 아끼는 곳이 있나?
“당연히 있다. ‘마이 타이’다. 첫 레스토랑인 ‘아워 플레이스’가 일을 배운 곳이라면, ‘마이 타이’는 대박이 나면서 사업이라는 걸 알게 해주고 내가 성장하고 발전하게 해 준 곳이다.”
|
홍석천. 사진 한겨레 박미향 기자
|
성공 비결이 뭐라고 보나?
“남들이 잠잘 때 안 자고 고민하는 것이다. 그래서 늘 아침에 잔다(웃음). 레스토랑 위치 선정부터 인테리어, 셰프 구하는 것까지 모두 발로 뛰고 또 뛰어야 한다. 마음에 드는 위치가 있으면 백번이고 찾아가서 ‘혹시 자리를 팔 생각이 없는지’ 물어보고 그 주인을 친구로 만들어 나중에 팔게 될 땐 꼭 나에게 팔도록 노력했다. 음식점 콘셉트를 정하고 난 뒤에는 인테리어도 직접 다 한다. 국내외 시장을 다 뒤져서 보따리장수처럼 다 사서 꾸민다. 인테리어 회사를 차릴까 하는 생각이 있을 정도로 인테리어를 좋아한다. ‘마이 타이’만 해도 오픈 예정인 곳을 합치면 모두 3곳인데, 전부 인테리어가 다르다. 대개들 같은 이름의 식당은 통일성과 일관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식당이 위치한 장소와 동네 분위기,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는 인테리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두 다르다. 셰프도 최고의 셰프를 구하려고 발로 뛴다. ‘마이 타이’를 위해선 타이를 수차례 방문해서 유명 맛집을 전부 다 돌고 마음에 드는 셰프를 모시기 위해 삼고초려했다.”
방송인, 배우, 레스토랑 시이오 등 직함 중 무얼 가장 사랑하나?
“배우라는 직함을 가장 사랑한다. 하지만 레스토랑 시이오도 나쁘진 않다. 배우와 달리, 내 의지로 할 수 있으니깐. 게다가 레스토랑을 하면서 배우로서 조급함이 없어졌다. 원하는 배역을 따내기 위해 잘 보여야 되고 그런 거 안 해도 되니깐 좋다(웃음).”
직장을 그만두고 식당이나 차릴까 하는 직장인에게 한마디.
“충분한 사전 지식과 준비 없이 했다간 있던 돈도 다 날리고 또다른 스트레스만 안고 가게 된다. 조심해야 한다.”
커밍아웃 10주년이다. 그간의 한국의 동성애자 인권 현실을 어떻게 평가하나?
“일반인들이 열걸음 정도 나아갔다면, 방송과 정치는 두걸음 정도 나아갔다고 본다. 방송과 정치는 아직도 두려워하고 있는 느낌이다.”
커밍아웃을 후회한 적은 없나?“커밍아웃으로 인한 고통과 어려움은 많았지만 결코 후회한 적은 없다. 부모님께도 ‘제 결정을 절대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씀드리니깐. 왜냐면 숨기고 사는 게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결정이 사회적 벽, 특히 방송의 벽에 부닥쳤을 때, 방송으로 먹고살고 있었기 때문에, 손을 놓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후회는 하지 않지만, 나로 인해 다른 동성애자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연기를 할 때나 사회생활을 할 때 매우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연예인들에게 인기 하락은 바로 생활고와 직결된다.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연예인들이 레스토랑 등 부업에 관심이 많은 이유도 그래서다. 동료 연예인들이나 젊은이들 중에서 레스토랑 창업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도움이 될 수 있는 한 돕고 싶다. 또 동성애 인권운동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도울 것이다.”
동성애 인권운동 너무 열심히 하면 방송 활동에 한계가 있을 수 있을 텐데?
“‘더 스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면 그렇게 하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이젠 욕심을 많이 버렸다. 예전에 내가 연기자로 활동했을 때 그때 나를 좋아해주던 팬들이 있었는데 그 정도의 사랑만 받아도 감사하다. 또 연기만 할 수 있다면 행복할 뿐이다.”
글 김아리 기자
ari@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