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0.10.14 14:04 수정 : 2010.10.14 14:04

[매거진 esc] 강지영의 스트레인지 러브

우리 동네 생선가게는 오늘도 불티가 난다. 고작해야 다섯 평도 되지 않는 작은 가게에 장바구니를 든 주부들이 명태처럼 코를 꿰고 바듯하게 들어서 있다. 인근에 생선가게가 없는 것도 아니고, 생선이 눈에 띄게 싱싱한 것도 아닌데 어째서 그 집만 북새통을 이룰까 늘 궁금했다. 실마리는 뜻밖에도 생선가게 맞은편,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풀어졌다. “누가 그 집에 생선 사러 가나? 식스팩 구경하러 가지. 허구한 날 장사 안 된다고 짱알거리지나 말고 당신도 오늘부터 헬스 끊어서 복근 한번 만들어 봐. 요즘은 몸이 경쟁력이야.”

물건값을 계산하던 여주인이 월세 걱정을 하며 파리채나 휘두르는 뚱보 남편에게 이죽거렸다. 그날부터 나는 생선가게에 들를 일이 생기면 주인남자의 탄탄한 허벅지와 날씬한 허리를 흘끔거리게 됐다. 그는 텔레비전만 틀면 팝업처럼 튀어나와 눈웃음을 날리는 미소년 아이돌에게 익숙해진 내 시건방진 눈을 만족시킬 정도는 아니었지만, 꽤 호남형인 것만은 사실이었다.

요즘 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매주 수요일은 생선가게의 파리채가 바빠지는 날이다. 그건 남편을 대신해 안주인이 출근을 하는 요일로, 일주일 중 유일하게 고등어구이나 동태찌개보다 돼지고기김치찌개와 콩나물국이 당기는 날이기도 했다. 솜씨만 놓고 본다면 바깥주인보다 안주인이 나았다. 안주인은 바지런하고 싹싹한 성격으로 수시로 바닥에 물을 끼얹어 비린내를 몰아내고 솜씨 좋게 생선을 진열한 뒤 야무지게 오징어 배를 가르고 친절히 조리법까지 설명하는 참기름 먹인 차돌멩이였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안주인이 가게에 나온 날이면 생선가게엔 파리가 날리고 그 이웃한 정육점과 채소가게가 더욱 붐볐다. 그러나 이튿날 목요일이면 우리 동네 여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연분홍색 립스틱을 바르고 주인남자의 식스팩이 근사한 생선가게로 조촘조촘 찾아간다. 나도 그들 틈에 끼어 이면수를 고르고 바지락의 입을 벌려 본다. 주인남자의 힘줄 선 건강한 팔이 내게 비리고 짭조름한 저녁 먹잇감을 건넨다. 그걸 받아드는 내 손길이 은밀하고 더디다. 생선가게는 오늘도 불티가 난다.

강지영 소설가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