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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0.21 17:44 수정 : 2010.10.21 17:44

할아버지는 애기처럼 재워 놓고 들깨밭의 풀을 매는 할머니. 강제윤 제공

[매거진 esc] 강제윤의 섬에서 만나다

진도 남도석성. 삼별초가 몽고군과 전쟁을 치를 때 쌓은 성이다. 성안 마을 어느 집 텃밭, 할머니 한 분이 풀을 뽑고 있다. 텃밭에는 약초도 있다. 지초는 진도의 만병통치약. “애들이 체하면 지초라고, 그놈 갖다 놋그릇에 넣고 화롯불에 올려 참기름하고 우려서 애기 떠먹이면 낫고, 엄마가 의사였지라. 지금 생각하면 옛날에는 약만 먹고 살았어. 도라지랑 더덕이랑 맨날 노물로 먹고 살았지.” 할머니는 그런 약초들을 캐다 팔아 아이들을 키웠다. “두 늙은이 사는디, 이제 나가게 된다우.” 이 오래된 마을도 머잖아 철거될 예정이다. “정부에 팔렸어요. 관광 오면 구경하라고 한다우. 나가라고 할 때까지 이런 거 해먹고 살라고 남아 있소.”

할머니는 집 없이 사는 민달팽이가 뜯어먹은 들깻잎을 들추며 혀를 찬다. “벌게(벌레)가 요케 부애나게 하요. 민달팽이라고, 공산당 넋이라고 한디, 징해.” 지금은 민달팽이가 보이지 않는다. “뜨걸 때 나오면 죽으께 지가 못 나와라우. 밤에만 나와라우. 농약 뿌래도 안 죽고.” 낮에는 숨어 있다 밤에만 출몰하는 게릴라전의 명수, 민달팽이. “애기맨치로 할애비는 재워 놓고 나는 풀을 뽑소.” 할아버지는 낮잠 주무시고 할머니는 일을 하는 남도의 한낮. “내가 풀을 매서 드내빌면, ‘매번 또 돋는디 머하러 또 뽑소’ 그랍니다. 열분 백분이나 매도, 얘기만 하고 있어도 이놈이 커 갖고 깨 못 열게 하는디, 안 매면 쓰것소.”

강제윤의 섬에서 만나다

할머니는 속없는 할아버지를 미워하지 않는 눈치다. 그저 징글징글한 풀과 벌레가 야속할 뿐. 자식들은 어머니가 더울 때 일하는 것이 걱정이다. “볕날 때 뜨건데 일하지 마시오, 그럽디다. 그라니까 내가 그랬소. 눈 와도 곡석이 연대. 때맞춰 일해줘야 열제. 즈그도 인사로 하는 말이제. 그 뜨건데 일하니께.” 이야기 중에도 할머니의 손은 노는 법이 없다. 들깨 그늘의 풀포기를 뽑아낸다. “워매 워매, 놈의 그늘에서도 요케 크냐. 징한 놈의 풀아.” 깻잎 그늘에서 자라면서 들깨의 성장을 방해하는 풀을 나무라는 말씀. 곧 사라져버릴 풍경들. 나는 수백년 이어온 마을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것이 두렵다. 문화재란 무엇일까. 관청을 새로 짓는 것이 과연 가치가 있는 일일까. 이 오래된 마을과 집과 돌담과 나무와 사람들이야말로 진정 살아 있는 문화재가 아닐까. 그들을 쫓아내고 만드는 껍데기뿐인 건물들. 거기 어떤 생명력이 있을까. 마을을 살리는 유적 복원은 가능하지 않은 것일까. 이제 이 마을이 철거되고 나면 나그네는 또 어디로 가서 저 오랜 삶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을까.

강제윤 시인·<자발적 가난의 행복> 저자 bogilna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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