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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에 있는 최명희문학관은 작가의 작품을 기리기 위해 지난 2월부터 10월까지 〈혼불〉 필사 이벤트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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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로진·안도현 등 필사 선행자들이 제안하는 잘 베껴 쓰는 법
필사에 대한 생각은 문인들마다 다르다. 박범신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 〈러브차일드〉를 쓴 김현영 소설가는 필사를 권하는 편이 아니다. “문장이 매력 없는 사람, 문장 정리가 안 되는 사람 등 사람마다 필요한 문장력이 다른데 필사를 해본다고 큰 도움이 될까 싶어서”다.(김현영)
좋은 글을 천천히 오래 써라
베껴 적는 필사가 주입식 교육이라 반대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 김훈 작가는 “무엇을 주입하느냐가 문제이지 주입식 공부가 다 나쁜 것은 아니다”라며 필사를 옹호한다. “불경과 동양고전, 19세기 영미시 등 쓰면서 외워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작가는 “좋은 문장을 필사하는 것은 그 문장을 자신의 몸에 딱 붙일 수 있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필사는 눈으로 읽는 것보다 글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글을 베껴 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작가의 구성력·표현력 등을 배우게 된다. 〈모비딕〉을 쓴 허먼 멜빌은 ‘언어 천재’라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무려 250번이나 베껴 썼다. 〈모비딕〉은 문단으로부터 ‘인간과 자연의 거대한 대서사시’라는 찬사를 받았다. 조정래 작가는 아들 내외에게 〈태백산맥〉 전권 필사를 시켰다. 하루 한 시간씩 10권을 필사하는 데는 4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조 작가는 아들 내외에게 필사를 시킨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글은 사람의 인생, 역사 등 모든 것을 갈고닦고 응축한 것이다. 여러 번 읽고 써보면 작가의 생각을 알 수가 있다. 아이들에게 필사를 시킨 것도 이런 앎을 얻게 하고 싶어서였다. 매일매일 성실하게 꾸준히 하는 노력이 얼마나 큰 성과를 이루는지 직접 체험케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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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에 있는 최명희문학관은 작가의 작품을 기리기 위해 지난 2월부터 10월까지 〈혼불〉 필사 이벤트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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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의 맛을 모른다면 필사를 제대로 해보지 않은 것이다. 좋은 책을 꾸준히 잘 베껴 써 보는 노력이 삶에서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그럼 필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방식이 따로 있진 않지만 선행자들이 해본 경험을 따라하면 필사의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첫째, 책에서 좋은 문장을 발견했을 때 그 문장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부터 시작한다. 처음엔 짧은 시나 단편집을, 그 뒤엔 좋아하는 소설가의 작품을 베껴보는 것이 좋다. 안도현 시인은 “마음에 드는 문장을 메모하듯이 쓰는 것부터 필사는 시작된다”고 했다. 필사할 땐 단어가 아니라 문장을 외우듯이 써야 한다. 좋아하는 글을 모은 필사 노트는 훗날 글쓰기를 하다 막힐 때 들춰보면 도움이 된다.
셋째, 컴퓨터 말고 종이에 써라. 컴퓨터로 필사를 하면 속도감이 생겨 자칫 글을 따라 쓰는 데만 열중하게 된다. 저자의 생각이나 글의 흐름을 놓칠 수가 있다. 손맛에 맞는 종이와 펜을 이용해 쓰면 책에 더 집중할 수 있다. 혹시 맞춤법, 띄어쓰기, 단락 구분 등 기초 교정교열 지식이 약하다면 원고지에 쓰는 게 도움이 된다. 남의 책을 읽고 쓰는 단계를 지나 자신의 글을 쓰고 싶은 자신감이 생기면 연필로 썼던 필사본을 컴퓨터로 다시 써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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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에 있는 최명희문학관은 작가의 작품을 기리기 위해 지난 2월부터 10월까지 〈혼불〉 필사 이벤트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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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빨리 베껴 쓰는 것보다 베껴 쓰기가 왜 중요한지를 알면서 쓰는 게 중요하다. 어쩌다 눈에 번쩍 띄는 시나 소설, 칼럼 등을 만났을 때 필사하는 일을 주저하지 말자. 손으로 사유하다 보면 반짝이는 글귀를 내것으로 체득할 수 있다. 백석의 시에 반했던 안도현 시인은 백석의 새로운 시를 만날 때마다 노트에 옮겨 적었다. “나는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필사했다. 그런 필사의 시간이 없었다면 내게 백석은 그저 하고많은 시인 중의 하나로 남았을 것이다. 그가 내게 왔을 때, 나는 그의 시를 필사하면서 그를 붙잡았다. 그건 짝사랑이었지만 행복했다. 나는 그의 숨소리를 들었고, 옷깃을 만졌으며, 맹세했고, 또 질투했다. 사랑하면 상대를 닮고 싶어지는 법이다.”(한겨레 칼럼-‘시와 연애하는 법⑥’ 중)
글 김미영 기자·사진 제공 최명희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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