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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1.04 13:32 수정 : 2010.11.07 09:41

미국 보스턴 출신 싱어송라이터 크리스 가르노가 지난달 22일 보문시장 한복판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매거진 esc] 서울 곳곳서 뮤지션 연주장면 촬영하는 렉앤플레이

서울 지하철 6호선 보문역 5번 출구를 나서자 ‘보문시장 재건축’ 플래카드를 걸고 공사가 한창인 주상복합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40여년 역사의 보문시장이 아직은 숨쉬고 있음을 알리는 낡은 간판을 지나 개천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비로소 웅크리고 있던 추억 속 풍경이 펼쳐진다. 먼지 쌓인 뽑기 기계가 놓인 문방구, 비와이시(BYC) 속옷가게, 다닥다닥 붙은 채소·과일·생선 노점…. 지난달 22일 정오, 가을볕을 타고 보문시장의 좁은 골목길 사이로 첼로 멜로디를 머금은 팝 음악이 아련하게 울려퍼진다. 시장 끄트머리에 자리잡은 포장마차 ‘보문동 일번지’에서 새어나오는 소리다. ‘물은 셀프’라는 글씨가 적힌 컵소독기와 주꾸미 등 안주값을 표시한 메뉴판 사이에서 작은 체구의 외국인 남자가 낡은 피아노를 치며 노래한다. 한 홈쇼핑 광고에서도 들을 수 있는 ‘릴리프’(relief). 건반 위 남자는 미국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크리스 가르노다. 다음날 열리는 그랜드민트페스티벌 무대에 서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가 왜 재래시장에 뜬 걸까.

재래시장 등 서울의 잊혀진 장소에 주목

연주에 열중하는 가르노의 손놀림을 디에스엘아르(DSLR·디지털일안반사식) 카메라로 훑는 최진권(26)씨와 사운드를 점검하는 고아침(24)씨가 보인다. 권철(28)씨가 촬영 모습을 사진기에 담고, 섭외 담당 정연주(24)씨는 연주를 감상중이다. 여기에 민준기(25)씨까지 다섯명. 이들은 1년 전부터 ‘취미로’ 서울의 일상적인 공간을 찾아다니며 직접 섭외한 국내외 뮤지션의 라이브 연주 영상을 촬영해 블로그에 올리는 렉앤플레이(recandplay.net)다. 연세대 졸업·재학생인 이들은 교내밴드·동아리·수업 등을 통해 알음알음 알게 된 사이다. 프랑스 다큐감독 빈센트 문이 2006년부터 음악웹진 <블로고테크>(blogotheque.net)를 통해 시작한 일상공간에서의 라이브 영상기록 작업 ‘테이크 어웨이쇼’를 보고 “우리도 하면 재밌겠다”며 의기투합했다.

렉앤플레이에게 보문시장과 같은 점차 사라져가는 서울의 공간은 특별한 무대다. 뮤지션과 함께한 첫 촬영지도 인디문화의 메카였지만 지금은 폐쇄된 서교지하보도였다. “서울에서 잊혀져 가는 삶의 공간을 영상에 담고 또 일상적인 공간을 낯설어 보이게 하고 싶어요. 서울아트시네마가 운영 위기에 놓였다고 해서 낙원상가에서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건물관리회사 쪽 반대로 좌절되기도 했죠.”

지금까지 한 작업을 공간으로 나눠보면 재개발(서교지하보도)·대중교통(버스, 지하철)·초자연블록버스터(성미산, 정릉) 등 크게 세 갈래다. 한 공간에서도 분주히 움직인다. 가르노도 포장마차에서 공연을 끝내고 시장 한복판으로 향했다. 젓갈과 채소를 파는 노점 옆에서 공연을 하기로 했는지, 상인 아주머니들에게 ‘잠깐 노래해도 되겠느냐’며 양해를 구한다. 손자뻘 젊은이들이 귀여워서였을까. 의외로 쉽게 허락이 떨어졌다. 빨간색 플라스틱 테이블에 놓인 건반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상인 아주머니들도 일손을 잠시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가수 시와가 참여한 지하철 촬영 때도 안 보는 척하다가도 박수를 쳐주던 승객들이 있었다. 이들의 명함에 쓰여 있던 ‘우리는 착합니다. 겁먹지 마세요’란 문구가 힘을 발휘하는 걸까. 시끄럽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을 세번 맞닥뜨리기도 했지만 말이다.


(위) 지난 6월 정릉천에서 촬영 한 인디밴드 수리수리 마하수리의 공연 영상.
(아래) 지난 3월 서울지하철 중앙선 열차에서 촬영한 가수 시와의 공연 영상.
평소 인상적인 공간을 발견하면 눈여겨본다. 보문시장의 피아노가 있는 포장마차는 고아침씨가 술을 마시러 갔다 발견했고, 촬영 전날 밤 최진권씨가 친구와 찾아 매상을 올려주는 한편 사장님의 자녀 진학상담을 병행해 섭외를 완료했다. 함께 작업할 뮤지션은 멤버 모두가 합의를 해야 한다. 원칙적으론 음반사로부터 작업 의뢰를 받진 않는다. 가르노의 경우 음반사에서 먼저 의뢰를 해왔지만 평소 작업을 하고 싶었던 뮤지션이었고 직접 소통이 가능했기에 촬영을 진행한 경우다. 국내 뮤지션 연락처는 지인의 지인을 활용해 알아내고, 내한 예정인 국외 뮤지션에겐 메일을 보내기도 한다. 스웨덴 출신 싱어송라이터 라세 린드는 신촌역 인근에서 우연히 만나 작업이 성사됐다.


작업물 저작권 주장하지 않는 것도 이색적

이들의 영상은 감각적이다. 최근 엠비시 <무한도전> 등 지상파에서도 디에스엘아르 카메라로 촬영을 시도했다. 다양한 카메라 워크가 가능해 독특한 영상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담이 되지 않은 선에서 장비 구입이 필요했는데, 디에스엘아르 중에서 동영상 촬영성능이 꽤 좋은 제품을 겸사겸사 구입했죠.” 특정 공간에서 볼 수 있는 풍경과 소리는 음악과 합쳐져 다시 눈과 귀를 자극한다. 라세 린드는 지난해 겨울 지하철 홍대입구역 5번 출구 앞에서 꽁꽁 언 손으로 기타를 치며 노래를 했다. 그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한 무관심한 시선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어디론가 바쁘게 뛰어가는 하이힐 소리와 행인들의 잡담이 기타 소리와 묘하게 어우러진다.

렉앤플레이는 작업물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우린 수많은 사람들이 별다른 대가 없이 정보를 공유해온 피시통신이나 인터넷 등 네트워크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어요. 네트워크에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고자 사람들이 자유롭게 퍼갈 수 있게 크리에이티브 코먼스 라이선스(CCL: 저작물이용 허락표시)를 달아놨어요.” 한사코 얼굴 노출을 거부한(?) 이들의 목표는 거창하지 않다. “재미있자고 시작한 일이에요. 멤버들이 각각 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부담을 최대한 줄이고 가늘고 길게 가는 게 목표죠.” 이들은 요새 아이슬란드 록밴드 ‘시규어 로스’의 보컬 욘시의 내한 소식에 흥분하고 있다. “빈센트 문을 통해 접촉을 시도했는데 섭외가 안 될 것 같아요. 공연 주최 측에서 이 기사를 보신다면 저희에게 딱 두 시간만 허락을…. 여유가 없다면 일본투어에 맞춰 일본 갈 생각도 있다구요!”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색다른 공연영상 여기에도 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라이브 공연을 촬영해 인터넷을 통해 공유하는 국내외 팀들이 늘고 있다. 이들의 작품은 대개 비상업적이고 뮤지션과 공생 관계를 이룬다는 점에서 기존 뮤직비디오와는 차이가 있다. 음악 웹진 <보다> 필진 서성덕씨와 함께 눈여겨볼만한 웹사이트를 찾아봤다.

PD4WEB(PD4WEB.com): 웹PD 일을 하는 지형태씨가 운영하는 블로그로 홍대 음악카페 등에서 공연하는 100여개팀의 인디뮤지션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음.

404tv(youtube.com/404notfoundtv): 인디밴드 ‘404낫파운드’(404NOTFOUND)에 참여하고 있는 영화학도 정세현씨가 운영. 올해 초부터 인디밴드 중에서도 덜 알려진 이들의 공연을 캠코더로 촬영.

인디투고(indie2go.com): 영상물 제작업체 사이드킥스가 2008년부터 공연장과 녹음실을 제외한 공간에서 인디뮤지션들의 라이브 영상을 촬영.

더뮤직세션닷컴(themusicsessions.com): 파리를 찾은 뮤지션들을 섭외해 다양한 장소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기록해온 ‘테이크 어웨이쇼’ 를 비롯해 비슷한 작업을 하는 20여개 팀들의 사이트를 모아놓은 곳. 영국 런던의 명물택시 ‘ 블랙캡 ’ 안에서 라이브 공연을 촬영하는 ‘블랙 캡 세션’(blackcabsessions.com) 등이 있음

피치포크tv(pitchfork.com/tv): 미국 음악 웹진 <피치포크>의 동영상 서비스. 구형 아날로그 캠코더·감시용 시시티브이(CCTV)를 활요해 촬영하거나, 옥상과 지하실 등에서 연주하는 라이브 비디오를 볼 수 있음. 미국에선 기존 매체에서도 음악 영상제작과 공유가 활발한데 공영 라디오방송 <엔피아르> 누리집에서는 뮤지션이 사무실로 찾아가 연주를 하는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npr를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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