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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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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판타스틱 덕후백서
대기업 그만둔 뒤 100일간 자전거 타고 록페스티벌 여행한 백동선씨
지난 10월3일 오후 5시. 마흔셋 아저씨이자 ‘백수’ 백동선씨는 두 시간째 컴퓨터 앞에 죽치고 앉아 있었다. 5분 간격으로 마우스를 클릭 또 클릭. 기적같이 예매창이 열렸다. 4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 글래스턴베리(잉글랜드 남서부) 록페스티벌 2011년 티켓을 ‘득템’한 순간이었다. 이미 두번이나 예매 실패를 겪고 난 뒤 얻은 행운이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초록색 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홍대 일대를 누비는 록 마니아 꽃중년. 누군가는 그를 홍대클럽 슬램(관객끼리 점프해 몸을 부딪치는 행위)판에서 뛰노는 유일한 40대라고 말한다. 대기업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휴가를 깨알같이 활용해 지난 10년간 국내외 록페스티벌 70여개를 쫓아다녔다. 이는 ‘덕후질’ 예고편에 불과했으니…. 그는 올봄 15년 ‘직딩’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3개월간 일본·유럽 록페스티벌 투어를 다녔다. 그것도 자전거를 타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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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록페스티벌의 고향 유럽으로! 일본 아줌마·아저씨들이 영국 록그룹 오아시스 공연을 보면서 울고 또 뛰고 있었단다. 처음 가본 외국 페스티벌인 2005년 일본 서머소닉에서 목격한 ‘잊지 못할’ 광경이었다. “서태지가 2001년에 참여하면서 서머소닉이 한국에 알려졌어요. 언제 한번 가야지 했지. 때마침 좋아하던 펑크록 그룹 그린데이가 아시아 투어를 한다는 거야.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한국엔 안 온다더라구. 에라이~. 안 오면 내가 간다는 심정으로 일본에 갔죠.” 여름휴가 스케줄을 미리 선점하는 노력을 기울여 해마다 서머소닉을 찾았지만, 록페스티벌의 본고장 유럽 진출에 대한 열망은 커져만 갔다. “유럽에 가지 않으면 평생 후회가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2~3년 전부터 언제 갈까 언제 갈까 머리만 굴리고 있었지.” 백씨의 가슴에 결정적 불을 댕긴 건 글래스턴베리였다. 지난해 글래스턴베리를 간다는 누군가의 블로그 글을 본 순간 오랜 시간 품어오던 ‘유럽행’ 고민이 매듭지어졌다. “요샌 평생직장이 없잖아요. 언젠가는 그만두어야 하는데, 늙어서 초라한 모습으로 그만두는 건 아니다 싶었어요. 조금이라도 젊고 힘 있을 때 그만두자 했죠. ‘살 의지만 있으면 죽지 않는다’는 나름대로 신념도 있었고, 기혼자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맞바로 사표를 던진 건 아니었다. 그로부터 1년간 직장생활 틈틈이 투어준비에 매달렸다. 유럽 자전거투어 일정을 잡는 것도 쉽지 않은데, 록페스티벌을 따라가야 하니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기’였다. 더구나 거사를 한달 앞두고 ‘술김’에 공차기를 하다 왼손을 다쳤다. ‘무슨 해외여행을 가느냐’는 의사의 만류에 각서라도 쓰겠다며 오기를 부린 끝에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그가 자전거까지 지거나 타고 거쳐간 지역과 록페스티벌은 대략 이렇다. 100일간 짓눌린 엉덩이에 경의를! 정작 꿈꾸던 글래스턴베리는 예매 실패로 가지 못했다. 그러나 ‘땜빵’이었던 영국 치체스터의 블루스 페스티벌이 기대 이상이었다고. “하루 평균 500명이 오는 작은 행사인데 올해로 19년째래요. 블루스는 로큰롤 모태가 된 음악 중 하나라 조금씩 듣고 그랬었는데, 캬~ 4일 동안 머물면서 진짜 오리지널이 뭔지 알았지. 관객들이 보통 10년 이상 단골이라 서로들 알아요. 아이들까지 해서 가족이 온 경우도 많더라고.” 록의 저항정신도 만끽했다. “독일 록암링은 유명한 다국적 기업들이 후원을 하는데 스폰서 표시를 모니터 스피커 앞에다 붙여놔요. 그런데 펑크록 뮤지션들이 상업성을 거부한다며 그런 표시를 막 뜯어버리는 거야. 하하~ 관객들은 좋아서 난리가 나지.” 백씨는 각국 록페스티벌 특징부터 ‘공짜로 맥주를 주던 인심 좋은 유럽 아저씨’ 사연까지 숨차게 펼쳐 놓았다. 록페스티벌도 쫓아다니기 쉽지 않은데 그는 자전거를 끌고 하루 평균 120㎞를 내달렸다. 고생을 사서 한 셈이다. 환경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숙식은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고 해결했다. 침낭·취사도구·스페어 타이어까지 60㎏을 이고 지고 유럽을 누볐다. 가끔은 자전거마저 짐이 됐다. “고속철도 유로스타를 덜컥 예매했어요. 자전거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긴 했는데 아 글쎄 분해를 해야 된다는 거야. 바퀴 다 떼어가지고 가방에 넣어서 메고 가는데, 어깨가 아효…. 아무 말도 못해 아무 말도.” 엉덩이에 불이 난 건 당연지사. 굳은살은 기본옵션. 철로에 자전거 바퀴가 끼여 나가떨어져 한바퀴 구르는 ‘생사의 갈림길’도 있었다. 40대에게도 노래방 거부권을 허하라! 귀국할 당시 산악인 포스를 내뿜을 만큼 산전수전 겪은 그가 이 여정에서 깨달은 건 무얼까. “삶이란 게 팍팍할 필요가 없는데, 우리는 스스로를 옭아매죠. 집 사야지 애들 교육시켜야지 그러다 보면 어느새 다들 노인네가 돼.” 또래 친구들은 그에게 ‘니가 나이가 몇이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도 사실 친구들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았다. “술 마시고선 꼭 아줌마들 나오는 노래방을 가자고 고집을 피워. 그게 진짜 불편하거든요.” 86학번인 그는 대학 시절에도 어릴 때부터 좋아한 록을 마음껏 즐길 수가 없었다. “당시엔 외국음악을 심하게 배제하는 분위기였어요. 민족주의 영향으로. 선배가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기타를 치느냐’고 했지.” 이젠 알음알음 알게 된 록 마니아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하단다. 물론 그 무리 속에서도 그는 가장 연장자다. 글래스턴베리 티켓을 예매했으니, 내년에도 어쩔 수 없이(!) 유럽에 갈 터이다. 물론 경제적 압박이 만만치 않다. 요샌 맥주 만들기에 빠져 있는데, 맥주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작은 가게라도 차려볼 심산이다. 백씨가 입은 티셔츠에는 ‘티인더파크’가 큼지막하게 씌어 있다. 이렇게 페스티벌에서 사 모은 티셔츠가 300장이 넘는다. 그의 오른쪽 손목에는 지난 3개월간의 투어 흔적이 ‘팔찌’로 남아 있다. 천·플라스틱·비닐 등으로 만들어진 입장권을 떼어내지 않은 것이다. 앞으로도 떼어낼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에게 록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인 것처럼. 글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한겨레 주요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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