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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은 달고 복직은 해야겠고, 어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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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Q 저는 올해 대리를 단 대기업 5년 차 여사원이자 결혼 3년 차 주부입니다. 아직 아기는 없습니다. 대학졸업 뒤 처음 얻은 직장이며 대리를 달기까지 남자 사원들과 경쟁하며 열심히 일해 왔습니다. 워낙 수적으로 남자들 상위집단으로 구성된 공돌이 회사다 보니 적성에 맞는 것은 아니지만 원만한 인성과 딱 부러지는 말솜씨로 무난하게 대리까지 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뜩이나 저질체력이고 스트레스에 민감한 타입이고 업무 강도가 너무 강하고 야근도 잦다 보니 선배 여사원들은 결혼과 함께 퇴사를 많이 했고 저 또한 틈틈이 좀더 한가한 회사로 이직 준비도 했지만 시간 부족, 체력 부족으로 쉽지 않네요. 현재 저는 병가를 내고 쉬고 있는 상태입니다. 얼마 전에 몸이 약해져서 병에 걸렸고 몇 달 집에서 쉬면서 치료를 받아야 해요.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남편이 벌겠다, 그냥 회사 관두라고 할 것 같은데 무직이 되는 건 두렵고 남편에게 의존하면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대학 때도 아르바이트와 장학금으로 살아왔고 현재 직장도 업무 강도가 센 만큼 연봉이 높은 편이고요. 그동안 힘들게 이뤄놓은 저의 위치와 능숙한 업무기술을 버리는 것도 아깝고요. 너무 몸이 힘들었기에 지금의 휴식이 달콤하지만 문제는 다음달이면 복귀를 해야 하는데 또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 것을 생각하니 답답하고 걱정이 됩니다. 이래도 두렵고 저래도 두렵고. A 남편의 파트너십 활용은 어때요? 저는 스무 명 정도 되는 한 기혼여성 온라인 클럽모임을 몇 년째 운영하고 있는데 이게 좀 흥미롭답니다.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인 그녀들에게 지난 3년간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던지요. 전업주부로 육아를 전담하다가 로스쿨에 입학해서 다시 학생이 된 그녀. 국가고시 준비를 하다가 열혈 커리어우먼으로 둔갑한 그녀. 부장님으로서 현장을 진두지휘하다가 지금은 늦깎이 엄마수업을 하는 그녀. 요새 귀하디귀한 셋째 아이를 낳은 그녀. 전업주부였다가 사업 구상을 시작하거나 회사에 복귀한 그녀. 저처럼 회사를 다니다가 아이 낳고 프리랜서로 전향한 여자 등. 우리는 서로의 인생을 구경하며 격려도 하고 위로도 하고 신기해하고 부러워하곤 하는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상대와 나를 비교하면서 내가 놓여 있는 그 자리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배경에는 돈 잘 벌어다 주는 남편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들 각자가 각자의 장소에서 각자 지금 할 수 있는 것, 해야만 하는 것을 단지 하고 있을 뿐이라는 ‘납득’이 자리잡고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너무 미화 내지는 합리화시킨 말 같다고요? 그렇다면 조금 비틀어서 말해보지요. 우리는 살면서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습니다.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여자들의 환영에 시달리지 않고 우리는 우리대로 그저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심플한 진리를 몸소 체득한 셈입니다. 저, 이런 자세 무척 좋다고 생각되는데, 어때요? 혹시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한다는 전제가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건 아닌지요. 지난 몇 달간의 달콤한, 이 비현실적인 휴직기간이 끝나면 원래대로 모든 것이 돌아가야만 한다고 스스로에게 압박을 주면서. 기존의 상태가 그리 완벽한 상태도 아니었으면서 말이죠. 하물며 몸에 병이 났다는 것은 삶의, 혹은 사고방식의 변화를 요구한다는 몸의 솔직하고 강력한 주문이지요. 그러니까 회사에 돌아가서 원래 페이스대로 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고 거기서 무리하면 얼마 안 가서 또 한번 몸이 이번엔 더 큰 소리로 항변할 것입니다. 지금만 하더라도 몸은 소파 위에 뻗어 있는데 머릿속은 회사 복귀해서 일하면서 스트레스 받을 일을 미리 시뮬레이션하고 있으니 빙글빙글 헛구역질 나는 거 아닙니까. 이게 어디 제대로 된 휴식이냐고요. 완벽주의 모범생 기질을 버리고 가늘고 길게 갑시다. 무리하지 않고 헐렁하게 ‘적당히’ 해봅시다. 여기서 ‘적당히’란 내가 회사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다 해결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내가 받는 월급보다 약간만 더 일해준다는 기특한 마음가짐을 말하지요. 학생 시절부터 힘들게 혼자 다 짊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몸에 배다 보면 그와 비슷한 강도의 일을 쳐내야 내 도리 하는 것 같다고 착각하거든요. 한데 육체적 한계는 과거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 머리와 몸이 점점 따로 노는 거지요. 몸을 아프게 할 정도라면 좀더 편한 일이나 직장을 찾는 것은 정당한 소망일 뿐입니다.모든 것을 내 손에서 안 놓치려고 불도저처럼 자학하듯 끙끙대다가 우리는 자칫 어느 순간 단숨에 자폭해버리고 맙니다. 진이 다 빠져버려 이젠 정말 나 자신을 그냥 다 놔버리고만 싶지요. 인생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길고 또 예측 불가능한 것이니 ‘이게 끝이야’라며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에서 심리적으로 은퇴하는 것을 조장하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돈을 버는 것이든 다른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든 ‘일’에 있어서는 죽을 때까지 평생 ‘현역’이라는 마음으로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고 가급적 오래도록 좋은 마음으로 일을 하려고 하는 이때, 기혼자라면 배우자의 파트너십을 십분 활용해도 무방합니다. ‘남편에게 의존할 순 없어’는 건전한 자세이긴 하지만 자칫 이건 ‘내 아이를 남에게 맡길 순 없어’ 식으로 모든 것을 내가 통제해야 한다는 헛똑똑한 자기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고요. 생각해보세요, 남편이 병나서 일을 못 하면 아내인 당신이 기꺼이 대신 나가서 일을 하지 않겠어요? 임경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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