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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1.18 11:21 수정 : 2010.11.18 11:21

종군사진기자의 카메라, M3

[매거진 esc] 카메라 히스토리아

전쟁터를 누비며 사진을 찍는 종군사진기자란 직업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만화영화 <에어리어 88>(국내엔 <공포의 외인부대>라는 제목을 달았다)을 보고서였다. 1989년 현충일에 깜짝 방영했던 <에어리어 88>은 당시 소년들에게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안겨주었다. 실제 중동 어딘가에서 일어났을 법한 전쟁을 배경으로 당시 실존했던 온갖 전투기를 볼 수 있는 초호화 버라이어티 만화영화였고, 스토리도 아동용답지 않게 제법 심각했다. 동료의 배신으로 어쩔 수 없이 용병이 된 주인공을 취재하려고 나선 록키는 한마디로 ‘멋졌다’. MD-4 모터드라이브를 단 니콘 F3로 ‘무장’했던 록키는 공중전을 취재하다 목숨을 잃는다. 록키가 탔던 전투기가 추락하고 그의 니콘 F3가 사막에 떨어져 반쯤 모래에 파묻힌 채 셔터소리를 내던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1966년 2월25일치 <라이프> 표지 사진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구름이 낮게 깔린 석양 속으로 F-102 델타 대거(Delta Dagger) 편대가 날아간다. <에어리어 88>에서 나온 듯한 장면이다. 전투기 뒷자리에 앉아 조종석(콕핏·cockpit) 위로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촬영했던 주인공은 베트남전의 신화, 래리 버로스였다. 그는 1962년부터 1971년까지 베트남을 떠나지 않고 취재했던 <라이프>지 소속 종군사진기자였다. 전투부대원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전쟁터를 누볐던 래리 버로스의 사진은 베트남전의 진실을 보여주었다.

그는 당시 다른 종군사진기자들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컬러필름을 썼다. 선홍빛 피, 검붉은 화염, 진초록 밀림. 그의 사진은 전쟁을 ‘흑백’으로 미화하지 않고 날것 그대로 표현했다. 그의 사진은 반전운동의 부싯돌이 됐고, <지옥의 묵시록>이나 <플래툰>, <햄버거 힐> 등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 큰 영향을 끼쳤다.

래리 버로스는 세번이나 ‘로버트 카파 메달’을 수상하고 <라이프>의 전쟁사진으로 커버스토리를 열번 넘게 장식했을 정도였지만 평소 종군사진기자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 되물었다. “나는 항상 양심과 싸웠다. 혹시나 내가 다른 이의 슬픔을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그러나 나는 베트남전을 기록하는 일이 (전쟁에) 무관심한 사람들의 가슴을 찌르리라 믿었다.”

흑백사진 속 래리 버로스의 모습은 선이 굵은 시인처럼 느껴진다. 며칠 동안 면도를 하지 못해 까칠한 수염, 굵은 주름살, 두꺼운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허름한 야전 상의에 머플러를 두른 채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의 소원은 “전쟁이 끝난 뒤 평화를 되찾은 베트남의 모습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래리 버로스는 그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에어리어 88>의 록키처럼, 취재에 나섰다 행방불명됐다. 1971년 동료 종군사진기자였던 앙리 위에, 켄트 포터, 시마모토 게이사부로와 함께 헬기를 타고 가다 라오스 국경 근처에서 총격을 받고 추락했다. 그들 가운데 다시 돌아온 사람은 없었다.

추락 사고가 일어난 지 27년이 지난 1998년, 미군 실종자 수색팀이 그가 타고 있었던 헬기를 찾아냈다. 하지만 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고 평소 사용했던 라이카 M3(사진 위)와 렌즈의 잔해만 수습할 수 있었다. M3 상판에 새겨진 일련번호가 그의 카메라란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밀림 속에 영원히 묻혀버릴 뻔한 래리 버로스의 M3는 추락 당시의 충격과 불길을 이기지 못하고 심하게 뒤틀리고 그을어 있었다. 몸체 부분은 어디론가 사라진 채 27년 세월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래리 버로스의 부서진 M3는 목숨을 담보로 진실을 담고자 했던 종군사진기자의 인생을 담은 아이콘이다.

글 박미향 기자·사진 제공 theonlinephotographer.typepa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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