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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1.18 13:52 수정 : 2010.11.18 13:52

맛있는 유머, 개운한 수다

[매거진 esc]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에피소드 1. 수습기자인 ㅇ은 늦은 밤 ‘그날의 임무’를 완수하고 회사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선배로부터 호출이 왔다. (삐삐가 있던) 그 시절, 선배의 호출은 하느님의 명령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택시 안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ㅇ은 카폰이 눈에 들어왔다. 기사님께 양해를 구했다. 조용한 택시 안, 쩌렁쩌렁한 선배의 호통이 울렸다. 겨우 전화를 끝내자, 택시 기사가 분통이 터진다는 듯이 한마디 한다. “아, 헤어지세요, 헤어져. 그런 여자는 안 돼요, 헤어져!!!” 선배는 여자였다. 선배와 ㅇ은 졸지에 연인이 되었다.

에피소드 2. 한 언론사 시험장. ㅇ은 문제를 보고 띵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노원구란 무엇인가?’ 노원구는 1988년 정식 이름을 얻었다. 아직 사람들이 ‘노원구’의 정체를 모를 때였다. ㅇ은 송골송골 땀을 흘리면서 고민 끝에 답을 적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적인 장군’. ‘노’자가 불러일으킨 참사였다.

귀동냥한 에피소드를 기자들의 술자리에서 터뜨리면 그야말로 ‘빵’ 터진다. 하지만 웃음도 궁합이 있나 보다. 이 유머가 전혀 안 통하는 이들을 만났다.

비 오는 저녁, 종로통에서 떡요리사 ㅂ, 집에서 작은 텃밭을 ‘운영하는’ ㄱ,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푸드코디네이터 ㅎ을 만났다. ㅎ은 후배뻘이지만 ㅂ과 ㄱ은 인생을 살아도 나보다 한참은 더 사신 분들이다.

한달에 한번꼴의 맛집 탐방 모임은 간간이 어색할 ‘찰나’가 있다. 어색함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빵’ 터질 유머를 풀어놓는 일이다. 이들에게는 언론계 개그보다는 요리계 개그가 필요하다. 예를 들자면, 레스토랑 주방에서 수석요리사가 “가버렸다!”라고 말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하는 퀴즈를 내는 것이다. 답은 “식재료가 상했다”이다.

그날은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사찰음식점을 갔다. 메뉴판에는 ‘옥수수죽: 고구마가 씹혀 더욱 고소한 맛’이나 ‘더덕샐러드: 더덕과 신선채소, 잣 드레싱’ 등이 적혀 있다. “고소하나요? 글쎄 살짝 쓰지 않아요?” “대단히 신선한 느낌은 아닌데요.” 이런 평가가 부각과 과일 칩들이 후식으로 나올 때까지 이어졌다. 우리의 결론은 “가격에 비해 맛은 평범하네요. 뭐 그저 그러네요”였다. 지금도 마지막 먹었던 부각과 과일 칩의 끈적거리는 맛이 입안에 맴돈다. 찢어진 치마를 입은 것처럼 불편한 설탕 맛이었다.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마지막 맛이 중요한 법이다. 프랑스 요리사들이 디저트에 미친 듯이 신경 쓰는 이유다. 우리나라의 전통후식은 한과다. 명절에 요긴한 과자다. 보슬보슬한 유밀과만 떠오르기 쉬운데 의외로 종류가 많다. 강정, 약과, 매작과, 숙실과류, 대추초, 율란, 조란, 정과류, 엿, 다식 등 한식책을 넘기다 보면 놀란다. 달기는 하나 천박한 설탕의 흔적은 없다.

우리는 곧장 약속이라도 한 듯이 커피집으로 옮겼다. 결혼과 사랑을 주제로 세대간 심도 깊은 대화가 이어졌다. ㅎ은 언니들에게 “결혼하고 싶어요. 남자 좀 구해주세요.” ㅂ은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좋은 남자 아니면 안 하는 게 나아.” 밤이 깊어갔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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