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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1.18 14:15 수정 : 2010.11.20 09:30

아오모리 미술관 명물인 나라 요시토모의 ‘아오모리의 개’.

[매거진 esc] 다자이 오사무와 나라 요시토모의 고향 아오모리를 가다

이야기는 풍경으로 술술 풀려나오고, 풍경은 어느새 사람이 되어 있었다. 늦가을 일본 혼슈섬 북쪽 끝 반도의 땅 아오모리현은 자연과 인간과 문화가 극적으로 만나는 무대가 된다. 싸늘한 북국(北國)의 냉기, 비장하게 저무는 석양, 새빨간 사과 열매와 샛노란 너도밤나무의 단풍이 때이른 산야의 눈밭에 어우러졌다. 그 풍경 속에 불안, 황홀을 안고 살다 스러진 한 소설가의 지난한 삶과 불온함을 그리는 화가의 숨결, 고풍스러운 옛 성과 근현대 건축의 자태가 있었다. 보는 관광으로 후다닥 즐기기엔 되새김질 거리가 너무 많은 향수의 고장에서 2박3일의 여정은 너무 짧았다. 아오모리를 어머니의 땅으로 연모했던 일본 근대문학의 거장 다자이 오사무, 세계적인 팝아트 작가 나라 요시토모의 사과 향기 같은 상상력을 느껴본 ‘짧지만 굵었던’ 아오모리 여정의 기록.

해탈한 강아지 | 나라 요시토모가 만든 무념무상한 표정의 강아지는 보살처럼 나를 내려다본다. 높이 8m의 거대한 크기에 한없이 평온한 강아지 상의 자태가 그 아래 작은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한 판타지에 젖게 만든다. 이 해탈한 강아지 상의 이름은 ‘아오모리 겐’(아오모리의 개). 문화 투어를 염두에 두고 온 이라면 아오모리시(현청 소재지) 외곽의 공항에 도착한 직후 바로 들르게 되는 아오모리 현립 미술관의 명물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관 내부.

항상 절실한 마음으로 악동 소녀와 강아지의 팝 이미지를 그린다는 나라의 심상한 내면을 엿보게 되는 작품이다. 루이뷔통 매장 건축으로 유명해진 거장 아오키 준이 설계해 4년 전 완공된 이 미술관은 온통 흰색의 석고 입방체 같은 미니멀 스타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 안에서는 나라 요시토모의 드로잉, 그림들과 가로 15m, 세로 9m인 거장 마르크 샤갈의 발레 무대용 그림 대작들이 별세계를 만들고 있다. 2006년 나라의 서울 전시 당시 그의 작업실 설치작업으로 만든 <서울하우스>가 그대로 옮겨와 전시중인 것도 묘한 인연을 느끼게 한다.

건축가는 5000여년 전 일본 조몬시대(신석기시대)의 유적인 바로 옆 산나이 마루야마의 발굴 현장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역사 유적을 뜻하는 검은 흙빛 입방체(큐브) 위에 밑면이 오돌토돌한 백색 입방체를 맞물려 놓고 그 사이 공간에 은은한 전시공간을 차려 놓았다. 미술관 벽을 화폭 삼아 아오모리의 로마자 첫 글자 A와 현의 상징 숲을 형상화한 네온사인이 밤에 빛난다. 옛 유적의 역사와 근현대 미술 거장의 예술혼, 이를 두루 꿰는 현대건축가의 창의력이 지자체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행복하게 만나는 현장이다. 마침 기획전시실에서는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스튜디오 명작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원화를 소개하는 특별전(내년 1월10일까지)이 열리고 있었다. 근작 <마루 밑 아리에티>에 아오모리현 히라카와의 근대 일본식 주택 세이비엔이 나온 것을 기념하는 전시다.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등에 나온 명장면들의 정밀한 원화엔 기계 설계도처럼 색감의 톤과 장면 전환을 지시하는 깨알 같은 글씨들이 가득하다.

아오모리의 명물인 고쇼가와라의 네부타전시관.
다자이 오사무와 석양… | 아오모리시 서쪽 고쇼가와라는 일본 젊은 문학도들의 우상으로 군림하는 대작가 다자이 오사무(1909~1948)의 고향을 찾아가는 문학기행의 출발점이다. 기행의 초점은 고쇼가와라에서 그의 고향 가나기로 가는 쓰가루 철도를 타고 저녁노을을 보는 것. 역에서 열차가 출발하면 곧 석양빛 물든 레일이 꼬리를 끌면서 멀어져 간다. 레일 너머로 비치는 이와키산의 장엄한 풍경은 어머니의 자태 그것이다. 지평선 너머로 저무는 햇살을 묵묵히 받은 하늘 구름들이 비장한 회색빛을 발하고, 밭엔 추수를 끝낸 짚단이 널려 있다.

철컥철컥 기우뚱거리는 이 협궤열차의 이름은 ‘달려라 메로스’호. 네번 시도한 끝에 결국 자살에 성공했다는 다자이 오사무의 생가인 소읍 가나기의 ‘사양관’(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사양’에서 따온 기념관)을 가려면 반드시 타야 하는 꼬마 열차다. 열차 이름은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제목인데, 겨울에는 난로를 때는 스토브 열차로 변신한다. 남 눈치를 보며 자학하는 인간형을 담은 <인간실격>, 일본 귀족가문의 전후 몰락사를 담은 <사양> 등의 자전적 소설로 익숙한 이 창백한 작가는 아오모리의 유력 가문 출신이다. 시골 가나기의 대저택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에 얽힌 후대 사람들의 추억이 지금도 아오모리를 배회한다. 가나기와 열차 메로스호 곳곳에는 광고판은 없고 온통 작가의 소설 경구로 뒤덮여 있다. 고향 쓰가루 반도를 여행한 작가의 추억이 담긴 소설 <쓰가루>(1944년 작)의 마지막 구절을 적은 경구판이 눈앞에 걸려 있다. “… 안녕 독자여, 살아 있다면 언젠가 또. 힘내서 가자. 절망하지 마라. 그럼. 실례.”

점박이 무늬로 가득한 미술관 내 관객 체험 촬영 공간.

가나기의 사양관은 건평 1300㎡의 거대한 근대 일본풍 대저택이다. 노송나무에 붉은 기와를 얹은 담장을 두르고 1층에 일본 상류층 다다미 가옥이, 2층에는 양식 회의실이 자리잡은 일양 절충식의 건물. 다분히 을씨년스럽다(다자이 사후 수십년 여관으로 쓰였다). 사라진 명문가의 쓸쓸한 뒤안길, ‘내가 태어난 것이 곧 실수’였다며 자신의 출신 배경을 경멸했던 다자이의 독백 때문일까.

깨달음의 계곡 시라카미 | 단풍의 향연을 만나는 길이다. 시라카미 산지는 아오모리현 남서부에서 아키타현 북서부에 걸쳐 자리잡은 면적 약 13만㏊에 이르는 삼림 지역이다. 1993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은 10월 말 때이른 눈이 내려 지역 대표수종 너도밤나무의 노란 빛깔과 단풍나무의 빨간 빛깔 그리고 산머리의 눈이 삼색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 지역 동쪽의 해발 650m의 쓰가루 고개에서 1시간가량 트레킹을 한다. 클로버잎 비슷한 신맛의 가타바미(괭이밥)를 씹으면서 너도밤나무, 산죽, 가에데(단풍)나무 길을 기분좋게 걷는다.

‘달려라 메로스’호.

“시라카미 산지의 가치는 단순히 원시림이 잘 보존된 데 있다기보다는 나무와 풀들이 서로 공존하며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데 있어요.” 안내를 맡은 에코투어 회사 대표인 도키 쓰카사는 이렇게 설명하며 작은 나무피리를 꺼내어 불었다. 눈앞에 펼쳐진 숲의 명물 머더트리(어머니 나무) 너머로 깨달음을 전하는 전통 가락이 울려퍼졌다.

아오모리 특산 옻칠 공예품 제작을 시연중인 전통 장인.

작은 ‘교토’ 히로사키 | 아오모리현 서남쪽의 히로사키는 원래 벚꽃으로 유명한 고도. 17세기 이래 이 지역의 정치·경제 중심지였던 이곳은 ‘도호쿠(동북)지방의 교토’라는 별칭답게 고풍스런 성곽 외에 주변 동네에 에도시대의 옛집과 근대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일본의 근대화 시기 선진적인 건축양식, 도시계획의 실험을 미국 서부처럼 막 개발되던 도호쿠 지방의 도시들에서 벌였기 때문이다. 모두 내려서 걸어가야 하는 게조바시(하승교)에서 내려 성의 중심인 덴슈(천수)각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점점 색깔이 여무는 단풍숲 사이로 망루인 ‘야구라’들이 드문드문 보이고, 잘 정비된 공원 곳곳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부근의 풍속 특산품 센터인 ‘쓰가루한 네부타무라’에서는 지역 특산인 종이등 조형물 장식인 네부타 상과 네부타 축제 공연 시연, 또다른 민속 풍물인 전통 악기 샤미센의 연주 등을 즐길 수 있다. 선율의 강약이 명확하고 담백한 리듬감으로 귀에 닿는 샤미센의 <아리랑> 연주가 여정의 말미를 수놓았다.

벚꽃 단풍으로 유명한 히로사키성.

아오모리=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여행쪽지

사과와 가리비는 꼭 맛보세요

⊙ 가는 길 |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타고 2시간20분. 화·수·금·일 주 4회 대한항공이 운항한다. 도쿄로 가서 반나절 도쿄 구경하고, 신칸센 타고 아오모리로 가는 코스도 요즘 나왔다. 신칸센은 아오모리 남부의 어항 하치노헤까지만 운행됐지만, 12월4일부터 신아오모리역까지 운행을 시작한다. 약 4시간 걸리던 아오모리-도쿄가 3시간20분으로 크게 단축돼 색다른 투어 체험이 가능해졌다.

⊙ 여행 코스 | 국내 여행사들은 대개 아오모리시-히로사키성-화산호 도와다호와 주변의 계곡 오이라세 계류, 고마키 온천 등으로 일정을 짠다. 이와키산 산록에서 골프, 온천을 즐기는 투어도 선호되는 편. 그러나 패키지 프로그램과 별개로 흥미로운 일정을 얼마든지 짤 수 있다. 제이아르 철도 고노선의 관광열차 ‘리조트 시라카미’를 타고 동해 쪽 해안 절경을 즐기는 것도 좋다. 교통이 불편하긴 하지만 홋카이도와 마주보는 쓰가루 반도, 무쓰 반도 등의 바닷가 풍광도 환상적이다. 여행사 담당자들이 입을 모아 절경이라고 추천하는 곳이다. 젊고 체력이 있다면, 이런 색다른 일정을 짜서 추진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이다.

⊙ 먹을거리 | 단연 사과와 가리비다. 일본 국내 생산량의 절반을 넘으며 무농약, 무비료의 ‘기적의 사과’ 재배지로도 유명하다. 각종 명품 사과종은 물론 사과잼, 사과파이 등 가공제품이 다양하다. 해산물로는 가리비가 최고다. 하치노헤역에서 열차 도시락(에키벤)으로 나오는 가리비 조린 도시락은 반드시 먹어봐야 할 별미다. 이 밖에 이곳 특유의 과자 ‘센베’를 맑은 장국에 넣어 수제비처럼 풀어 먹는 ‘센베지루’가 유명하다.

⊙ 온천 | 일본 도호쿠(동북)지방의 대표적인 온천지다. 한국 관광객들에게는 아오모리야, 나쿠아시라카미의 온천, 도와다호 주변의 온천 등이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고즈넉하고 운치 있는 온천을 찾는다면, 동해 바닷가 노천탕에서 낙조를 볼 수 있는 후카우라의 불로불사 온천과 전기등 없이 램프등으로만 밝히며 산속의 고적한 분위기를 전해주는 아오니 온천 등을 추천할 만하다.

⊙ 여행 문의 | 아오모리현 서울사무소 (02)771-6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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