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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5년 전 배우 고현정이 이혼과 관련된 무성한 소문과 함께 연예계에 복귀했을 때, ‘떠도는 말들에 다치지 않느냐’는 한 언론의 질문에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비 오는 날 비를 맞기 싫으면 아예 외출을 하지 말아야지 우산을 써도 옷은 젖게 마련”이라고. 즉 비가 오는 날 길을 나서기로 했으면 옷이 젖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배우 고현정을 한번도 좋아한 적이 없지만, 이 말은 내 인생의 고비고비를 넘는 힘이 돼 주었습니다. ‘기자가 되기로 했으면 물먹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되고, 직장을 다니기로 했으면 모욕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결혼을 하기로 했으면 이혼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고, 출산을 하기로 했으면 평생 복장 터지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시부모와 함께 살기로 했으면 구박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고, 자식을 남의 손에 맡기기로 했으면 죄인이 되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연애를 하기로 했으면 이별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고, 불륜을 하기로 했으면 감옥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운전을 하기로 했으면 욕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고, 아이폰을 사기로 했으면 통화 중 전화가 끊기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술을 먹기로 했으면 개가 되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되고, 안주를 먹기로 했으면 몸무게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지난 4월 ‘esc’ 팀장이 되고 나서는 이 말을 되새길 일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팀장이 되기로 했으면 부하직원과 상사로부터 ‘쌍끌이’로 욕먹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며. 그렇게 버틴 덕에 저에게도 드디어 이런 날이 왔습니다. 남들에겐 탈출(escape)인지 몰라도 저에겐 등골을 빼먹던 esc로부터 드디어 탈출하게 됐습니다.
최근 사내 인사가 나서 저는 이번주부터 문화부 영화 담당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습니다. 새로 온 김진철 팀장은 사회부, 경제부, 문화부 등을 두루 거친 민완 기자입니다. 새 팀장에게 새로운 지면을 기대하시고, 저는 영화면에서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김아리 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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