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2.16 13:33
수정 : 2010.12.1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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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역사에서 사진을 찍는 여행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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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2000년대 음악인들이 추억하는 경춘선의 낭만
197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세대나 2000년대에 다녔던 세대나 마찬가지다. 경춘선은 청춘을 나르는 철도였다. 또한 음악이 울려퍼지는 기차이기도 했다. 떼 지어 춘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은 친구들은 겁도 없이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경부선, 호남선, 대한민국 철도 어디에도 허용되지 않을 무질서가 경춘선 안에서는 낭만이었다. 여러 세대의 음악인 및 관계자들에게 경춘선에 얽힌 추억을 들어봤다.
70년대 학번인 성공회대 김창남 교수는 김민기와 더불어 한국 노래 운동 1세대다. 엄혹한 시절이었으니만큼 사뭇 남다른 이야기를 들려줬다. “70년대 말, 즉 유신 정권 후기에는 청량리역에서 경찰들이 기타를 빼앗았죠. 유원지 가서 춤추고 노래하는 거 꼴 보기 싫다는 거였지. 퇴폐풍조 단속이었어요. 청량리부터 춘천까지 2시간40분 동안 조그만 역들을 다 들르면서 다니던 완행열차 시절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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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친 경인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 (오른쪽) 폴라로이드카메라는 여행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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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이자 어어부 프로젝트의 보컬인 백현진은 경춘선 하면 산과 강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길거리에서 개처럼 떠돌아다닐 때 친구랑 처음 갔었어요. 제일 싼 비둘기호를 탈 수밖에 없었지. 설령 돈이 있었다 해도 그래야 할 것 같은 청년 때의 의무감 같은 게 있었다고나 할까. 비둘기니까 이름도 예뻤고. 통일보다는 비둘기가 청춘에게 편했나 보네. 매일 한강만 보다가 북한강을 보는 게 유니크한 경험이었어요. 닭갈비랑 막국수, 소주를 진탕 먹었는데. 춘천 갔으니 이외수 선생 얘기도 했었을 거고. 그 양반 주변에는 도인들이 많다는데 우리도 한번 언제 놀러가자고 친구와 작당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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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들썩한 춘천행 열차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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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빼앗겨도 흥겨운 춤·노래 이어졌고
백현진과 동갑(1972년생)인 허클베리핀의 이기용도 비슷한 방황의 시기에 첫 경춘선 여행을 했다. “고등학교 중퇴하고 방황할 때 같이 알바하던 형, 누나들이 나를 다독여 준다고 강촌에 갔었어요. 열여덟살 때였는데. 청량리에 가는 것부터가 설레었죠. 드디어 기차 여행이란 걸 하는구나, 하는 설렘이 있었어요. 풍경들도 새로웠고. 강촌에 내려서 강가 큰 바위에 앉아서 삼겹살 구워 먹으면서 소주 한잔 했었더랬죠. 그때 형들이 삼호니 세광이니 하는 출판사에서 나온 포켓가요 펼쳐놓고 기타 치면서 노래도 하고. 그 뒤로도 여러 번 갔었지만, 계곡 위에 서 있던 강촌 역사의 첫 모습이 기억에 강렬히 남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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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내고 경춘선 여행길에 오른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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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아티스트이자 밴드 못(M.O.T)의 이언은 음악인 중에서는 많지 않은 공대 출신이다. 남자투성이인 공대 엠티보다는 다른 모임에서의 그것이 기억에 남을 터. “공대였지만 시문학회가 있어서 기차 타고 배 타고 예닐곱명이 춘천 중도에 갔었습니다. 자전거도 타고 강을 보면서 술을 마시고. 나름 명색이 시문학 동아리인데다가 대학교 1~2학년 때였으니 감성이 오죽 돋았겠어? 우리가 비록 공대생이지만 세상과의 감성적 소통에 대해서 닫아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둥, 대단치 않았던 얘기들을 대단하게 했던 것 같네요. 그중 나를 짝사랑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때 살갑게 굴더니만 나중에 아니나 다를까, 고백하더라고.”
과방 잡기장에 가득하던 춘천의 나날
언니네 이발관에서 기타를 치는 이능룡은 참으로 ‘안습’한 얘기를 들려줬다. “아직 기타를 못 칠 때여서 애들 치는 것만 구경했죠. 아웃사이더였던 편이라 말도 안 하고 창밖만 바라보며 강촌까지 갔었지. 좋아하던 동기가 있었는데 거기서 술 먹고 고백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걔한테는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고백하려고 둘이 있다가 걔 남자친구 얘기만 듣고 왔던…. 자기 남자친구 때문에 힘들다고 울더라고. 강도 있고 하니 물수제비를 했는데 잘못 던져서 여자애들한테 확 던졌어요. 빗맞아서 다행이지 큰일 날 뻔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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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청춘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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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을 목전에 두고 있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윤덕원은 엠티 대격변의 현장 증인임을 자처했다. “고향이 창원이라 대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경춘선을 탔어요. 늘 무궁화 타고 다니다가 통일호를 타니 헐렁한 느낌이었는데. 그때는 필름카메라로 사진 찍어서 과방 잡기장에 붙여놓기도 했고, 핸드폰이 막 보급될 때라 학교 앞 서점에 메모나 삐삐번호 남겨서 연락했었는데 군대 다녀오니 그런 문화가 싹 사라지고 없었죠. 시위나 학생회도 마찬가지고. 경춘선이 없어지는 걸 몰라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역시 같은 연배인 장기하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춘천에 엠티 가보니) 대학교 온 것 같았고, 이게 대학가의 낭만이라는 거구나 싶었어요.”
글 김작가 noisepop@hanmail.net,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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