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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2.23 09:44 수정 : 2010.12.26 13:33

마크 뉴슨 ‘위커 체어’.

[매거진 esc] 공산품 반감에 투자가치 있는 디자인 가구 인기몰이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현빈은 미술관에서 선을 본다. 시간낭비를 안 하기 위해서다. “걸음걸이를 보면 성품 나오고, 그림 보는 안목 보면 교양수준 보이고, 미술관에 어울릴 사람인지, 클럽에 어울릴 사람인지, 향수가 노골적인지 우회적인지 답이 빠르거든요.”

미술관에서 여자를 간 보는 현빈처럼 좋은 가구를 보러 미술관으로 가는 이들이 있다. 바야흐로 ‘리빙아트의 시대’, 가구를 미술품과 동일선에서 보는 흐름이 나타나면서다. 게다가 투자가치까지 더한 디자인 가구들이 화랑가에 몰려들고 있다.

그중에서도 대세는 빈티지다. 카페, 레스토랑, 아파트 전시장까지 디자인을 가미한 건물마다 포인트 인테리어로 빈티지 가구가 없는 곳이 없다. 빈티지 가구는 대량생산이 본격화되기 이전인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모던한 느낌의 가구다. 중고품처럼 예스럽지만 1900년 이전 고풍스러운 느낌을 담은 앤티크 가구와는 다른 세련된 멋이 있다. 올해 미술계에는 이런 빈티지 가구 전시회가 활발했다. 아틀리에 아키의 ‘안녕, 스칸디나비아?’전, 국제갤러리의 ‘아르데코 마스터피스’전, 피케이엠 트리니티갤러리의 ‘바우하우스 앤 모던 클래식-사보컬렉션’전 등이다.

찰스 앤 레이 임스 ‘라운지 체어와 오토먼’.

샤를로트 페리앙 앤 장 프루베 ‘도서관 책장’.

빈티지 가구의 인기는 화랑을 벗어나 미술품 경매 영역까지 닿았다. 국내 최대 경매사인 서울옥션은 올해 경매사로는 처음으로 디자인 가구의 경매를 시작했다. 지난 4월 첫 디자인 경매의 낙찰률은 90%였다. 올해 네 번 진행된 디자인 경매의 평균 낙찰률도 70%를 웃돈다. 통상 미술품 경매 낙찰률(2010년 서울옥션 기준 평균 69%)과 비슷하거나 이를 웃도는 수준이다. 외국에서 디자인 경매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자리잡았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걸음마 수준이지만 서서히 불을 지펴가는 중이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갤러리 크로프트’의 구병준 실장은 “빈티지 가구의 희소성을 알아본 이들이 늘면서 디자인 경매 시장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지 나카시마, 경매시장 최고의 인기


지난 12월14일 서울 평창동 서울옥션에선 올해 마지막 디자인 가구 경매가 열리고 있었다. 이날은 장 프루베, 조지 넬슨 등의 가구 30점이 경매에 부쳐졌다. 금색으로 치장된 안드레아 살베티의 알루미늄 벤치 ‘트론치’가 추정가 1800만원으로 가장 높은 낙찰가가 예상됐다. 하지만 낙찰가는 1500만원. 추정가 1500만원이 매겨진 마크 뉴슨의 ‘위커 체어’와 동일한 낙찰가다. 두 작품 모두 이날 디자인 경매의 최고가 낙찰 상품이 됐다. 서울옥션의 신승헌씨는 “추정가는 전시장 판매 가격, 동일 작가의 작품 가격 등을 고려해 매겨지는 참고적인 가격”이라며 “대신 작품의 가치를 보여주는 가격이기 때문에 이보다 적은 가격으로 낙찰을 받았다면 행운인 셈”이라고 했다.

조지 나카시마의 ‘다이닝 테이블 세트’.

디자인 경매품들은 알만한 사람들은 알아보는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조형미에 눈뜬 건축가들이 좋아한다는 조지 넬슨의 ‘액션 오피스 데스크’, 편안함이 탁월해 정형외과 의사들이 좋아한다는 르 코르뷔지에 ‘롱 체어 엘시4’, 2008년부터는 단종된 색이라 소장 가치가 있는 찰스 앤 레이 임스의 오렌지색 ‘엘시더블유’ 의자 등은 인테리어잡지 좀 봤다는 이들이 모두 탐을 내는 작품이다. 이날 경매에선 이 유명작품들이 모두 적정선에서 경매가 이뤄졌다. 30점 중 27점이 낙찰됐고 총 낙찰가는 1억7620만원을 기록했다. 구병준 실장은 “디자인 경매시장이 걸음마 단계”라며 “그래선지 카피 제품이 넘치는 찰스 앤 레이 임스, 필리프 스타르크 등 인기 디자이너의 작품이 아닌 의외의 작품이 경매에서 각광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올해 서울옥션이 연 네 차례의 디자인 경매에서 최고가를 받은 가구는 무려 1억4500만원에 거래된 조지 나카시마의 테이블 세트다. 나카시마의 작품은 미국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가진 유일한 가구 컬렉션으로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 덕분에 경매에 나올 때마다 모두 높은 가격에 팔렸다. 명성만큼 국내에서 인기가 없는 디자이너는 핀 율이다. 미국의 가구회사 베이커사를 위해 디자인한 ‘베이커 소파’가 그의 대표작이다. 구 실장은 “핀 율은 북유럽 가구의 대표주자지만 국내에선 아직 대중성을 얻지 못해 저평가된 디자이너”라며 아쉬워했다.

찰스 앤 레이 임스 ‘엘시더블유’ 의자.

아는 사람만 가치를 알아본다는 빈티지 가구는 생활 속에서 세월의 때가 묻을수록 가격이 높아진다. 조각이나 그림처럼 모셔두는 작품이 아닌 생활 속에서도 사용이 가능한 예술품이다. 지금은 가격이 비싸 가정용보다는 디스플레이용으로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많이 찾지만 근래엔 모방가구가 쏟아질 만큼 인기가 높다.

쓸수록 가치 더하는 빈티지 가구의 매력

빈티지 가구의 가장 큰 매력은 시대별 소재와 형태 등 유행하는 디자인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1920년대 작품들은 실용적이고 모던한 디자인의 바우하우스 스타일이, 1960년대에는 퓨처리즘의 영향으로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구가 유행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등나무 소재가 각광받으면서 마크 뉴슨의 ‘위커 체어’ 같은 디자인이 대세를 이뤘다. 서울옥션이 경매시장으로 가져온 디자인 가구도 이런 시대적 흐름을 볼 수 있는 1920~2010년 작품들이다.

처음 디자인 경매를 시작할 땐 특별한 홍보·교육이 필요할 만큼 디자인 가구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으나 이제는 컬렉터들이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작품을 구해달라고 주문할 정도로 인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구병준 실장은 디자인 가구 경매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첫째 가구시장에서 불투명하게 책정됐던 가구의 가격과 인기 디자이너에 대한 검증이 이뤄졌고요. 둘째로 분리돼 있던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깨고 경매는 값비싼 미술작품만 취급한다는 거부감을 없앴죠. 셋째로는 생활 속 가구도 그림처럼 투자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리면서 국내 가구 디자이너의 작품들까지 대중의 관심을 넓혔다는 의미가 있어요.”

르 코르뷔지에 ‘롱 체어 엘시4’.

2007년부터 서서히 화랑가에 스며든 디자인 가구의 인기는 내년에도 이어질 조짐이다. 빈티지 가구에 대한 인기 바람 때문이다. 서울옥션 쪽은 “터무니없이 비싼 고가 가구나 저가의 중국산 가구에 질린 이들이 공산품 아닌 손때 묻은 친근하고 따스한 물건에 관심을 가지면서 생긴 빈티지 가구 열풍이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나 스칸디나비아 스타일로 통하는 북유럽 빈티지 가구의 가격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은 지난 10월 열린 서울옥션의 3회 디자인 가구 경매에서 중점 소개됐다. 심플하고 모던하게 자연미를 강조한 스타일로, 스웨덴의 대표적인 가구회사인 이케아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세계경제를 뒤흔드는 중국의 ‘큰손’들이 이런 북유럽 가구에 손을 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글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사진 제공 서울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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