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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1.06 15:19 수정 : 2011.01.08 10:16

택시 안타기, 내 재무관리 시작과 끝 (※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 esc] esc VS 작심삼일|박현정 기자의 적정용돈 측정·실천기

평소 일기 쓰기도 귀찮아하지만, 새해부터는 꼭 준비하고 싶은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독립. 30여년간 부모님 집에 빈대 붙어 편하게 살아왔으나, 영원히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결혼도 언제 할지 모르는 마당에 홀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삶에 익숙해져야 할 것 같았다. 서른이 되던 해, 집에서 나와야겠다고 ‘결심’만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알아본 전월세 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집에서 해방될 순 있어도 매달 월세 대느라 월급에 영원히 구속될 것 같더라. 그때로부터 2년이 흘렀다. 마음을 다잡고 ‘3년 뒤 독립’ 계획을 세웠다. 맨몸으로 독립할 순 없으므로. 차근차근 여윳돈을 마련하고 싶었다. 이참에 백화점 세일기간에 제값 주고 옷 사고 이자가 가장 쌀 때 장기예금 넣는 ‘삽질’도 그만하리!

2010년 12월29일 | 생전 살펴보지 않던 월급통장 입출금 내역을 뽑았다. 이미 3개월 전부터 적자 상태. 어디론가 사라진 월급의 행방을 찾아야 했다. 일단 재무교육을 해주는 사회적 기업 ‘에듀머니’를 찾아 2시간에 걸쳐 상담을 받았다. “한달 수입이 얼마죠?” “간식비는?” “의료비는?” 질문이 쏟아지지만 답하긴 어려웠다. 어디에 얼마를 쓰는지 따져본 적이 없다. 재무교육 강사는 무조건 ‘아껴 쓰라’고 하진 않았다. 대신 같은 돈을 쓰더라도 만족감을 더 느끼는 쪽으로 지출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담 결과, 예·적금을 털면 서울시내 월세 보증금 마련이 가능했다. 혼자 살게 되면 생활비·주거관리비가 매달 추가로 나간다. 월급을 지금같이 쓰다간 매달 적자폭도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 쓰는 돈을 줄여야 한다.

교통비·통신비·문화생활비 등 매달 정기적으로 쓰는 돈을 먼저 따져봤다. 의류·미용·경조사비 등 비정기적 지출금액을 연 단위로 추산해봤다.

이렇게 분류해 보니 ‘월급 도둑’은 금방 나왔다. 바로 택시비. 월급의 약 20%를 야금야금 먹고 있었다. 매달 쓰는 택시비를 절반으로 줄여 저축으로 돌리고 통신요금제 변경으로 확보되는 2만원으로 책 한 권 더 사 보기로 했다. 이렇게 항목별 지출금액을 살짝살짝 조정하면서 매달 써야 하는 금액을 정했다. 비정기적 지출 항목 중에는 줄일 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이 두 항목을 활용해 하루 적정용돈을 산출했다.

{월급-(월간 필수 지출금액+(연간 지출액÷12))}÷30=1만8100원

1만8100원은 월급에서 고정·비고정지출액을 미리 뺀 뒤 남은 금액을 쪼갠 것. 교통비·밥값 등 자잘한 지출만을 포함한다. 하루 적정용돈만 썼는지 난생처음 가계부도 써보기로 했다. 매일 타는 택시비만 줄여도 해볼 만한 도전 아니겠는가.

12월30일 | 택시 놓기가 힘들었다. 신년호 커버사진에 출연시킬 옛날식 ‘빨간’ 돼지저금통을 찾아 온 동네를 뒤지느라 오전 시간 허비. 몸도 천근만근인데다 팀 점심약속도 있던 차 ‘택시 한번 타도 3000원은 남겠다’ 싶었다. 점심식사 뒤 마포구 공덕동 일대에서 돼지저금통 찾기를 계속했지만 녀석은 쉽게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결국 신촌행. 저금통은 구했으나 날씨는 너무 추웠고 몸은 피곤했다. 빈 택시는 어찌나 많은지. ‘오후 일을 위한 체력 안배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택시에 몸을 실었다. 도전 첫날부터 실패다. 그래도 깨달은 점 몇가지. 약속시간을 어기고 싶지 않고, 택시도 타고 싶지 않다면 미리미리 움직여야 한다는 것, 현금이 없어도 신용카드를 가지고 다니다 보니 택시를 쉽게 탄다는 것.

12월31일 | 출퇴근을 지하철로 했다. 이게 얼마 만인가. 오늘의 성공 키워드는 샤워 시간이었다. 평소 샤워 시간은 보통 1시간이 넘는다. 이 시간을 10분 단축하니 오전에 여유가 생겼다. 덕분에 모닝택시를 외면할 수 있었던 것. 출근 뒤엔 그동안 방만 지출을 방조한 월급통장 정비에 나섰다. 비상금만 남겨두고 나머지 돈은 통장을 따로 개설해 몽땅 이체시켰다. 저녁 7시30분 약속을 위해 6시50분께 퇴근했다. 택시를 타지 않기 위해 비교적 여유있게 움직인 것이다. 아뿔싸! 휴대전화가 안 보인다. 버스정류장에서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책상 위, 서랍에도 휴대전화가 보이지 않았다. 가방 속을 보니 아까는 안 보이던 휴대전화가 보인다. 벌써 7시10분. 다음 버스를 기다리자니 약속시간에 늦을 것 같았다. 결국 택시 탑승. 저녁을 산 지인에게 후식을 쏘마 선언했다. 이왕 택시도 탔으니 그냥 오늘은 쓰자 싶었다. 그런데 이건 무슨 조화? 카페 송년이벤트에 당첨돼 수제 케이크 값을 아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오늘의 깨달음! 평소 휴대전화·열쇠 등을 자주 두고 나와 ‘한번에’ 출근·퇴근을 해본 적이 없다. 이 모든 걸 한번에 잘 챙기면 택시 안 탈 수도 있다.

2011년 1월1일 | 출근할 일이 없어서였을까. 도전 3일 만에 드디어 택시를 외면했다. ‘더치페이’를 숭배하는 대학 친구들과의 저녁식사 자리. 오늘은 성공하고 싶은 마음에 슬슬 저녁식사 값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커피 한잔 무료’ 쿠폰을 들이밀며 내가 내야 할 밥값 할인을 요구했으나 ‘진상’ 소리 들었다. 평소 아무 생각 없이 돈 쓰다가 예산을 의식하며 쓰려니 갑자기 쪼잔한 사람이 된 기분.

사흘 중 이틀은 실패. 그래도 실패라고 단언하기에는 이른 시점. 짧고도 긴 지난 3일을 돌아보니 무개념 ‘재무관리’는 나의 사소한 습관에서 비롯됨을 깨달았다. 불규칙한 수면, 목욕 중 사색, 가방에 든 소지품 찾아 헤매기 등의 습관들은 내 여유시간을 빼앗아가고 이는 다시 택시 탑승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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