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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1.06 15:39 수정 : 2018.09.08 19:43

[매거진 esc] esc VS 작심삼일|박미향 기자의 현미 다이어트 도전기

한 장의 사진 때문이다. 시작은 사소했다. 책장에서 툭 떨어진 14년 전 사진 속의 나는 ‘참 얇았다’. 배는 볼록하지 않고 늘어진 턱살도 없다. 비만의 징후는 어디에도 없다. 사진 속의 나를 포토샵으로 옆으로 쭉 늘이면 지금 모습이다. ‘나름 귀엽지’ 하고 철없이 생각하다가는 성인병에 걸려 오래 못 살 게 분명하다. 최근 건강검진에서 몸무게가 표준에서 약 7㎏ 초과됐다고 판정받았다. 그래서 의 새해 작심 도전으로 선택한 것이 ‘다이어트’다. 비만은 우리 몸에 들어가는 것과 나가는 것의 불균형에서 시작한다. 대식가인 내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먹을거리를 조절하는 일이 가장 큰 과제였다. 아침은 푸짐한 미역국에 밥 한 그릇 뚝딱, 점심은 전날 마신 술을 해장하기 위해서 칼로리 높은 육개장으로 채우고 저녁식사는 삼겹살과 폭탄주를 거나하게 마시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오는 순환을 끊어야만 한다. 스테이크나 빵, 초밥도 줄여야 한다. 모질어져야 한다. 식사량 조절을 위해 현미밥을 선택했다. 현미밥 다이어트다. 식감도 거칠고 별맛도 없는 현미밥으로만 세끼를 먹는 것이다. 몸무게가 표준이 될 때까지. 왜 현미냐? 현미는 섬유질이 많아서 포만감이 오래간다. 수분을 흡수하면 부피가 커지는 섬유질의 특성 때문이다. 많이 먹어도 그다지 살이 찌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배가 고프지 않다.

현미는 벼를 1차 도정한 쌀이다. 맨 바깥쪽 껍질인 왕겨만 벗겨낸 검푸른 색깔의 알맹이다. 백미에 견줘 탄수화물은 적지만 단백질과 지방, 칼슘, 철, 리보플래빈 등이 많다. 만능 건강지킴이다. 우선 서점을 찾았다. <현미밥이 보약이다> <병 안 걸리는 식사법, 현미밥 채식> <직장인 살빼기 전략> 등 서점에는 현미밥을 이용한 다이어트 책들이 즐비했다. <직장인 살빼기 전략> 의 저자 김찬걸씨는 1년간 현미밥 다이어트로 20㎏ 넘게 줄였다. 88.2㎏에서 67㎏으로 변한 김씨의 모습은 천지가 개벽한 모습이다. 그는 아침 7시에 현미밥과 2~3가지 나물로 아침식사를 하고 점심은 현미도시락을 먹었다. 저녁 모임의 횟수는 예전과 같지만 모임 전에 집에 들러 현미밥으로 배를 채우고 갔다고 한다.

작심을 실천하기 위해 첫째로 해야 할 일은 현미를 구입하는 일. 현미는 유기농 현미가 적당하다. 도정을 1번만 하기 때문에 일반 현미에는 농약이 남아 있을 수 있다. 윤리적 소비를 강조하는 생협(소비자생활협동조합)을 이용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생협은 생산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주고 소비자에게는 좋은 제품을 공급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운동이다. 대표적인 생협은 ‘한살림’, ‘두레생협연합’, ‘아이쿱’이 있다.

작심 첫날 | 전날 구입한 4㎏짜리 유기농 현미로 밥을 지었다. 아침은 현미밥 한 공기와 김을 먹었다. 도시락통을 2개 샀다. 야근 때문이다. 도시락에는 시금치가 반찬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 동료들은 삼삼오오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회사에 있는 카페테리아 ‘짬’에서 조용히 작은 도시락을 열어 주섬주섬 밥알을 씹어 삼키며 신문을 봤다. 차 한잔 마시러 온 동료들이 한마디씩 한다. “우째, 밥을 그리 불쌍하게 먹는겨.” 웃음으로 답한다.

저녁식사는 동료들과 함께 회사 앞 분식집. 내 손에는 덜렁덜렁 작은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분식점 식탁에는 화려한 계란말이와 매콤한 김치찌개가 유혹하고 있었다. “에, 한 모금은 괜찮아. 김치찌개 오늘따라 맛나네.” 아! 적들이 공격한다. 다이어트의 기본 수칙 가운데 하나는 저염식이다. 짠 음식만 적게 먹어도 몸무게는 1㎏이 준다. 짠 음식은 우리 장기를 붓게 한다. 나물만을 취했다. 첫날을 무사히 넘긴 나는 자신감이 붙었다.


현미 도시락
작심 둘째 날 | 유혹의 광풍이 불었다. 점심식사를 무사히 현미식으로 마친 나는 그날 오후 ‘ 기자들이 만난 김어준’ 인터뷰 취재 건으로 동료들과 회의실에 자리를 잡았다. “배고프다”는 김어준씨의 아우성에 동료들은 샌드위치와 프레첼 등을 잔뜩 준비했다. 코끝에 프레첼이 보였다. 프레첼은 독일빵이다. 가운데에 꼬여 있는 모양이 예뻐서 유럽 등지의 빵집에서는 간판 디자인으로 많이 사용한다. 쫀득한 빵 안에는 팥죽처럼 부드러운 치즈가 들어 있다. 눈앞의 프레첼이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첫날 성공했잖아, 조금 먹는 건 괜찮아.”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나 만난 거 오랜만이잖아, 왜 이래, 나 섭섭해지려고 해.” 프레첼이 흐느끼는 것 같다. 측은지심에 프레첼의 요구의 아주 조금 호응했다. “아! 달콤해, 이 녀석 제대로 데워졌는데.” 위가 벨리댄스를 춘다. 금세 후회가 밀려왔다.

저녁식사는 거대한 악마의 유혹이었다. 송년회였다. 1년 만에 보는 이도 있고, 축하할 일이 있는 이도 있었다. 흥겨운 술판이었다. 1차는 막걸리였다. 시큼한 발효미학의 정수가 뒤통수를 때리고 있었다. 제주흑돼지 보쌈이 상큼한 채소와 함께 등장했다. 이 친구들이 다시 말을 건다. “언젠 안 먹었어? 한 점 정도는 괜찮아. 예전에 먹었던 거에 비해서 양도 적잖아. 제발 나를 사랑해줘.” 머리 위로 악마와 천사가 마구 소리를 지른다. 천사 왈 “지금 무너지면 계속 무너지는 거야. 출렁이는 배를 생각해봐.” 악마 왈 “이거 먹는다고 살이 더 빠지지는 않아. 딱 한번이잖아. 친구들을 봐. 안 마시면 섭섭해한다고.” 지근지근 머리가 아플 때 후배가 폭탄주를 건넨다. “선배 오랜만에 만났는데 한 잔은 해야지.” 후배의 권유는 심장을 여는 소리다. 한 잔을 받아 마시고 얼굴이 붉게 변하고는 기분이 좋아진다. 적들이 이긴 것이다. 작심한 지 이틀 만의 일이었다. 다행히 평소 마시던 양보다 적게 마신 덕에 다음날 숙취는 없었다. 작심의 적들에게 침공은 당했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장기 전투 태세로 돌입했다. 효과는 있었다. 1주일 만에 1㎏이 줄었다. 우와! 현미밥이여, 만세! 7㎏을 빼는 그날까지 “고고 씽~”

mh@hani.co.kr


현미 이렇게 골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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