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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요정 이진원씨. 북하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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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요정 유고: 나는 어떻게 달빛요정이 되었나
나는 달빛요정이다. 왜 하필 ‘달빛요정’이냐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그 뜻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인터뷰를 많이 했더니 이젠 모범답안도 생겼다. “‘달빛요정’은 제가 피시통신 시절부터 쓰던 아이디구요, 그렇게 몇 년을 쓰다가 미래가 안 보이는 제 삶을 격려하기 위해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라는 노래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이 노래가 밴드 이름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한숨에 발음하기 힘든 불친절함도 마음에 들었구요.”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매번 참으로 친절하게 답변해주지만, 홈페이지만 한번 훑어보고 와도 다 아는 내용 아닌가. 속으로는 열불이 난다오, 기자님들아.
나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라는 밴드를 혼자서 이끌고 있다. 요새는 공연을 위해 밴드를 조직해 한 달에 한 번 정도 공연을 하고 있어 겉으로는 홍대 바닥을 굴러먹는 많은 보통의 밴드들과 다를 바 없으나, 앨범을 만들 때는 제작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으니 원맨밴드라 불러도 그리 거창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원맨밴드라는 분류가 뭔가 음악적인 대단함을 과시하는 듯한 느낌이 들 때는 가끔 ‘싱어송라이터’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 표현도 가끔은 부담스럽다. 난 노래를 잘 못하니까. 그렇다고 ‘음유시인’이라고 불리는 건 더 민망하다. 그래서 생각해낸 말이 ‘가내수공업 뮤지션’.
처음이자 마지막, 한 번만으로 그치고 말리라 생각했던 가내수공업. 그렇게 소위 ‘가수’로 데뷔한 게 2003년, 그 후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몇 장의 정규앨범과 몇 장의 미니앨범을 낸 나름 중견이라면 중견인 뮤지션이 되었다. 그리고 그만큼의 나이를 먹었으나 나의 음악 제작방식은 여전히 가내수공업에 가깝고 형편도 그때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음악만으로 평균적인 수준의 삶의 질을 누린다는 건 불가능하다. 상판이 좋든가 몸빨이 좋든가 말빨이 좋든가 춤을 잘 추든가 인간관계가 넓든가 아니면 최소한 웃기기라도 하든가.
하지만 나는 음악으로만 살기로 하였다. 서른 넘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념앨범을 내기로 결심할 때도 몇 년을 고민했고 3집을 낼 때쯤에 찾아온 허탈함에 몸서리칠 때도 결론은 결국 역시 나는 음악을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것. 그러려면 나는 많은 걸 포기하면서 살아야 한다. 구질구질하게 사는 법에 익숙해져야 한다.
빚을 내서 1집을 만들었다. 그 빚을 지금도 갚고 있다. 대한민국 평균의 남자는 평생 빚을 갚으며 산다. 나도 마찬가지. 친구들은 차를 사고 집을 사고 애 키우는 데 빚을 지지만 나는 음악을 하기 위해 빚을 졌다. 어울리지 않는 비싼 옷을 10년 할부로 산 셈이다. 평생을 갚아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뮤지션의 신분을 갖기 위해 평생 갚아야 할 큰 빚을 졌다. 하지만 언젠가는 대박이 날지도 몰라. 그 로또만큼의 확률을 향한 내 욕망의 흔적.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그렇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은 욕망이다. ‘73년생 이진원’이 아닌 내가 스스로 붙인 이름을 갖고 싶었던 욕망. 현실의 이진원은 대한민국 하위 70퍼센트의 인간이다. 그래서 나는 무대에서 달빛요정의 탈을 쓰고 평균치의 인간이 된다. 노래하는 이진원은 달빛요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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