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1.20 14:11
수정 : 2011.01.2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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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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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대한민국 남자들이 거의 다 그렇듯 나도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었다. 아버지와 다정하게 얘기한 적이 별로 없었다. 내 기억으로는 아버지와 두 문장 이상의 대화를 했던 적이 거의 없었는데, 대중목욕탕에 같이 갈 때만 예외였다. 내 등을 밀어 주실 때마다 이런저런 얘기를 붙이셨고 나도 그때만큼은 “네, 아니요”가 아닌 다른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아버지와 난 목욕탕에 가는 걸 좋아했다. 지금은 대부분 집집마다 욕실이 있지만 내가 어릴 적엔 집에 욕실이 없는 경우가 많았고 욕실이 있다 해도 난방비가 아까워 겨울엔 샤워하기가 쉽지 않았었다. 일주일에 한번 일요일이면 아버지는 형과 나를 데리고 목욕탕에 가셨고 때를 밀어 주시면서 대화를 시도하신 것 같다. 자상한 성격은 아니셨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남다른 데가 있으셨던 것도 같다. 한번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으셔서 남자애를 여자애인 것처럼 바꿔 얘기를 했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내가 계집애 같아서 남자 같은 애를 좋아한다고 하셨다. 남자 같은 애는 안 되는 거냐고 물으니 웃으시면서 “네가 좋으면 됐지 무슨 상관 있냐”고 하셨다.
20년이 더 흐른 뒤에 아버지의 생신에 남자 같은 애가 아닌 남자를 데리고 갔다. 가족 모임에 다른 이를 데리고 온 적이 없어서 식구들 모두 의아해했고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으시기에 친구라고만 했다. 그 후로 5년 동안 부모님의 생신이나 명절 때마다 같은 사람을 데리고 나타나면서 자연스럽게 커밍아웃을 했다. 그러다 그 사람과 헤어져 혼자 명절에 갔더니 아버지는 왜 같이 오지 않았는지 궁금해했다. 내가 헤어졌다고 말씀을 드리니까 “친구끼리 헤어지는 게 어딨냐?”며 다음에 같이 오라고 하셨다. 아버지께 그 사람은 친구가 아니고 우리는 헤어졌다고 다시 정확하게 말씀을 드렸고 아버지는 아무 말씀을 하지 않았다. 그 뒤로는 길게 사귄 사람이 없어서 가족 모임에 늘 혼자였다. 내가 안돼 보였는지 가끔은 같이 올 ‘친구’는 없냐고 물으셨다.
아버지는 당뇨합병증으로 시력을 잃고 고생하시다가 지난해 이맘때 세상을 떠나셨다. 몇해 전부터 거동을 못하시고 누워만 계셨기 때문에 갑작스런 일은 아니었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파트너를 데리고 병원에 갔었다. “아버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혹시 아버지가 충격 받으시면 큰일 나니까 그러지 말라고 파트너가 말렸다. 그래서 ‘같이 지내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했다.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리고 며칠 뒤에 의사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얘기를 들었고 난 아버지가 떠나시기 전에 꼭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정신이 온전하실 때 마음을 전해야 하는데 입술만 달싹일 뿐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며칠을 망설이다가 손을 꼭 잡고 말씀을 드렸더니 웃으시면서 “안다”고 하셨다. 가끔씩 그때 그 순간을 떠올리면서 아버지를 추억하곤 한다. 2010년에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김조광수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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