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1.20 15:51
수정 : 2011.01.2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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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렌즈, 추억의 삼양옵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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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카메라 히스토리아
영화 <클래식>의 미술감독을 맡았던 송윤회 선생님의 작업실에 쌓여 있는 책 꾸러미에서 1989년 1월호 <디자인 저널>을 발견했다. 뒤표지 전면광고에 눈길이 멈췄다. 광고를 실은 기업은 삼양옵틱스였다. 20년도 더 지난 잡지에서 삼양옵틱스 광고를 발견할 줄이야. 자동카메라, 렌즈, 쌍안경 등 생산하는 제품(무려 114개, 지면으로 보여줄 수 없어 아쉽다)으로 페이지 전체를 빼곡하게 채웠다. 디자인 잡지에 싣기엔 촌스럽기 그지없는 광고지만 무엇을 만드는 회사인지 독자에게 확실하게 알려준다.
우리나라에서 카메라나 렌즈를 만드는 회사가 ‘삼성’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삼양옵틱스가 설립된 해는 1972년(당시 회사명은 ㈜한국와코),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카메라 광학 제품 만드는 일을 해왔다. 삼양옵틱스 이전에는 대한광학(1967년)이 문을 열어 카메라 ‘코비카’ 시리즈를 생산하기도 했지만 1980년대 중반 문을 닫았다. 대부분의 부품을 국산화했던 브랜드였다. 그나마 외길을 걷고 있는 곳은 현재로선 삼양옵틱스가 유일하다.
삼양옵틱스의 전성시대는 1980년대 중반이었다. 삼양옵틱스의 렌즈 브랜드인 ‘폴라’(Polar)는 세계 교환렌즈 시장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했었다. 삼양옵틱스 누리집 자료에 따르면 ‘40%’라고 하지만 정확한 수치로 보긴 힘들다. 하지만 폴라 렌즈가 당시 많은 인기를 끌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폴라 렌즈의 가장 큰 경쟁력은 ‘가격 대비 성능’이었다. 카메라 애호가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싼값으로 렌즈를 구할 수 있었고 빼어난 결과물은 아니지만 참지 못할 정도로 참혹(?)하지도 않았다. 굳이 수치로 표현하자면 내가 치른 값의 150%에 해당하는 성능을 보여줬다고 할까. 니콘이나 미놀타 정품 렌즈 하나 살 돈이면 약간의 과장을 섞어 중고 폴라 렌즈를 화각별로 모두 구입할 수 있을 정도였다. 장비 욕심은 많았으나 정작 카메라 가방은 텅 비어 있었던 대학 시절(미놀타 X700MPS를 썼다) 폴라는 주머니 사정에 구애받지 않고 입맛대로 고를 수 있는 유일한 렌즈였다. 그중에서도 미놀타 카메라에 맞는 135㎜ F2.0 폴라 렌즈는 오랫동안 함께했었다.(폴라와 함께 값이 저렴한 렌즈 가운데 비비타(Vivitar)도 있었지만 마음에 드는 화각을 쉽게 구하기 힘들었다.)
단골로 다니던 카메라 가게에 폴라 렌즈를 다시 되팔라치면 눈물을 머금고 거의 거저 넘기다시피 했다. 그렇게 넘긴 렌즈들은 역시나 주인아저씨의 눈길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바로 진열장 아래 구석자리에 처박혔다. 라이카, 카를차이스, 하셀블라드, 롤라이, 니콘, 캐논…. 진열장에서 대접받고 있는 카메라와 렌즈에 비교하면 찬밥 신세였다. 하긴 폴라 렌즈를 찾는 나 같은 손님도 주인아저씨에게 대접받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윤도 남지 않는 저렴한 중고 카메라와 렌즈들만 산다고 매번 귀찮은 질문만 받았으니 말이다.
폴라 렌즈는 계속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수동 필름카메라와 함께 누렸던 전성시대는 끝났지만 디에스엘아르(DSLR)용 폴라 렌즈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가격은 ‘착하다’. 지난해 출시된 니콘용 폴라 85㎜ F1.4 렌즈의 가격은 ‘단돈’ 36만원. 똑같은 화각과 조리개 값을 가진 니콘용 카를차이스 렌즈의 인터넷 최저가격 146만원과 비교하면 딱 4배다. 폴라 85㎜ 렌즈 사용기를 찾아 읽어보니 ‘가격 대비 성능비’가 월등하다는 이야기가 많다. 여전히 제값은 하는 폴라 렌즈다. 그런데 왜 ‘가격 대비’란 말이 그렇게 가슴에 걸리는지 모를 일이다.
글 조경국 카메라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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