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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1.27 14:31 수정 : 2011.01.27 14:31

옥수동 왕순대 첫 미니앨범

[매거진 esc] 인디계 신인 ‘옥수동 왕순대’·아이돌 노래 바꿔 부르는 ‘트마킹’

서른아홉 아줌마의 영화감독 도전기를 유쾌하게 그린 영화 <레인보우>에서 중학생 아들은 심드렁하게 노래한다. “아~ 여기는 오타쿠의 방입니다 / 우리 엄마 똥배는 북한산 같아 / 아~ 우리는 정말 이상한 가족입니다 / 이 아줌마~는 영화도 안~ 찍으면서 감독이래요~.” 신수원 감독이 직접 쓴 이 노랫말에 대체 어떤 멜로디를 붙여야 한단 말인가. 작곡가는 고심 끝에 두 가지 버전을 내놓았다. 힙합과 트로트. 감독의 선택은 중학생과 딱히 어울리지 않을 듯한 트로트였다. 멜로디가 쉬워 자꾸 흥얼거리게 만드는 매력 때문이었다.

요즘은 슈퍼주니어·빅뱅·애프터스쿨 등 ‘아이돌’ 가수들도 트로트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명절마다 지상파 방송에서 아이돌 트로트 대전이 벌어진다. 지난해 12월 열린 제3회 교통방송(TBS) 대학생 트로트 가요제 예선 참가자는 무려 230여명이었다. 트로트 가수를 꿈꾸는 음대생, 추억 쌓으러 나온 공대생, 마냥 트로트가 좋다는 법대생…. 무대에 오르려는 이유는 저마다 달랐으나, 이들에게도 트로트가 더는 ‘끌리지만 외면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트로트 해방의 시대가 왔다고나 할까.

화려한 사투리 ‘옥수동 왕순대’의 이중생활

이런 가운데 인디음악계에도 트로트를 하는 사나이가 홀연히 등장했으니, 이름 하여 ‘옥수동 왕순대’. 붕가붕가레코드 소속이다. 서울 옥수동에서 나고 자란 조승현(31)씨는 열아홉이란 어정쩡한 나이에 알딸딸한 소주 맛에 눈떴다. ‘순대+머릿고기+소주’ 세트를 5500원에 팔던 순대 가게를 자주 찾아 ‘순대’라 불리니 주거지와 별명의 조합으로 탄생한 이름이 ‘옥수동 왕순대’렷다. 그는 지난해 11월 미니앨범(EP)을 발표했는데 수록된 8곡의 작사·곡, 기타·드럼 연주, 코러스를 담당했다.

옥수동 왕순대(조승현)

인디음악계에서 트로트 음반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어딘가 쿨한 느낌의 ‘달파란’(강기영)을 패러디한 ‘볼빨간’(서준호)은 일찍이 ‘지루박리믹스쑈!’(1998년) ‘야매’(2001년) 두 장의 앨범에서 테크노와 트로트를 접목시켰다. 현재 메탈밴드 활동을 하고 있는 서준호씨는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코미디언이나 황학동·청계8가의 구리구리한 분위기를 그리다 보니 익숙한 트로트 멜로디를 자연스럽게 활용했다고 한다. 황신혜밴드도 ‘짬뽕’(1997년)을 통해 펑크와 트로트를 섞어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냈다. 옥수동 왕순대는 통기타를 기반으로 사투리가 쓰인 ‘19금’ 노랫말을 기상천외한(?) 추임새와 함께 펼쳐 놓는다.


“똑 떨어지겄네~ 으미 / 똑 떨어지겄네~ 얼래 / 쌀도 돈도 싸그리 다 똑 떨어지겄네 / 똑 떨어지겄네~ 으미 / 똑 떨어지겄네~ 얼래 / 강추위에 너덜너덜 내 삐리리리가 똑 떨어지겄네(으찌야 쓰까이) / 퇴근길 깜장 비니루 안에 나의 벗 두꺼비 한마리 / 옆집 새댁 김치찌개 끓이는 냄시에 희헌하게 내 마음이 벌렁벌렁(아 이러면 안 되는데)”<똑 떨어지겄네>

노래만 듣고 왕순대의 직업을 속단하지 마시라. 그는 천주교 비영리단체 ‘평화의 모후 선교단’의 음악단장이다. ‘홀리한’ 성가를 부를 때 그는 도미니코 사비오(세례명)로 변신한다. 그는 사투리에 대한 존경심이 있는데 특별히 호남 쪽에 끌린다. 왜 그런지는 스스로도 잘 모른다고. 지방 출장을 자주 가는데,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시장통엘 나가 소주잔을 기울이며 지역 어르신들과 말을 섞는다. 특히 어르신들이 쓰는 욕은 친근하다. 정말 욕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트마킹의 싱글 1집 리패키지 앨범

착실히 직장생활을 하던 그에게 “가수 데뷔하라고” 줄기차게 권유한 이는 친구인 음악 프로듀서였다.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데 관심이 많은 왕순대는 재미로 트로트를 만들었는데, 이 작업이 음반 제작으로 연결된 것이다. 노랫말도 트로트의 그것처럼 적당히 유치하고 솔직하다. “친구랑 이야기하다 ‘삼겹살 땡기지 않냐’는 말이 나오면 삼겹살에 대해 쓰는 식이죠. 모듬전이라는 노래는 서울 전집에서 어르신들이 격한 말을 하면서 서로를 반기는 모습을 보고 지은 노래예요. 그런데 앨범 내고 나서 전 섭취량이 어휴~. 하루에 전집 두번 가보셨어요?”

“먹고 싶다~ 동태전 / 먹고 싶다~ 부추전 / 먹고 싶다~ 김치전 / 먹고 싶다~ 감자전 / 막걸리~ 한대뽀에 / 모가지가 시뻘게지네 헤이~”<모듬전>

그는 모든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트로트라고 굳이 꺼릴 게 없었다. 그래도 트로트를 하게 된 데는 남다른 성장사가 있지 않을까. “어릴 적 엄마가 일본여행길에 가져온 중국 노래를 들었어요. 그 덕인지 7살 때 바이브레이션이란 기술을 습득했죠.” 트로트를 들으며 ‘캬~’ 탄성을 내지를 때도 있다. 특히 현철의 그 끊길 듯 끊기지 않는 비브라토(떨림)는 경이로울 따름이다.

지금까지 무대에 두번 올랐다는 왕순대는 또 공연이 하고 싶다. 대기실에선 덜덜덜 떨었지만, 관객의 웃음소리 한방에 어느 순간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싸이나 김장훈 공연은 굉장히 즐겁잖아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발차기는 (김장훈에게) 저작권이 있으니까 (손 뻗으며) 지르기를 한다든가, 순대를 썰어서 ‘순대가 순대 준다’ 뭐 이런 걸 한다든가.”

트마킹(정연태)

트로트 메들리 가수에 도전한 ‘트마킹’

재미로 트로트 하다 트로트 음반을 낸 사나이는 여기 또 있다. 그의 이름은 트로트 마스터 킹의 줄임말 ‘트마킹’. 트로트 시장엔 제2의 장윤정·박현빈을 꿈꾸는 ‘신세대 가수’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으나 현실이 어디 그리 녹록할쏘냐. 1995년부터 와이앤제이(Y&J)라는 작곡가 그룹에서 활동하던 트마킹 정연태(38)씨. 그는 아이돌 노래를 트로트로 바꿔 부르는 걸로 유명하다. 2009년 빅뱅·투애니원의 ‘롤리팝’을 시작으로 최근 카라의 ‘점핑’까지 아이돌 노래를 트로트 버전으로 바꿔 부르며 인터넷을 통해 이름을 알리고 있다.

트마킹은 2006년 인천교통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매주 트로트 두 곡을 댄스 비트로 바꿔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트로트 가수가 된다. 레퍼토리가 쌓이자 그는 2007년 ‘고속도로 메들리’ 시장에 호기롭게 도전했다 “싹 망해” 버렸다. “메들리 시장은 어떤 음반이 성공하는지 분석이 잘 안 돼요.” 40년간 음반을 제작해 온 탑뮤직 서판석 대표는 “메들리 음반용 창법이 따로 있다”고 한다. 메들리 음반이나 테이프을 사는 어르신들은 정규 음반처럼 박자와 음정을 맞춰서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또 메들리를 엮을 때 형태가 다른 음악도 똑같은 박자로 만들어 마치 한 노래가 계속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줘야 한다.

트마킹은 메들리 음반에 넣었던 ‘미친 듯이’ 등을 재편곡해 싱글앨범을 내놨다. 전국 행사장을 다니고 지방 라디오 방송을 간간이 하다 보면 조금씩 노래를 알릴 수 있다. 방송은 이름이 알려진 트로트 가수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얼굴 내밀기가 쉽지 않다.

그는 2008년 설레는 마음으로 선 첫번째 무대를 기억한다. 안양의 한 찜질방에서 한달에 한번 여는 노래자랑 행사였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키높이 구두를 신었건만, 무대가 찜질방이었던 탓에 맨발로 노래를 불러야 했다. 지난해 함안에서 열린 청소년 행사 땐 트마킹이라고 소개하자 아이들이 알아보더란다. 역시 아이돌 노래를 트로트로 바꿔 부른 덕이다. 언제 뜰지도 모르고 뜨는 데도 보통 2년이 걸리는 트로트의 특성상 아직 그의 성패는 가늠하기 힘들다. 그래도 그는 긍정적이다. “시골 고구마 행사장에 송대관은 가지만 이효리는 갈 수 없잖아요? ”

글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사진 제공 붕가붕가레코드, 화이트스타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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