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2.10 11:20
수정 : 2011.02.1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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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인근 카페 ‘언플러그드’에서 기타를 배우고 가르치는 젊은이들. 왼쪽부터 신윤주, 박미령, 김종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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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20~30대 여성에 인기…슈스케 2 이후 ‘따뜻한 울림’에 끌려
공원에 자리를 잡은 젊은 남녀가 주섬주섬 꺼내든 건 통기타. “돈 기브 업 투 러브~”(don’t give up to love) 둘은 자연스럽게 화음을 맞추기 시작한다. 최근 방영중인 20대를 타깃으로 한 커피 광고의 한 장면이다. 지난해 신드롬을 일으켰던 엠넷 <슈퍼스타 케이(K) 2>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도 통기타다. 장재인을 비롯해 김지수·강승윤·김그림이 기타를 메고 있지 않았다면 ‘신데렐라’의 어쿠스틱 하모니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게다.
파릇파릇한 21세기 청춘들이 통기타를 들고 있다. 티브이나 영화 등 영상매체를 통해 친근해진 통기타를 직접 배우려고 나서는 것이다. 요새 낙원상가에선 초보자들이 주로 쓰는 10만원대 기타가 동이 날 지경이란다. 인터넷엔 아이유나 서현 등 연예인들이 들고 나온 기타 모델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 가득하다. 특히 주목할 만한 건 주요 문화소비층인 20~30대 여성 기타 인구의 증가 추세다. 놀 것도 많고 할 것도 많은 요즘 청춘들에게 통기타는 어떤 ‘맛’일까.
통기타 치며 밤새 노래를 부르는 건 아저씨 문화 아니었던가. 지금 통기타를 배우는 이들에게 이는 꼭 해보고 싶은 ‘로망’이다. 올 1월부터 서울 홍익대 인근 문화기획집단 ‘상상공장’이 마련한 통기타 강좌를 듣고 있는 직장인 강동옥(26·여)씨도 통기타를 치는 건 그저 꿈이었을 뿐이다. 그를 행동에 나서게 한 이들은 통기타를 든 여성 뮤지션들. 티브이에서 통기타를 치며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라고 못할쏘냐” 용기가 생겼다. 실력이 쌓이면 명동같이 사람 많은 곳에 나가 ‘버스킹’(길거리 공연)에 도전하고 싶다.
통기타 반주에 노래를 불러본 이들은 특별한 ‘희열’이 있다고 말한다. 대학생 신윤주(20·여)씨는 노래방 기계음이 아닌 통기타 선율에 맞춰 노래 부르는 게 좋다. “기타 음색이 제 노래 실력을 커버해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수들처럼 노래를 하지 못하더라도 즐길 수 있죠.” 남자친구에게 이벤트를 해주기 위해 기타를 잡았던 직장인 이정희(31·여)씨도 반주에 맞춰 노래 부르는 ‘맛’을 알아버렸다. 학원을 찾아 두달간 손가락이 ‘피 터지게’ 연습해 영화 <원스> 주제곡 ‘폴링 슬롤리’(Falling slowly)를 마스터했다. “내가 좋아하는 곡을 기타로 치면서 노래를 부르면 기분이 너~무 좋아요. 제대로 배워서 더 어려운 곡도 치고 싶죠.”
초보자들 울리는 ‘마의 F 코드’
품에 쏙 안고 연주해야 하는 통기타는, 때론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가 된다. 프리랜서 디자이너 강애진(26·여)씨는 기타를 안을 때 그 기분이 참 좋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게 취미였는데, 취미가 직업이 돼버리니 재미가 없더라구요. 스트레스 해소책을 찾는 중에 모델 장윤주씨가 기타를 들고 찍은 화보를 봤어요. 아~ 이거다 싶었죠. 기타를 치면서 누구와 경쟁할 것도 아니고 그냥 가지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피아노를 먼저 배웠다는 싱어송라이터 한희정씨는 곡 작업을 할 때 주로 기타를 이용한다. “소박함·소소함이 있어요 일상의 느낌이 나서 간편하게 작업을 할 수 있죠.”
물론 통기타를 배우겠다는 결심과 포기가 반복되면서 기타 입문곡 중 하나인 ‘등대지기’만 2년째 연습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사진·자전거·필라테스 등을 두루 섭렵한 ‘취미계의 얼리어답터’ 직장인 박아무개(32·남)씨는 지난해 가수 아이유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우머나이저’(Womanizer)를 통기타 버전으로 부르는 동영상에 필이 꽂혔다. 기타를 치면 연애도 수월할 거란 기대감에 낙원상가로 달려가 아이유가 쳤던 기타와 같은 브랜드 제품을 샀다. 학원에 갈 엄두는 도저히 못 내고 동영상 강의를 보며 독학을 시도했으나 도통 실력이 늘지 않아 지금은 포기한 상태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통기타 세계에 발을 디딘 이들을 좌절케 하는 첫 관문은 ‘마의 에프(F) 코드’. 검지손가락으로 6줄을 다 눌러야 한다. 연습 또 연습 이외에는 에프 코드를 짚는 비법이 따로 없다. 이렇게 ‘손맛’으로 만들어내는 따뜻한 소리는 통기타의 큰 매력으로 꼽힌다. 와이티엔(YTN) 전진영 아나운서는 3개월째 통기타를 배우고 있는데 매 순간이 포기의 고비였다고 한다. “굳은살이 박이기 전까지 손가락이 아프고 힘들어요. 그래도 치면 칠수록 처음엔 안 나던 소리도 나고, 그걸 듣다 보면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져요.” 통기타를 들고 나와 자작곡 ‘위드유’를 불러 지난해 엠비시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이인세(23)씨는 고교시절만 해도 비트 강한 메탈음악을 좋아했다. 그러나 점점 전자음이 들어가지 않은 소리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 울림이 좋아요. 좋은 통기타는 침대 위에 앉아서 줄 하나만 튕겨도 소리가 곱거든요.”
기타 닮은꼴 우쿨렐레도 인기
통기타의 높은 벽에 부딪쳐 ‘우쿨렐레’를 찾는 이들도 있다. 하와이 민속악기인 우쿨렐레는 4줄로 돼 있어 6줄짜리 기타보다 배우기 쉽고, 크기도 훨씬 작다. 오카리나·젬베 등에 이어 요즘 ‘대세’ 악기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네이버 카페 ‘우쿨렐레속 행복’ 회원 수는 수백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2만명을 넘어섰다. 서울 통의동에 위치한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우쿨렐레를 배우고 있는 직장인 김현정(27·여)씨는 지난해 작은 손 때문에 통기타 배우기에 어려움을 겪다 우쿨렐레를 발견했다. 깊은 울림은 없지만, 노래 반주가 가능하고 발랄한 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가벼운 만큼 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휴대성과 앙증맞음이 큰 매력이다. 이 때문에 마니아들은 마치 애완견 다루듯 우쿨렐레에 애칭을 붙여 부르기도 한다. 두살 난 아이에게 전자음 나는 장난감 대신 악기를 사주고 싶어 지난해부터 우쿨렐레를 시작한 이대흥(31·남)씨는 현재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악기에 흠집이라도 날까봐 아이가 만지려고 하면 막아선다. 그에게 우쿨렐레가 선물한 건 여유다. “일상에 치이다 보면 누구나 아름다운 섬으로 떠나 유유자적하며 살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우쿨렐레를 치는 순간만큼은 하와이에 있는 듯한 환상에 빠져요.” 우쿨렐레는 20~30대뿐 아니라 중장년층 사이에서도 퍼지고 있다. 10살짜리 딸과 함께 우쿨렐레를 배우는 엄윤섭(44·남)씨는 “옛날부터 아이와 함께 악기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불러보고 싶었는데, 우쿨렐레는 애들도 할 수 있어 선택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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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우쿨렐레 강좌 수강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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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하모니
따뜻한 손으로 연주하기 때문일까. 통기타나 우쿨렐레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준다. 지난달 21일 금요일 밤. 홍대 앞 거리에서도 가장 혼잡한 곳에 위치한 카페 ‘언플러그드’ 안은 바깥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10평 남짓한 공간에 20~30대 남녀 20여명이 옹기종기 모여 차를 홀짝거리며 통기타 공연을 감상 중이다. 밤 12시가 훌쩍 넘어서니 어느새 통기타 여러대가 협연을 하기 시작한다. 이들이 내는 하모니의 울림은 공간을 꽉 채운다. 이날 무대에 오른 이들은 이 카페의 기타강좌 수강생과 노래하고 싶어 찾아온 통기타 음악인이었다. 10여년 전 통기타 동호회에서 만난 주인장 세명이 3년 전 의기투합해 차린 이 카페는 책을 접할 수 있는 북카페처럼 차를 마시며 통기타를 쳐볼 수 있는 공간이다. 다행히(?) 각자 하는 일이 있는 주인장들 덕에 이곳은 가게라기보다 통기타 애호가들의 ‘사랑방’ 구실을 하고 있다. 1년 전부터 이 카페에 드나들었다는 통기타 음악인 이재훈씨는 “여기서 만난 다른 이들과 의기투합해 거리공연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6개월간 통기타를 배운 뒤 지난 연말 다른 수강생들과 함께 공연을 했던 박미령(23·여)씨는 준비과정이 재밌었다고 회상했다. 혼자 연습하면 지루한데 서로 조언을 해주다보니, 끈끈한 유대감이 생겨났다.
청춘들이 다시 통기타를 드는 현상은 현재 주류 음악으로는 채울 수 없는 감수성 가득한 음악에 대한 목마름을 반영한다. 강동옥씨는 “어릴 땐 유재하 음악 듣고선, ‘뭐야~’ 싶었는데 20대가 넘어서 다시 들으니까 뭔가 (가슴에) 팍 오는 게 있다”고 말했다. 인디 음악계에는 소소한 일상을 통기타 하나에 담아내는 싱어송라이터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거리공연팀도 크게 늘었다.
유행은 돌고 돈다. 오랫동안 주변부에 밀려 있었던 포크음악이 다시 대중들 곁으로 오는 것일까. 엠아르(MR)를 제거하지 않아도 목소리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말간 음악,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내는 하모니에 청춘들의 귀가 열리고 있다.
글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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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 돋는 ‘작업송’
사랑고백 노래는 이벤트계의 고전이다. 비교적 쉽게 기타를 치며 부를 수 있는 ‘작업송’을 꼽아봤다. 이 노래들은 인터넷에서 악보나 동영상 강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제이슨 므라즈 ‘아임 유어스’(I’m yours)
통기타·우쿨렐레 초보자들의 로망인 곡. 가사가 감미롭다. 코드보단 빠른 영어 가사 익히기에 더 애를 먹는다고.
씨앤블루 ‘사랑빛’
코드 4개가 반복되는 게 특징인데 초보자들이 잡기 힘든 하이코드가 하나 포함돼 있음.
뜨거운 감자 ‘고백’
중간에 속도가 바뀌기 때문에, 주법을 한가지로 할 경우 원곡의 맛을 살리기가 어려울 수도.
10센치 ‘오늘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요즘 대세인 노래지만 꽤 연습이 필요하다. 오른손으로 줄을 쳐서 소리를 내는 퍼크시브 주법이 들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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