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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낙원상가 취재에 동행한 한동원씨가 한 매장에서 기타를 치며 소리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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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기타리스트 한동원과 함께한 ‘생초보용’ 낙원상가 가이드‘통기타 한번 쳐보련다’는 결심 뒤 밀려드는 궁금증은 어디서 어떻게 어떤 기타를 사야 하는가다. 웬만한 물건은 인터넷을 통해 다 살 수 있는 요즘이지만, 기타는 매장에 들러 직접 소리도 들어보고, 안아보고 사라는 조언이 많다. 기타 매장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서울 종로의 낙원상가다. 1969년 완공된 낙원상가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상가건물 중 하나로 1970년대엔 옷가게나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토산품 가게가 주로 입점해 있었다. 음악상가로 변하기 시작한 건 1979년 탑골공원 정비사업 이후다. 공원 담장을 허물면서 인근에 있던 피아노 등 악기점이 낙원상가로 들어왔다. 1980년대엔 아시아경기대회·올림픽 유치 등으로 유흥업소 규제가 풀어지면서 라이브밴드 시장이 커져 기타·드럼 가게가 생겨났고 지금의 모습이 됐다.
뮤지션을 꿈꾼 이들이라면 한번쯤은 가봤을 명소이지만 ‘생초보’가 낙원상가에서 기타를 사는 건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 초보자는 처음 들른 매장 점원의 기에 눌려 다른 곳에 가볼 엄두도 못 내고 기타를 샀단다. 게다가 용산전자상가엔 어리바리한 손님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소위 ‘용팔이’가 있다면 낙원상가엔 ‘낙팔이’가 있다는 괴담을 듣다 보니, 안내자가 절실해졌다. 적임자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연휴특집 <적정관람료>를 납품하는 모범 필자 한동원씨다. 그는 무려 사반세기 동안 낙원상가를 들락거린 블루스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그와 함께 설 연휴를 코앞에 둔 지난달 31일 낙원상가 탐방에 나섰다.
‘톱밥기타’ 피하면 인터넷보다 낫다
초보자들이 주로 사는 기타는 10만~20만원대다. 기타리스트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파는 10만원 이하의 예뻐 보이는 기타는 ‘절대 비추’다. 일명 ‘톱밥 기타’로 불리는데 잘 망가진다. 대체로 크래프터·덱스터·스윙·데임·콜트 등 국내 브랜드의 중저가 모델을 고르는 게 안전하다. 중국에서 만든 제품과 한국에서 만든 제품의 질적 차이가 여전히 있는데, 25만원 정도면 한국산을 살 수 있다.
가장 먼저 들어간 낙원상가 2층 ㄱ매장에서도 여성 초보자가 사용할 20만원 안팎 기타를 찾으니 크래프터 준, 덱스터 DD-15 등을 추천했다. 현금가로 각각 20만원, 22만원. 인터넷 최저가와 비슷한 수준이다. 낙원상가 복도 중간에 있는 ㄴ매장에서도 역시 같은 브랜드를 추천했는데, 가격은 2만원 정도 더 저렴했다. 사려는 모델을 정했다면 미리 인터넷 최저가를 알아본 뒤 매장 몇 군데를 돌며 가장 싼 곳에서 구입하면 된다. 가방과 기타 스트랩, 튜너(조율)기 정도는 서비스로 얻을 수 있다. 한씨는 인터넷의 영향으로 초보자들이 많이 찾는 대표 제품들이 생겼고 대체적으로 가격도 고정된 것 같다며 신기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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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상가 매장 점원이 기타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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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도자기, 조심 또 조심!
1만~2만원 깎으려고 목을 매다 어이없는 실수로 수십만원을 날릴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낙원상가 곳곳에 놓여 있는 기타를 망가뜨리는 경우다. 상황은 이러했다. 기타를 살 때 넥(손가락을 올려놓는 부분)이 휘었는지 아닌지를 확인해보는 건 중요하다. 소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 이날 한동원씨가 낙원상가에서 살펴본 약 10대의 기타 중 1대가 휘어진 상태였다. 그런데 어떻게 넥 상태를 확인한단 말인가. “기타 머리 쪽에서 몸통 쪽으로 총을 겨누듯 바라보면서 플랫 끝 부분이 일렬로 정렬돼 있는지 보는 거죠. 한번 해보시죠~.” ㄱ매장에서 여행용 기타를 들고 넥 상태를 확인하려던 순간 “한쪽 눈 감으시고”란 말에 기타를 쥐고 있던 왼손의 힘도 스르르 풀려버렸다. ‘쿵!’ 기타는 그렇게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살펴보니 몸통 가장자리에 칠한 부분이 들고 일어나 버렸다. 점원은 안 됐다는 표정으로 물어내거나 사가란다. 기타 판매가격 15만원 중 5만원을 내놓고 나서려니 점원 왈, “여기서 기타 구입을 전제로 5만원을 달라고 말씀드렸는데, 이 정도 흠집이면 7만원은 주셔야 돼요.” 매장에 있던 사장이 나서 장부를 보여준다. 몇 백만원짜리 망가뜨려 물어낸 경우도 있는데 이건 별일 아니라며.
이렇게 쉽게 기타가 망가질 수 있다는 걸 모르는 생초보들이여, 자칫 가방에도 기타가 밀려 넘어질 수도 있으니 도자기 가게에 온 것처럼 조심, 또 조심하시라.
글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참고 <낙원상가의 변천: 악기와 음악인력 시장을 중심으로>(권정구, 세계음악학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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