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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부정 공포로 ‘남친’ 가두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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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Q 한·일 과거사 문제 신경 안 쓰는 일본 남자친구 연하의 일본인 남자친구와 2년째 사귀고 있는 28살 여자입니다. 그를 오래 만나면서 배운 것은 인종이나 문화, 국적이 생각보다 큰 문제가 안 된다는 겁니다. 남자친구와 갈등이 생기면 영어로 대화하며 잘 풀어나가는 편입니다. 그러나 제 남자친구, 일본인입니다. 역사적인 문제는 언제나 풀지 못하는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얼마 전 축구 한·일전에서 한국선수의 원숭이 흉내도 못마땅했지만 욱일승천기 등장이 사실이라면 일본 응원단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번은 남자친구와 한·일 역사에 대한 얘기를 나눴는데, 남자친구는 깊이 얘기하길 꺼렸어요. 둘 다 역사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니 나중에 공부를 더 하고 얘기하자 합니다. 전 답답해요. 한·일전 이후 온라인 게시판에서 일본에 대한 험담을 볼 때마다 왜 이렇게 심란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작 남자친구는 이런 문제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제가 너무 예민한 걸까요? 한편으로는 내가 아는 역사가 진정한 역사가 아닌 그저 학교에서 ‘배운 것’일 뿐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 어쩌면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일’이 아닌 ‘과거에 일어났다고 우리가 믿고 있는 일’이 아닐까, 회의도 듭니다. A 우리는 살아가면서 내가 어디까지가 개인이고 어디까지가 시스템의 일부인지 종종 헷갈리고 어디까지가 나의 주관적인 의견이고 어디부터가 시스템과 미디어의 강요와 영향인지 혼란스럽게 됩니다. 그간 일본인 남자친구와 큰 갈등 없이 잘 지내온 것도 ‘개인’으로서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해왔던 부분이 클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이 정면 대결하는 이슈가 터질 때, 그리고 그 안에서 내 입장을 규명하라는 소리 없는 주문을 받을 때 우리는 스스로의 ‘소속’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그 멍에와 굴레 말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다 다른 인간들이 저마다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감각이 희박한 한국의 온라인 게시판에서, 험한 얘기들이 오갈 때 심란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커뮤니티의 ‘일원’이지만 그 속의 얘기들에 ‘개인’으로서 쌈박하게 동조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주변의 모든 사람이 싫다고 하니까 나는 좋은데 좋다고 말 못 할 때, 난 아무리 봐도 별로인데 잘나고 뭣 좀 아는 사람들이 그것을 칭찬하니까 그냥 좋다고 같이 말해줄 때의 그 복잡한 느낌이랄까요. 그렇게 ‘남과 내가 다른 생각과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한국에선 늘 불편하게 느껴야 마땅한 감정이었습니다. 내가 곡해당하지 않을까, 내가 따돌림 당하지 않을까, 내가 상처 받지 않을까,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사실은 저들 말대로 내가 틀린, 잘못된 생각을 가진 게 아닐까,라는 자기부정의 공포를 갖는 것이죠. 그래서 많은 이들이 위태롭게 ‘튀기’보다는 안전하게 ‘묻어’가길 원합니다. 개인적 자아를 숨기고 ‘시스템의 일원으로서의 자아’라는 옷을 주섬주섬 꺼내 입고 다수의 목소리와 연대함으로써 심리적 짐을 덜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100% 나의 진실이 아니라면 더 큰 심리적 짐을 짊어지게 되니 자꾸 애초에 원인 제공(?)을 한 대상에게 시비를 걸게 됩니다. 네, 당신의 그 일본인 남자친구는 별 죄 없어요. 언제까지 일차원적인 반일감정에 대한 강박을 지녀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언제까지 ‘반일=애국’이라는, 이 성역, 금기처럼 맹목적으로 지켜지는 것과 관련해서는 대외적으로 찍소리도 못하는 파쇼를 감내해야 하는지 저야말로 답답합니다. ‘공부 좀더 하고 나중에 얘기를 하겠다’가 비겁하게 주제를 회피하는 것처럼 들리고 감정이 즉각적, 무조건적으로 표현될수록 왜 순수한 것으로 치부될까요. 욱일승천기 등장이 사실이라면(사실인지 알지도 못하는데 왜 미리 가정하고 증오하나요) 용서 못 하겠다는 것은, 실은 거기에 반응하지 않으면 배신자처럼 느껴질 자신이 용서가 안 되는 것은 아닐까요. 하물며 개인으로서 사랑을 나누는 상대는 일본 남자라는 원죄의식을 가진 상태에서 말이지요. 누가 뭐래도 우리 모두에겐 여전히 일본은 마음속의 영원한 ‘관념적인’ 숙적이고, 또 숙적이어야 하는 이 분위기. 하지만 습관적으로 거부하고 미워하는 것에만 익숙해지면, ‘노’의 타당성과 내용보다 누가 누가 더 격하게 ‘노’를 외치냐에만 집중할까 봐 우려됩니다. 왜냐하면 ‘노’를 표명한 것 자체에 이미 배불리 만족이 되거든요. 또한 ‘노’라고 했다면 뭐가 ‘예스’인지도 정확히 밝히고 인정해야지요. 역사문제와 일본인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연결시켜 고민하면 개념 있는 애국자 된답니까? 역사문제가 풀리지 못한 숙제라고, 남자친구와 문제를 일으킨들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축구 경기 때도 특정행동을 한 당사자들이 문제인 거지 이걸 국가정체성으로 직결하는 건 좀 성급합니다. 연인이 일본인이니까 한-일 관계가 개선되면 내 맘도 편해지겠다, 싶으면 차라리 시스템 레벨에서 여러 ‘운동’에 동참하십시오. 동방신기 일본 공연 때 몇 만명 일본 여자들이 그 앞에서 밤샘하며 한글로 만든 러브러브 플래카드를 흔들며 지조 없이(?) 흥분하던 영상뉴스를 접했을 때 기분이 묘하게 착잡했던 게 문득 기억납니다. 오오, 대한민국, 나이스!가 아니라 그 반대의 정황이 상상되었던 거죠. 내한한 일본 남자 아이돌 그룹에 정신줄 놓은 한국 여자들이라니, 상상만 해도 집단 린치 당할까 봐 진심으로 오싹해졌던 겁니다. 저 역시도 너무 예민했던 걸까요?임경선 칼럼니스트 ※ 고민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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