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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2.10 13:47 수정 : 2011.02.10 13:47

롤라이 먹은 삼성, 오 놀라워라

[매거진 esc] 카메라 히스토리아

1995년이다. 삼성이 독일 카메라 회사인 롤라이를 인수한 해는.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군 복무 중이었기 때문이다. 여자 친구가 보내준 사진 잡지에서 삼성이 롤라이를 인수했다는 기사를 고참의 눈치 보며 읽었다. 한달에 한번 ‘보안필’ 도장이 찍힌 사진 잡지를 받아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사진 잡지 구독은 팍팍한 군대 생활에서 큰 즐거움이었다. 내무반에는 별 읽을거리가 없던 터라 시간만 나면 꺼내 읽었다. 카메라 광고를 보며 제대만 하면 손에 넣겠다고 결심했던 카메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삼성이 롤라이를 인수한다는 소식을 읽었을 때 충격은 엄청났다. 20세기 초(1920년이다)부터 수많은 명품을 만들어온, 사진 역사의 한 축을 받치고 있던 롤라이가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사실도 꽤나 놀라운 일이었지만 삼성이 롤라이의 주인이 된다는 사실은 더더욱 믿기 힘들었다. 기사를 보면 삼성이 롤라이에 투자하는 연구개발비는 2100만마르크, 당시 환율로 117억원이었다. 세계적인 카메라 회사의 연구개발비치고는 적다는 생각이 들지만 롤라이의 한해 매출액이 5000만마르크였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매출의 40%가 넘는 돈을 재투자하는 삼성으로서는 큰 손해를 감수한 모험이었다. 오랜 세월 축적된 롤라이의 기술력과 삼성의 자본이 만났으니 엄청난 카메라들이 곧 쏟아져 나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삼성과 롤라이의 합작품은 대중적인 자동카메라에 한정되어 있었다. 롤라이를 디딤돌 삼아 ‘명품’으로 부를 만한 삼성카메라가 나오길 기대했지만 관심을 끌 만한 카메라는 없었다.

삼성과 롤라이의 동거는 오래가지 않았다. 1999년 결별했다. 하지만 미놀타, 롤라이, 펜탁스와 번갈아 손을 잡으며 끈질기게 카메라를 포기하지 않았던 삼성의 현재 기술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여전히 인상 깊은 ‘한방’이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말이다. 만약 지금까지 롤라이와 삼성이 손을 잡고 카메라를 만들었더라면 어땠을까. 삼성이 롤라이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롤라이35’를 재발매하면 대박일 거라 생각했다.

1962년 독일 카메라 제조업체인 비르진의 수석 연구원이었던 하인츠 바스케는 렌즈가 앞으로 튀어나와 있는 일반적인 모양에서 벗어난 ‘특별한’ 카메라를 개발했다. 렌즈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몸체 안으로 집어넣을 수 있어 간편한 카메라였다. 이 남다른 외형 때문에 대량 생산으로 이어지기 힘들었다. 바스케는 이 카메라를 제품화하기 위해 라이카와 코닥을 찾았다. 하지만 두 회사 모두 렌즈를 교환할 수도 없고, 눈대중으로 초점을 맞춰야 하는, 상식을 뒤엎는 외형인 하인츠 바스케의 카메라를 외면했다. 결국 바스케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받아들인 곳은 롤라이였다. 롤라이는 이 카메라에 ‘롤라이35’라는 이름을 붙였다.

‘롤라이35’가 출시된 해는 1966년. 그 후 1982년 싱가포르 공장이 문을 닫을 때까지 롤라이는 16년 동안 모두 20가지 모델을 출시하며 꾸준한 인기를 얻었다. ‘롤라이35’의 인기 비결은 바로 라이카와 코닥이 외면한 독특한 외형, 그리고 뛰어난 해상력을 가진 카를차이스 테사 40㎜ 렌즈를 장착하고, 셔터와 노출계도 당시로선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컴퍼(Compur)와 고센(Gossen)의 부품을 사용한 덕분이었다. 굳이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독일 베엠베(BMW)의 소형 럭셔리카인 ‘미니 쿠퍼’ 같다고나 할까. 성능을 떠나 끊임없이 새로운 모델을 내놓는 것도 수집벽을 가진 카메라 마니아들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단종된 지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20가지 ‘롤라이35’ 가운데 이가 빠진 모델을 찾아 이베이(ebay.com)를 뒤지는 ‘롤라이35’ 골수팬들이 많다. 명품은 세월이 지나도 대접받는 법이다. 삼성이 롤라이를 인수했을 때 복각판 ‘롤라이35’ 기념모델을 출시했더라면… 지금 생각해도 그게 아쉽다.

글 조경국 카메라칼럼니스트·사진 출처 www.rolleiclu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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