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1.02.17 11:35 수정 : 2011.02.17 16:37

2009년 재범의 투피엠(2PM) 탈퇴를 철회해달라며 팬클럽 회원들이 제이와이피(JYP)엔터테인먼트 사옥 벽에 글을 남기고 있다.(<한겨레21> 정용일 기자)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팬클럽 활동만으로는 만족 못해” 오빠따라다니기 팬

이달 초순 찬바람이 가시지 않은 밤, 서울 홍대 근처에 있는 한 건물에 소녀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유동인구가 별로 없는 지역이라 더욱 눈에 띈다. 그들이 이 조용한 거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오빠’를 보기 위해서다. 이 건물은 그 아이돌의 숙소. 일정을 끝내고 돌아온 아이돌을 만나려는 팬들이 진을 치고 있는 거다. 그 풍경을 만드는 이들을 세상은 ‘사생팬’이라고 부른다.

사생팬은 공식 스케줄이 아닌 사생활을 따라다니는 팬들을 일컫는다. 이 단어가 등장한 건 2000년대 중반의 일이다. 1990년대 중반 본격적인 아이돌 시대가 개막하면서 무대나 방송에서뿐만 아니라 사적인 일정까지 쫓는 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2000년대 중반 팬클럽 내부에서 자숙하는 분위기가 일었다. 그래서 공식 일정 말고는 관여하지 말자는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합의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팬클럽과 떨어져 자신들만의 문화를 구축했다. 그들에게 사생팬이란 이름이 붙었다.

“사생팬들은 공식 홈피에서 활동 안 해요. 개인 팬페이지에서 정보를 공유하거나, 아니면 자기들끼리만 전화로 연락하면서 네트워크를 갖추죠.” 사생팬 경력이 있는 어느 팬의 말이다. 팬 매니저를 통해 공식 스케줄을 확보하는 팬클럽과는 달리 사생팬들은 육탄과 첩보전을 통해 정보를 획득한다. 회사와 방송국, 숙소 등 주요 동선 앞을 분담해서 지키면서 아이돌의 동선을 공유한다. 사무실 직원들의 통화 내용을 엿들어서 일정을 파악한다. 매니저의 자동차 앞에 붙어 있는 핸드폰 번호를 따는 건 기본이다. 지인의 지인을 총동원해서 아이돌의 졸업사진을 확보하고 신상정보를 파악한다.

식당까지 따라간다. 매니저가 “여기는 장사하는 곳이니 들어오면 안 된다”고 해도 “우리도 밥 먹으러 왔다”며 연예인 옆 테이블에 앉기 일쑤다. 항공사나 신용카드 회사에서 일하는 다른 팬을 통해 출국 스케줄 등을 알아내는 건 예사다. 어느 아이돌의 경우 팬이 주민등록번호를 알아내서 성인 사이트 캐시를 충전해 ‘오빠도 사람이니 욕구를 달래라’며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건네줬다는 믿기 힘든 얘기도 전해온다. 공식 팬클럽이나 기획사나 그리 달가울 수는 없다. “아이돌도 사생팬까지 좋아하기는 힘들죠. 숙소 앞까지 와서 옷을 잡고 늘어진다든가, 연애 문제 같은 사적인 질문도 추궁하듯이 물어보면… 아무래도 좀 그렇겠죠.” 기획사 팬 매니저의 말이다.

사생팬들 사이에서도 불문율이 있다. 연예인을 직접 터치하지 않기, 숙소 근처에 쓰레기 버리지 않기, 건물 몇 미터 안으로 접근 안 하기 등이다. 룰을 어길 경우, 사생팬들 사이에서도 배척당한다. 사생팬들의 활동 반경에 접근 금지 명령을 당하기도 한다. 그런 결정을 하는 역할은 사생팬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팬, 즉 아이돌이 기억하고 있는 팬이다.

이런 사생팬이 있는 이유는 팬클럽에서 채울 수 없는 욕구 때문이다. 팬클럽이 ‘우리는 하나다’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희생하고 전체의 결정을 따른다면, 사생팬은 ‘내 욕구를 채우는 게 중요하다’는 거다. 사생팬을 경험했던 이들은 “일단 사생을 뛰면 절대 그만둘 수 없다”고 말한다. “남들이 보지 못한 걸 보고 무대 아래에서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특권 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타를 가까이서 많이 보고 싶다는 욕망은 모든 팬들에게 있을 것이다. 스타에게 접근할 권리를 갖고 있는 팬클럽 임원도 마찬가지다. 임원 규칙 중에는 ‘사생을 뛰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다. 어느 팬클럽 임원이 몰래 사생을 뛰다가 다른 팬이나 회사에 발각된 사건이 있었다. 임원은 물론이고 회원자격까지 박탈당했다. 그러나 오늘도 많은 사생들이 정보망을 곤두세우고 ‘오빠’를 쫓아다닌다. 자가용을 타고, 하루 20만원쯤 하는 ‘사생택시’를 타고, 그마저도 없으면 지하철을 타고.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hanmail.net
※ 위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음.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커버스토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