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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2.24 11:27 수정 : 2011.02.25 16:31

오로빌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원형광장에 모여 꽃으로 만다라를 만들고 있다. 둥근 금빛 건물은 명상홀인 마트리만디르.

김선우, 인도 공동체마을 오로빌로 간 까닭은?

세 번째 장편소설의 초고를 마쳐놓고 여행 가방을 쌌다. 봄에 첫 문장을 시작해 겨울을 맞는 동안 내 온몸을 들쑤시다 한없이 가라앉히기를 반복하던 소설이 마침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때마다 어깨와 손목의 신경을 날카롭게 건드렸다. 몸을 좀 쉬게 해야겠다, 는 생각이 들자 여행 가방을 자주 쳐다보았다.

거기에 설상가상, 맞부딪히는 구태의연한 정치권 뉴스들이 날마다 화를 부채질하는 형국이었다. 한 공동체의 가장 큰 현실 권력인 정치가 후져서일까. 어딘지 기형적인 욕망으로 가득 찬 싸움판 같은 사회 전체 분위기에서 잠시 벗어나지 않으면 작업도 불가능할 것 같았다. 잠수함 속의 토끼처럼 나는 숨이 찼다. 행복한 사람들이 보고 싶어….

그랬다. 나는 행복한 시스템 속의 개인들을 보고 싶었다. 개개인의 삶이 자신의 내면의 풍요에 맞춰지고, 시스템이 그러한 개인의 행복감을 훼방하지 않는 사회. 그런 공간 속으로 가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싶었다. 오로빌에 가야겠어.

이 지구상에 어떤 나라도 영유권을 주장하지 못하는 곳이 어딘가에는 있어야 합니다. 선한 의지와 진지한 열망을 지닌 모든 인간이 세계의 시민으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곳, 지고의 진리라는 유일한 권위에만 복종하여 살 수 있는 그런 곳이 어딘가에는 있어야 합니다. - 어 드림(A Dream)의 첫 부분

개인의 행복을 방해하지 않는 사회, 그곳에 가리라

유스캠프.
10년 전 오로빌에 대해 알게 된 후 언젠가 그곳에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A4 종이 한 장 분량의 이 ‘꿈’ 때문이었다.

1954년 8월, 자그마한 한 여인이 이런 꿈을 말한다. 1954년이면 세계가 불의 지옥을 막 건넌 후 냉전시대의 독기가 창궐하던 칼날 같은 시절 아닌가. 그런 혹한의 시절에 대한 반작용으로 전세계의 청년세대들이 일어나 사랑과 평화를 희구한 60년대의 물결이 아직 도래하기 전이다. 국가주의의 서슬이 삼엄하던 그런 시절에 ‘진리라는 유일한 권위’라는 말로 슬그머니 국경을 뛰어넘으며 기묘한 방식의 아나키즘 선언을 하고 있는 이 한 장의 페이퍼에 나는 매료되었다.

이곳에서는 일의 조직화와 봉사의 기회가 직위와 직권을 대신할 것입니다. 몸이 요구하는 것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제공될 것입니다. 전체 속에서 개인의 지적·도덕적·영적 능력은 삶의 쾌락과 권력을 더 많이 누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무와 책임을 위해 발휘될 것입니다.

그림, 조각, 음악, 문학 등 모든 형태의 예술적 아름다움을 누구나 골고루 누릴 것이며, 그런 기회는 사회적·경제적 지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신의 수용력에 의해서 정해질 것입니다. 이런 이상적인 장소에서는 더 이상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어 드림 중에서

매우 영적이며 지성적이고 미적인 꿈의 발현자인 이 담대한 여인이 인도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스리 아우로빈도의 영혼의 반려자이자 스리 아우로빈도가 ‘자신과 똑같은 한 의식에서 나온 두 개체’라고 한 미라 알파사라는 이름의 프랑스 여인인 걸 나중에 알았다. 그녀는 아우로빈도 사후에 그와 함께 꾸었던 꿈을 현실로 실현시키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면서 이런 ‘꿈’을 말했고, 그 꿈에 공명한 사람들이 남인도 타밀나두주 코로만델 해변의 황량한 벌판에 모여들었다. 자본권력과 정치권력이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지구상에 그 어떤 세속적 권력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고 싶어 한, 그러면서도 예술적인 사회를 꿈꾼 사람들이 모인 에너지의 장. 그렇게 오로빌이라는 ‘꿈’이 현실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세속권력에 자유로운 꿈의 공동체로의 여행

사다나 포레스트의 태양열 전지판.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린 집의 후원에 있던 예쁜 수로.
사실 미라 알파사의 이런 꿈은 신선한 것은 아니다. 인류 역사 속에서 ‘아름다운, 정의로운, 선한’ 사회를 꿈꾼 사람들은 얼마나 많았는가. 그리고 그런 꿈을 위해 인생을 통째 걸었던 아름다운 바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러므로 오로빌의 꿈이 나의 호기심을 지속적으로 자극한 것은 ‘꿈의 기획’이 ‘꿈의 좌절의 기획’이기도 한 무수한 선례들 속에서 오로빌이라는 공동체가 40년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고 게다가 점점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었다.

‘좋은 사회’의 이상을 꿈꾸는 이상주의자들에 의해 세계 도처에 만들어진 공동체들 중에 오로빌은 규모가 가장 큰 편이다. 미국의 트윈오크스가 100명 정도, 영국의 핀드혼이 400여명쯤 되는 규모이니, 몇십명의 초창기 멤버에서 시작해 2000여명의 주민에 뉴커머와 게스트까지 2500명 정도가 북적거리며 살고 있는 오늘의 오로빌의 규모는 압도적인 셈이다. 그러한 오로빌에서 나는 마음의 빗자루 같은 걸 들고 슬렁슬렁 마당을 쓸듯이 지내볼까 싶은 거였다.

그동안 여러 곳을 여행하고 살았지만 여행에세이를 쓰지 않았다. 모든 여행은 시와 소설로 전이되어 몸 바꾸기를 하므로 특별히 여행에세이라는 형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 여행으로 글쓰기를 하는 까닭은 우선 ‘행복의 감각’이 무디어지지 않게 스스로를 깨우기 위해서다. 다음으론 사람들이 똑같은 욕망을 욕망하게 되어버린 한국 사회가 숨이 차 도망 나온 참이었으므로, 부드럽게… 작게… 예쁘게… 한국 사회가 강요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때문이다. 말하자면 조금 더 행복해지고 싶은 거다.

이제 독자분들과 함께 여행을 시작한다. 이 여행을 통해 나와 당신, 우리의 ‘행복의 감각’이 조금 더 풍성하게 깨어날 수 있기를.

오로빌=글·사진 김선우/시인

잉태·포옹·사랑의 시인 김선우

시인 김선우
관능과 여성성. 시인 김선우(사진)와 그의 문학세계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들이다. 여기에 여성성은 강렬하다는 형용사로 수식되고 관능은 에너지라는 명사를 받든다. ‘강렬한 여성성’과 ‘관능적 에너지’라는 단어의 조합은 얼핏 모순적이나, 이는 모성과 생명이라는 열쇳말로 이어진다. 그래서 그의 시어는 물기 많고 잉태하고 포옹하고 사랑한다고 평가받는다.

김선우는 1996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대관령 옛길’ 등 10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2000년 첫 시집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을 내면서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2003년 <도화 아래 잠들다>, 2007년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등 시집을 펴냈다. 2002년 첫 산문집 <물 밑에 달이 열릴 때>, 2003년 어른을 위한 동화 <바리공주> 등 작품의 폭을 산문으로도 넓혔다. 김선우는 2008년 첫 소설 <나는 춤이다>를 썼다. 월북 무용가 최승희(1911~1969)의 삶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지난해에는 소설 <캔들 플라워>를 펴냈다. 2008년을 뒤흔든 촛불집회의 경험을 소설에 담아내 화제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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