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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3.03 09:42 수정 : 2011.03.03 09:42

이브생로랑의 벨 드 주르 클러치

[매거진 esc] 황선우의 싱글 앤 더 시티

마침내 겨울이 갔다. 꽃샘추위가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겨우내 신세지던 검은색·쥐색·회색의 육중한 코트 삼종세트와는 그만 헤어지고 싶다. 코트 입은 어깨를 아래로 더 끌어내리던 무겁고 큰 빅백도 마찬가지다.

빅백의 유행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고소영이 공항에서, 하지원이 드라마 속에서 들어 많은 여자들을 검색창 앞으로 이끌던 지방시 판도라 백은 절묘한 이름을 가졌다. 꺼내도 꺼내도 소지품이 마르지 않는 화수분 같은 수납력을 자랑한다. 여자들이 별걸 다 갖고 다니긴 하지만, 내가 아는 어떤 여자들의 가방은 속에서 잘 찾으면 망치나 벽돌 같은 게 나온대도 놀라울 거 없게 생겼다. 아니, 치한을 만났을 때 묵직한 가죽 가방 자체를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망치나 벽돌 구실을 충분히 해낼 거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풍경을 필요로 한다’고 썼다. 싱글 여자에게 새로운 계절은 새로운 백(이라 쓰고 ‘빽’이라 읽는다)을 필요로 한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우울할 때, 면접을 앞두고 용기가 필요할 때, 심지어 오래 기다려온 봄을 맞이할 때도. 물론 필요로 하는 순간들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을 만큼 가방 가격이 호락호락하지 못한 게 문제다.

딱 하나의 봄 가방을 결코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맞아들이는 방법이 있다. 바로 클러치 백을 사는 것이다. ‘클러치라니, 비싼 가방을 1년에 한두번 있을까 말까 한 파티에서 들고 364일은 옷장 속에서 썩힐 일 있어?’라고, 나도 생각했다. 이브생로랑의 벨 드 주르 클러치(사진)를 만나기 전까지는. 지갑을 확대한 듯 심플한 디자인에 가벼운 페이턴트 가죽, 옷차림에 포인트가 돼 주는 경쾌한 색상을 가진 이 클러치는 심지어 나이키 운동화와 매치해도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외출할 때의 기분을 이보다 더 가볍게 만들어줄 수가 없다. 한국 디자이너인 ‘본호 앤 파트너’의 것은 남자들을 겨냥해 나온 제품이지만 탐나서 두번째 클러치로 노리는 중이다.

두툼한 지갑 대신 머니클립에 지폐 몇 장을 꽂고 주로 쓰는 신용카드 정도만 카드 지갑에 따로 챙긴다. 파우치를 열어 콤팩트와 립스틱만 빼서 휴대전화과 함께 넣는다. 한손에 거머쥐면 봄의 한가운데로 걸어나갈 준비가 끝난다. 가방 운반에 기진맥진해져서, 데이트 중간에 남자에게 백을 들게 하는 피차 민망한 그림을 연출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글·사진 황선우 <더블유 코리아> 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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