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3.10 11:12
수정 : 2011.03.22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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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또다른 상징 ‘패러 필드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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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카메라 히스토리아
“당신과 키스하고 싶어요. 그런데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요. 코를 어떻게 해야 하죠?”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에서 마리아(잉그리드 버그먼)가 로버트 조던(게리 쿠퍼)에게 속삭이는 대사다. 사랑하는 연인을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짧은 금발 곱슬머리 마리아의 모습을 기억하는 백발의 남성팬들이 아직도 많을 것이다. 1937년 스페인 내전이 배경인 이 영화의 원작은 내전 당시 공화파 정부를 지원한 국제여단에 참여했던 헤밍웨이가 썼다.
가뭄에 콩 나듯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누구를 위하려 종을 울리나>를 보면 항상 떠오르는 사진가가 있다. 스페인 내전을 취재했고, 잉그리드 버그먼의 뜨거운 사랑을 받은 남자이며, 헤밍웨이와 게리 쿠퍼와는 죽이 척척 맞았던 사진가, 로버트 카파.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에 개봉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인물들은 모두 로버트 카파와 엮여 있다. 선 굵은 얼굴에 짙은 눈썹, 웃음기 가득한 얼굴을 가졌던 매력남 로버트 카파의 주위에는 항상 친구와 연인이 있었지만, 그는 항상 누군가에게 얽매이기를 싫어한 보헤미안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5년 파리를 찾은 잉그리드 버그먼과 우연히 마주친 로버트 카파와 동료 사진가 어윈 쇼는 그녀를 파티에 초대한다. 당시 유부녀였던 잉그리드 버그먼은 남편과 별거중이었다. 사랑에 빠진 잉그리드 버그먼은 전쟁이 끝나고 실업자 신세였던 로버트 카파를 미국으로 불렀다. 호황을 누리던 할리우드에서 로버트 카파는 영화 스틸 사진을 촬영했다. 잉그리드 버그먼은 로버트 카파와 결혼해 가정을 꾸미길 원했지만 로버트 카파는 평화로운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전쟁터를 찾아 떠났다. 첫사랑이었던 사진가 게르다 타로가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다 탱크에 깔려 죽은 이후 로버트 카파는 정착하지 못하고 항상 떠돌이 생활을 했다. 술과 도박을 즐겼으며, 일정한 거주지 없이 취재가 없을 때는 호텔을 전전했다.
스페인 내전,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이스라엘 독립전쟁, 인도차이나 전쟁 등 로버트 카파는 끊임없이 전쟁터를 찾아 헤맸다. 동료 사진가가 전쟁터에서 찍은 로버트 카파의 모습은 노련한 군인처럼 보였다. 필름을 넣었는지 주머니마다 부풀어 있는 야전상의, 비스듬히 쓴 철모, 앞섶에 단단하게 동여맨 낙하산 배낭, 비행기를 타기 전 긴장을 풀기 위해 입에 문 담배 등. 손에 쥔 카메라 롤라이플렉스만 빼면 사진가가 아닌 영락없이 전투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 군인이다. 1940년 헤밍웨이와 함께 유럽전선을 취재할 당시 사진 속 로버트 카파의 모습은 종군사진가 이미지의 전형이었다. 비와 추위를 막고 편하게 카메라와 필름을 넣고 다닐 수 있는 로버트 카파의 ‘헐렁한 야전상의’는 종군사진가의 필수품이었다.
유럽전선에서 로버트 카파가 애용했던 야전상의의 정확한 명칭은 미 공수부대원이 입는 ‘패러 필드수트 M43’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로버트 카파를 찍은 사진 대부분에 이 야전상의가 등장한다. ‘패러 필드수트’는 보병이 입는 야전상의보다 훨씬 세련된 디자인이다. 불필요한 장식은 모두 빼고 활동성과 수납 기능을 극대화했다. 주머니 덮개는 큼지막해서 물건이 빠져나오지 못하게 막아준다. 주머니 가운데 절개선을 넣어 더 많은 소지품이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낙하산 외에 최소한의 장비만 가지고 적진에 신속하게 침투해 작전을 펼쳐야 하는 공수부대원들에게도 꼭 필요했겠지만 ‘패러 필드수트’는 필름과 카메라를 몸에 지니고 움직여야 하는 종군사진가에게도 딱 어울리는 아이템이었다.
글 조경국 카메라칼럼니스트·사진 출처 the-bunk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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