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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3.10 14:38 수정 : 2011.03.10 14:38

꽃거름 우물과 오로컬처.

[매거진 esc] 김선우의 ‘오로빌에서 선우로 놀다’

② 오로컬처와 함께 ‘신성한 거름’ 만들기

오로빌은 마트리만디르라는 명상의 성소를 중심으로 구성된 지름 5㎞의 원형 도시다. 그린벨트가 외곽의 원주를 이루고 그 안에 주거구역, 문화구역, 산업구역, 국제구역이 마트리만디르를 향해 물결치듯이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인 도시형태가 은하수를 닮았다고 하여 오로빌 도시계획을 갤럭시 플랜이라고도 부른다.

나는 오로빌의 130여개 커뮤니티 중 ‘그레이스’라는 주거구역 커뮤니티에서 지냈다. 이 커뮤니티는 헬무트라는 독일인 건축가가 모든 집을 설계하고 짓는다. 오로빌의 커뮤니티는 각각의 커뮤니티마다 건축을 담당하는 건축가들이 있어서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가진 집들이 지어진다.

오로빌의 집들은 개인에게 소유권이 없다. 개인이 건축비를 들여 집을 지어 살아도 주거권, 즉 사용권이 있을 뿐이다. 집을 지어놓고도 장기간 살지 않으면 그 집의 사용권은 집이 필요한 다른 주민에게 돌아간다. 집이 집으로서의 참된 역할보다 개인이 소유한 재산 항목으로 먼저 분류되는 한국 사회의 관점으로 본다면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소유하지 않는 집’을 구현하는 오로빌의 방식이 참 좋았다. 자기 돈으로 집을 짓고도 나는 이 집의 스튜어드일 뿐 오너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마을, ‘나의 머묾’을 허락해준 인연들과 집에 감사한 매일이었다.

오로빌 사람들 하루 6시간 공동체 위한 노동


집 뒤뜰.
나 같은 게스트의 입장에서 볼 때 오로빌이 가진 여러 장점 중 또 하나가 바로 ‘일’이다. 오로빌은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오로빌에서 ‘일’은 ‘자기가 하고 싶을 때 발생’한다. 내가 이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일’이 매우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셈이다. 가령 뉴커머로 오로빌 내에서 일을 시작할 때 영어에 익숙지 않아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으면 초보적인 영어만 사용해도 되는 일부터 점차 고급영어를 사용하는 일로 옮겨가면서 차근차근 여러 일들을 경험할 수 있다. 한번도 빵 굽는 일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이 오로빌 빵집에서 빵 굽는 걸 하고 싶으면 그러면 된다. 그러다 마침내 수준급으로 빵을 굽는 숙련공이 되어도 월급의 액수는 마찬가지다. 모두 최저생활비 정도를 받는다. 오로빌에서 일을 하는 기준은 돈이 아니라는 얘기다. 일차적으로 일하는 개개인의 만족감이 가장 중요하다. 그다음은 개인의 즐거움이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 쓸모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느냐이다. 이런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검박한 경제생활을 지향하며, 내가 쓸모 있는 존재라는 자각을 중요하게 여기며 행복을 꿈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로빌에서는 모든 게 일이 된다. 황무지 개간. 숲 만들기. 유기농업. 작물 보존 작업. 하우징 서비스. 정원 만들기. 정보기술. 수자원 보존. 중소 규모의 사업들. 심지어 마사지, 명상, 요가, 힐링, 예술 등 각 방면에 다양하게 걸친 문화 활동 자체도 월급을 받는 일이다.

오로빌에 머무는 동안 인상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중 한 사람이 오로컬처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오로빌리언인 그녀는 오로빌의 중심인 마트리만디르 가든 한쪽에 자신의 일터를 가지고 있다. 그녀는 거기서 떨어진 꽃을 주워 사람들이 ‘신성한 거름’(Divine Compost)이라 부르는 이른바 ‘꽃거름’을 만든다.


놀러간 집 마당에 세워져 있던 평화의 상징 기린.
오로컬처를 처음 만난 날. 그녀는 큰 꽃나무 아래서 일을 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니 은발의 한 여인이 꽃나무 아래 골프 자세를 연습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리가 불편해 무릎을 구부릴 수 없는 그녀는 스스로 고안한 도구를 쓰고 있었는데 골프채를 잡듯이 긴 솔(빗자루라 하긴 좀 그러니 꽃솔이라 하자)을 한손에 잡고 한손에는 귀여운 꽃받이(쓰레받기라 하기에도 좀 그러니 꽃받이라 쓰겠다)를 잡고 작고 노란 꽃들을 살살 쓸어 담고 있었다. 떨어진 꽃들을 밟지 않게 조심하면서. 오늘 아침 막 떨어져 아직 시들지 않은 꽃들이 오로컬처의 꽃받이 속에 조용조용 담긴다. 그녀는 마트리만디르 여기저기서 꽃을 주워 만다라를 만들고, 그녀가 꽃으로 만드는 만다라는 서서히 썩어 거름이 된다. 그녀의 작업장은 언뜻 보면 우물처럼 보인다. 한 사람이 두 팔을 활짝 벌린 품의 두배쯤 되는 둘레의 우물 속은 꽃잎으로 가득 차 있다. 입구가 봉해진 다른 우물에선 다 채워진 꽃들이 이미 거름이 되고 있는 중이다. 한 우물이 꽃으로 다 채워지면 봉하고 다른 우물로 돌아가며 작업장으로 쓴다.

은발의 70대 여인, 떨어진 꽃으로 만다라 만들어

웃기지 않는가. 이런 일이 월급을 받는 ‘일’로서 존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떨어진 꽃을 주워 이른바 ‘꽃거름’을 만드는 일은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일이다. 시간과 노동력 대비 나오는 결과를 생각하면 더 한심하다. 오전 내내 꽃을 주워 모아야 우물의 한 켜를 겨우 장식할 수 있다. 그렇게 나온 디바인 콤포스트라는 것이 어디에 실용성 있게 쓰이는 것도 아니다.(오로빌에서 정말 실용적인 유기농 거름을 만드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부피감 없는 여리여리한 꽃들이 변해 흙이 되는 것이니 아주 소량의 흙이 생산될 뿐이다. 식물이나 과일을 기르는 거름으로 사용하기엔 양이 턱없이 모자란다. 고작해야 어딘가에 상징적인 의미로 살짝 쓰이는 정도겠다. 그러니 효율성과 실용성을 따지면 이것은 상식적으로 ‘일’이 될 수 없는 ‘일’이지만, 오로빌은 오로컬처의 일을 귀하게 여긴다. 일이라는 게 무언가 생산하고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녀가 생산, 유지하는 가치는 아름다움과 헌신의 자세와 고요와 기다림이라고나 해야 할까.


태양열을 이용하는 공동식당 솔라키친의 스테인드글라스.
막 떨어진 꽃잎을 밟지 않게 조심하며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당신 일을 내가 도와드려도 될까요? 고개를 든 그녀의 얼굴에 온화하게 번지는 미소. 물론이지요.

그렇게 나는 한 시간 반가량 노란 꽃을 주웠다. ‘꽃을 줍는다’라고 말하면 퍽 낭만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어떤 일이든 단순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힘이 든다. 꽃 줍는 마흔살도 다리근육이 엄청 아팠으니 일흔살은 족히 되었을 저분의 허리는 얼마나 아플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노동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렇게 유정하게 그렇게 조심하며 꽃 하나하나를 주워본 것이 얼마 만인 걸까. 꽃을 주워본 일 자체가 아득하기만 했다. 꽃잎이나 나뭇잎을 다치지 않게 조심하면서 책갈피에 끼워 넣은 추억을 가진 사람들은 절대로 나쁜 사람이 될 수 없을 거라고, 문득 생각하기도 했다.

체감온도 28도쯤 되는 남국의 겨울 오전, 이마에 땀을 송골송골 매단 채 꽃줍기에 열심인 내 곁으로 그녀가 공기처럼 다가오더니 이제 꽃을 둥근 우물 속에 놓으라고 한다. 아, 그 일을 내가 해도 되겠어요? 오로컬처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당신의 마음을 담아서 여기에 꽃을 놓아줘요. 조용하게 말을 마친 그녀는 이제 다른 빛깔 꽃을 모으러 간다. 그사이 나는 정말이지 숨결 하나씩이 다 보일 듯 조심히 모아진 꽃들을 우물 속에 차란차란 둥글게 깔았다. 그녀가 돌아와 우물을 들여다보더니 흡족해하며 모아온 분홍 하이비커스를 내게 건넨다. 이 계절엔 꽃이 많지 않아서 우리 만다라도 소박하지요, 하며 그녀가 웃는다. 소박하고 찬란한 오전이 그렇게 가고 있었다.


초기 오로빌 모습.
하루분의 만다라가 완성되면 꽃들이 향기로운 거름으로 변성되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린다. 그녀와 함께 꽃우물을 중심으로 팔을 둥글게 벌려 우물을 껴안듯 선다. 마음을 집중해 좋은 에너지를 떠올려 보라고 나를 향해 속삭인 뒤 그녀가 가만 눈을 감았다. 나도 그녀를 따라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우리는 어떻게 보였을까. 불과 세시간 전 처음 만난 은발의 여인과 검은 머리 여인이 함께 꽃들이 켜켜이 찬 하나의 우물을 껴안고 선 채 가만 눈을 감고 무엇엔가 집중하는 모습! “어머니대지에 입 맞춘 꽃들이 다음 변성을 시작합니다. 모든 단계의 여행이 잘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꽃우물가에서 두 팔을 벌리고 우리는 그렇게 꽃 쌓인 우물에 의식을 집중한다. 의식의 집중-이것은 기도다. 꽃의 존재에 집중하고, 꽃과 다를 바 없는 자신의 존재에 집중하고, 자신과 다를 바 없는 거름의 존재에 집중한다.

꽃우물가에 바람 불고 나비 날아오고

그 순간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꽃우물 속에서부터 올라오던 따뜻한 온기. 꽃 만다라 아래층의 꽃들이 엉기고 발효하며 내는 엄청난 열기가 내 몸에 닿는 느낌. 발밑으로부터 정수리까지가 꽃의 터널 같은 것으로 이어져 따뜻하고 환하게 빛나던. 바람이 불고… 나는 조금 흔들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비가 날아오고… 나는 또 조금 흔들리고… 별이 태어나려는 듯… 그렇게 한동안 우물가에 서 있었다. 아니, 서 있었다고도 앉아 있었다고도 할 수 없다. 인간의 몸의 형상이 취할 수 있는 어떤 포즈로가 아니라, 나는 다만 거기 있었다….


김선우의 ‘오로빌에서 선우로 놀다’
내가 눈을 떴을 때, 오로컬처는 나의 행복한 묵상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조용히 저편에 서 연장을 챙기고 있었다. 환해진 내가 그녀를 보자 내게 손짓한다. 그녀에게 다가가자 자그마한 바구니를 보여주었다. 안에는 흙 한줌이 들어 있다. 냄새를 맡아보라고 한다. 바구니를 들어 코 가까이 대었다. 아, 말할 수 없이 향기로운 흙의 냄새. 눈물이 핑 돌 뻔했다. 꽃이군요! 흙에 코를 묻은 채 내가 외치자 얼굴 가득 미소를 지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 역시 한줌 꽃 거름을 두 손에 받쳐 든 채로.

내가 지상에서 처음 맡아본 꽃 거름 냄새. 꽃으로 만들어진 흙의 냄새.

세속의 관점에서라면 이토록 쓸모없는 일을 자신의 일로 삼은 사람과, 그 일을 소중한 것으로 여기는 공동체 사람들과, 그 일에 맘껏 감동한 한 게스트가 함께 보낸 오전 시간이 무슨 병처럼 찌르르 찌르르하게… 그렇게 완성되었다.

오로빌=글·사진 김선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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