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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풍경을 담은 레이지박스의 창은 손님들에게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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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번잡함 벗고 행복 찾아 제주도 이주 젊은이 늘어
조선 후기의 천재, 추사 김정희의 재능은 9년간의 제주도 유배 기간에 만개했다. 세도정치의 희생양이 되어 졸지에 관직을 박탈당하고 죄인이 되었으니 속이 끓었을 것. 칠십 평생 먹을 가느라 바닥이 뚫린 벼루가 10개가 넘고 끝이 닳아 없어진 붓이 1000여자루나 됐다는 일화. 그중 몇 개의 벼루와 꽤 많은 붓이 분노와 억울함을 달래고자 제주도에서 뚫리고 닳았을 것이다. 그래서 추사체가 탄생하고 ‘세한도’가 완성될 수 있었으리라. 과거 유배지 중에서도 가장 중한 죄인들이 가던 곳이 제주도였으니 오죽했을까. 세월이 흘러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섬사람들은 젊어 육지에서 건너온 이들을 놓고 수군거렸다. 무슨 곡절이 있었기에 섬으로 건너왔느냐고. 그럴 만도 했다. 뭍에서 살던 이들이 제주도로 갈 때는 아는 이 없는 곳에서 숨어 살아야 하는 사연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도시에서의 생활을 마감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여생을 보내겠다는 은퇴자들이 가장 우아하게 이주하는 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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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안덕면 레이지박스의 주인 하민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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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지박스에서는 샌드위치와 커피를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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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휴가철 행락지였던 제주도, 그나마 외국여행 붐과 함께 가족 여행이나 단체 관광의 장소로만 여겨지던 제주도를 ‘자발적 유배지’로 택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에서 반듯하게 학교를 마치고, 번듯하게 직장을 다니다가 홀연히 제주로 향하는 것이다. 동기는 대부분 비슷하다. 도시에서의 경쟁이 싫고, 그곳에서의 빠름이 싫었다. 천천히 제주도를 다니다가 제주의 매력을 발견했다. 천천히 계획을 세워 이민을 준비한 사람들이 있고, 여행 왔다가 아예 눌러앉은 사람들도 있다. “1~2년 사이에 제주도로 살러 오는 사람들은 30대가 많아요. 요즘은 20대도 많이 보이죠.” 10년 전 제주도로 가 제주시 인근 산천단에서 바람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이종진(46·사진)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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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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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주도 이주자, 30대 대세 20대도 보여
서귀포시 안덕면에 있는 레이지박스는 그런 30대 부부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다. 그 전까지 가난한 여행자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는 전부 바다에 있었다. 그 뒤 올레길을 끼고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레이지박스는 여행의 동선과 한참 떨어진, 제주 시골 마을의 농가를 개조해서 운영되고 있다. 이곳을 꾸려가고 있는 이재하(37·올레사무국)·하민주(33) 부부가 직장 생활을 접고 제주도로 내려온 건 작년이다. 중학교 때 각각 가족 여행, 보이스카우트 캠프로 처음 밟은 제주도에 매료됐다. 언젠가 제주도에서 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을 가졌고, 연애하면서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결혼 뒤 5~10년 지나 내려오기로 했던 그들은 그러나, 1년 반 만에 섬으로 가는 짐을 쌌다. 서대문에서 수원까지 출퇴근하는 생활이 “전혀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제주도에 매료되었듯, 제주도의 진면목에 매료되는 이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바닷가 대신 시골 마을을 택한 건 예산이 넉넉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지금 레이지박스 자리를 보고 받은 느낌 때문이다. “운명이다 싶었어요.” 생활, 숙박, 카페를 다른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세 채의 건물이 있는 작은 농가, 부부가 원했던 바로 그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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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지박스의 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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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지박스의 게스트하우스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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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두 달, 레이지박스가 개장했다. 그 흔한 바비큐 장소도 없고, 부대시설이라고는 카페가 전부였지만 개장과 동시에 손님들이 찾아들었다. 블로그에 공사 과정을 연재하면서 이 색다른 게스트하우스에 관심을 보인 이들이었다. 행락이 아닌 휴식을 위해 제주를 찾는 이들. 며칠간 조용히 머물며 책을 읽거나 주변을 산책하는, 이름처럼 게으르고 느린 여행을 원하는 이들에게 레이지박스는 안성맞춤이었다. 새롭고 다른 삶을 꿈꾸는 이들이 찾아와 조언을 구하는 일도 늘어났다. 그들 모두 공통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앞이 안 보이는 무한 경쟁에 지쳐 있었다. 지금의 30대는 대부분 19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냈고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때를 전후해서 사회에 나온 세대다. 야간자율학습은 있어도 심야학원강습은 없었던 때 학창시절을 보냈다. 환란을 겪으면서 나이가 어리면 대학 공동체가 무너지는 걸, 많으면 종신고용 신화가 붕괴되는 걸 봐야 했다. 이종진씨는 “경쟁을 피해 제주도로 향하는 30대가 많아지는 게 우리 사회 성장의 룰이 깨지는 단계가 아니겠느냐”고 진단했다.
경쟁 싫어, 행복하지 않아…필요한 건 휴식
예전보다 좋아진 접근성, 보이지 않던 제주의 발견도 사람들을 섬으로 끌어들이는 이유다. 저가 항공의 활성화로 싸게는 5만원 안팎으로 제주도를 다녀올 수 있다. 항공사 사이에 경쟁이 생기면서 1만9900원의 할인가로 항공권을 파는 이벤트도 생겼다. 김포공항에서 제주국제공항까지 1시간. 케이티엑스(KTX)를 타고 부산 가는 시간보다 더 빨리, 더 저렴하게 제주를 방문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올레길이 이슈가 되면서 해안도로뿐 아니라 내륙 곳곳에도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삶터가 있다는 걸 제주를 찾은 이들은 알게 됐다. 한국의 다른 명승지들이 그러하듯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막개발이 될 위험도 제주에는 상대적으로 적다. 섬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은 “여기는 차를 타고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며 “비행기와 배가 실어나를 수 있는 인원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생활과 여행이 차이가 없다”는 하민주씨의 말도 그런 특성이 있기 때문에 성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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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인근 산천단에 있는 바람카페에서는 와인과 커피를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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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카페 주인 이종진씨가 만든 야외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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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생활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제주도는 “말이 통하는 외국”이다. 육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과 자연의 낯섦, 같은 언어를 쓰는 친숙함이 조화를 이루는 섬이다. 그래서 각박한 도시 생활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싶은 이들을 자발적 유배로 이끌고 있다. 뭍에서 섬으로 건너와 사는 일을 제주도 토박이들은 ‘입도’라고 한다. 뭍에서 제주로 와서 살고 있는 이들은 같은 일을 ‘이민’이라고 한다. 소셜네트워크의 힘으로 이민자들의 공동체가 만들어졌다. 그들끼리 모이면 종종 이런 말을 주고받는다. “내 친구 누가 이민오겠대.”
제주=글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hanmail.net·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궂은 날씨·직장·외로움의 벽 넘어야
“이주 결심은 1~2년 살아본 뒤”… 한해 250만원으로도 단독주택 거뜬
누가 그랬던가. 꿈은 크게 꾸되 현실은 직시하라고. 동네만 바꿔 이사가도 향수에 시달리는 게 인지상정. 하물며 육지를 떠나 섬에서 산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괴나리봇짐 하나 짊어지고 갈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니 더욱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제주도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이들은 우선 “충동적으로 결정하지 말라”는 기본적인 충고를 건넨다. 바람카페의 이종진씨는 우선 “1~2년 살아볼 것”을 권한다. 제주시나 서귀포시의 부동산 시세는 서울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같은 가격이면 더 넓은 집을 구할 수 있다. 시내를 벗어나면 부담을 훨씬 덜 수 있다. 연세 250만원을 내고 작지만 풀옵션이 갖춰진 단독주택 한 채를 얻을 수 있는 곳도 많다. 그렇게 생활하면서 제주도의 1년 365일을, 주거 환경을 느껴보라는 것이다.
꿈을 꺾는 건 우선 날씨다. 1년 중 화창한 날은 반도 되지 않는다. 바람과 돌, 여자가 많은 삼다의 공간답게 일년 내내 바람이 분다. 겨울의 세찬 바람은 쓰고 있던 모자는 우습게 날려 보낼 정도다. 푸른색에서 검은색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하늘빛은 호불호가 갈린다. 무엇보다 아는 사람들이 없다는 외로움, 불현듯 찾아오는 향수는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도시를 다시 그리워하게 하는 주적이다.
일자리가 없다는 것도 약점이다. 예술가, 자영업자에겐 천국이 될 수 있지만 직장을 잡아야 하는 이들에게 제주는 녹록지만은 않은 곳이다. “300만원 벌던 사람이 100만원만 벌어도 살 수 있는 곳”이긴 하지만 통신, 전기, 냉난방 등에는 서울과 같은 비용이 든다. 시내를 제외하고는 도시가스가 들어오는 곳이 많지 않다. 고유가 시대에 매서운 겨울은 더욱 매서워진다. 그래서 내려왔던 사람들 중에 결국 또 한 번 짐을 싸는 사람도 적잖다.
그러나 이런 환경에 적응할 수 있다면,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 ‘우영밭’이라 불리는 텃밭을 가꿔 웬만한 채소는 자급자족을 할 수 있고, 물물교환을 통해 서로 필요한 식자재를 나눌 수 있다. 귀농 붐 이후 문제가 되는 기득권 다툼도 아직 제주 이민자들 사이에는 없다. 기본적인 제주 현지 문화를 교육하는 한라산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어 낯선 땅에서의 빠른 적응을 도모할 수도 있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한 지금은 더욱 쉽다.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면 제주도에서 밥 굶을 걱정은 없습니다.” 이종진씨는 겨울에는 감귤농장, 여름에는 항구에서 일하면서 생활하는 ‘이민자’들도 꽤 있다고 전한다. 빌딩을 바라보며 살기 싫어 수평선을 바라보러 내려온 이들이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제주의 한적한 도로는 길을 잘못 들어도 후진해서 방향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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