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3.24 13:57
수정 : 2011.03.24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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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으로 ‘뽀샵질’ 하던 그때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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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카메라 히스토리아
물감으로 ‘뽀샵질’ 하던 그때 그 시절
“이제 가게 그만둬야지. 30년 넘게 했는데 요즘 카메라는 잘 알지도 못하고…. 다들 인터넷으로만 거래를 하니 문 닫을 때가 됐어. 그거 마음에 들면 그냥 가져가.” 대학생 시절부터 드나들었던 카메라 가게에 오랜만에 들렀다. 카메라 진열장 위에 부옇게 먼지가 앉은 스포팅 물감(Spotting dye set·사진수정 물감)을 구경하고 있었다. 사장님이 챙겨 가라며 건네주셨다. 뚜껑도 따지 않은 새 물감을 손에 넣는 행운이라니. 사장님 말씀으로는, 두 세트를 도매상에 주문했는데 한 세트만 팔렸다고 한다. 나머지 한 세트는 먼지 쌓인 채 10년 넘게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예전에는 진열장에 각양각색의 카메라들과 사진용품들이 쌓여 있었지만 지금은 구닥다리 필름카메라와 잡동사니들만 있다.
필자가 가끔 웨딩촬영 아르바이트를 하던 19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사진관에서 수정용 물감으로 흠집을 없애는 작업을 종종 보곤 했다. 그 시절 사진 공부를 위한 필독서였던 <포토핸드북>(까치, 존 헤지코), <암실>(눈빛, 마이클 랭퍼드), <사진학 강의>(타임스페이스, 바버라 런던·존 업턴)에는 ‘작은 흠을 제거하기 위한 스포팅’에 대한 내용이 빠지지 않고 들어 있었다. <포토핸드북>에 나온 사진수정용 도구는 수정용 물감뿐 아니라 팔레트, 연필, 탈색제, 면봉, 칼, 확대경 등 모두 12가지. ‘작은 흠을 제거’하는 일에는 많은 준비물과 숙련된 기술, 예술가의 감각과 소양이 필요했다. 그런 이유로 당시만 해도 사진 보정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어도비(Adobe)사의 포토샵은 누구나 쉽게 사진을 매만질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포토샵은 사진의 작은 결점을 제거하는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마법 같은 소프트웨어였다. 1990년 토머스 놀과 존 놀 형제가 개발해 어도비사를 통해 출시했던 포토샵은 21년 동안 발전을 거듭해 CS5 버전까지 나왔다. 사진가들에게 없어선 안 될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포토샵은 디지털카메라와 인터넷 사용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와 함께 영향력이 커졌다. ‘뽀샵질’은 일상어가 되었다. 사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간단한 사용법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다. 유명 여자 연예인의 ‘뽀샵’ 전후 사진에 대중의 관심이 쏠리고, 사실 그대로 보여줘야 할 보도사진조차 ‘뽀샵질’을 해 종종 문제가 되기도 했다. 포토샵 때문에 누구나 쉽게 사진을 입맛대로 바꿀 수 있게 되었지만 사진의 신뢰성은 그만큼 무너져 버렸다.
카메라 가게 사장님에게 받아온 수정용 스포팅 물감 포장지에는 여인의 옆모습을 형상화한 로고 옆에 ‘베로니카 카스’(Veronica Cass)라고 적혀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세인트피터즈버그 타임스>에 그의 부고 기사가 실렸다. 그는 실존 인물이었다. 2008년 10월, 8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베로니카 카스는 <사진보정의 시작과 끝> (Retouching from Start to Finish)이라는 책을 펴냈고 플로리다주에서 사진예술 아카데미를 열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코닥은 그에게 ‘사진계의 위대한 여인’이라며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그의 책을 아마존서점에서 검색했더니 사인본이 있었다. 이제는 생산되지 않는 그의 스포팅 물감과 사인본을 함께 간직할까 욕심을 내다가 독자 서평을 읽고 그 생각을 버렸다. “전통적인 사진보정법에 관한 훌륭한 책이다. 만약 당신이 포토샵 기술에 대한 내용을 찾는다면 이 책은 알맞지 않다.”
글·사진 조경국 카메라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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