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3.31 14:14
수정 : 2011.03.3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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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꼬사무이 북쪽 꼬따오에 딸린 섬 꼬낭유안의 해변. 세 개의 섬이 모래밭으로 이어져 멋진 삼면 해수욕장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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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그린 아일랜드’ 만들어가는 꼬사무이에서 온 편지
타이 꼬사무이(사무이섬)에 다녀왔습니다. 인도차이나반도에서 밑으로 길게 뻗은 말레이반도 중부 동쪽 연안(타이만)에 자리잡은 휴양섬입니다. 인기 신혼여행지로 떠오른 곳 중 하나죠. 1980년대 초부터 관광지로 개발돼 주로 유럽 관광객들의 휴양지로 인기를 끈 곳입니다. 5~6년 전부터 국내 여행객들의 발길도 부쩍 늘고 있습니다.
안다만해 반대쪽이어서 2004년 인도네시아 지진해일 때도 피해가 없었는데, 이번 일본 대지진으로 발생한 해일은 약하게나마 이곳까지 밀려왔다고 하더군요.
일본 대지진과 방사능 유출로, 환경재앙과 에너지 문제가 지구촌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열대 휴양섬 여행길의 화두도, 맞닥뜨린 상황도 환경문제였습니다. 이맘때 사무이섬은 쾌청한 날씨가 이어지는 건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여행 최적기(2~7월)라는데도 닷새 중 하루 빼곤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쏟아지더군요. 물론 건기에도 잠깐 쏟아진 뒤 곧 개는 스콜(열대성 소나기)이 자주 발생하지만, 흐린 날이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합니다. 사무이섬 관광가이드 나티야(38)는 “몇년 전까지도 우기와 건기 구분이 뚜렷했는데 점점 구분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지구 온난화와 관련이 있을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었죠. 그날 저녁, 보기 드물게 3월 영하 추위가 계속되고 있다는 한국 소식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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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낭유안 전망대로 오르는 숲길을 비키니 차림으로 거니는 여행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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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이 주수입원인 타이는 요즘 꼬사무이를 비롯한 각 휴양섬들을 ‘지속가능한 여행지’로 만들기 위해 ‘그린 아일랜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어 관심을 끌었습니다. 요체는 개발에 따른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오염원이 되는 이동수단과 일회용품 사용을 억제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면서 청정 자연환경을 지킨다는 겁니다. 2008년 구성된 ‘그린 아일랜드 추진위원회’가 선정한 섬마을 900곳을, 주민들 자체의 노력으로 10년 안에 세계적인 친환경 휴양지로 가꿀 계획이라고 합니다. 관광 인구가 늘면 늘수록 개발이란 이름으로 파괴되는 자연을 보전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던 거죠. 사무이섬만 해도, 해변마다 빽빽하게 늘어선 크고 작은 리조트들에 더해 이름난 대형 휴양리조트들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습니다. 지난해 6월 ‘반얀트리 리조트’가 라마이 지역에 개장했고, 11월엔 ‘W호텔’이 매남 해변에 들어섰습니다. 대형 리조트들이 들어서면 관광객 유치엔 유리하겠지만 개발에 따른 환경보전 문제, 지속가능한 휴양지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지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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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낭유안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선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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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기·우기 구분 흐려져 환경고민 깊어질밖에
‘그린 아일랜드 프로젝트’의 첫번째 시범 섬이라는 꼬사무이 서쪽 앙통 해양국립공원 부근 팔루아이섬을 찾았습니다. 추진 상황은 소박했지만 주민들 의욕은 대단했습니다. 180가구 500여명의 주민들은 자체적으로 ‘에너지 개발 모임’을 꾸리고, 오염 없는 섬 만들기에 애쓰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이 머리를 맞댄 결과 태양열 에너지가 대안이었다고 합니다. 정부 지원을 받아, 전기 생산을 위한 태양열 집열판을 가정마다 설치하고, 이동수단으론 전기오토바이와 자전거 등을 들여오기로 했습니다. 오토바이 배터리 충전을 위한 태양열 충전소도 마련했고요. 호텔·리조트들의 지원을 받아 폐기물의 관리·재활용을 연구하는 ‘저탄소 학교’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폐기물을 수집하고 재활용품을 판매하는 ‘고물 은행’도 개관했답니다. 실제로 팔루아이섬 민가나 식당 한편엔 주민들이 재활용을 위해 모아놓은 병과 폐품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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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아일랜드’로 지정된 팔루아이섬의 헬스센터 앞 태양열 집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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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원 마련은 아직 초보단계여서, 소규모 태양열 집열판을 가정집 지붕들에 설치해 시험가동 중이고, 도입한 전기오토바이도 몇 대 안 됐습니다. 생산된 전기는 극히 일부 전기시설에 사용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관광객들이 찾아오자 집열판 시설들로 안내하고, 전기오토바이도 태워주며 청정 섬 가꾸기에 대한 애착을 보여줬습니다. 장기적으로 섬 안에서 오염 발생 에너지를 쓰는 이동수단과 생활용품 등은 완전히 퇴출된다고 합니다.
타이 정부관광청 꼬사무이 사무소 직원 조 아우타폰 비차이딧은 “지금은 ‘그린 아일랜드’ 시범 단계여서 미흡한 것이 많다”며 “곧 최소한의 개발과 지속적인 환경보전을 바탕으로 다양한 친환경 관광 프로그램을 만들어 선보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017년께면 곳곳의 친환경 휴양섬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랍니다.
타이에서 세번째로 큰 섬 꼬사무이는 80여개의 크고 작은 섬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서쪽 40여개 섬들이 해양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데서 알 수 있듯이, 수려한 자연환경을 자랑합니다. 섬들은 쪽빛 바다와 눈부신 모래밭, 올망졸망 딸린 바위섬들을 갖추고 그림 같은 풍경을 보여줍니다. 아름다운 섬들만큼이나 ‘지속가능한 친환경 휴양지’로 가꾸려는 주민들 노력도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물론 눈에 보이는 성과를 거두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깨끗한 자연환경을 가꾸는 일은 단시간에 이뤄지는 게 아니라 작고 소박한 노력이 지속될 때 얻어진다는 걸 깨달은 여정이었습니다.
오토바이 태양열충전소, 저탄소학교 등 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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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사무이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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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 지난 26일 집에서 취재한 자료를 정리하던 중, 스피커에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알리는 말씀’이 흘러나왔습니다. “오늘은 지구촌 불끄기 행사가 있는 날입니다….” 저녁 8시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거실이나 방의 불을 끄고 에너지 절약에 동참하자는 거였습니다. 방들의 불을 끄고 어둠 속에 앉아 생각했죠. ‘기왕 일제히 끄려면 낮에 몇시간씩은 해야지 한 시간이 뭐람.’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한 시간이라도 수많은 지구촌 가정이 에너지 소비 줄이기에 함께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어 보였습니다. ‘지구촌 불끄기’(매년 3월 마지막 토요일)는 2007년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시작된 온실가스 줄이기 환경캠페인입니다.
다시 돌아온 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신혼부부들이 국내외로 여행을 떠나는 철입니다. 둘만의 달콤한 휴식 속에서 새 삶을 설계하는 시간이지만, 하루쯤 환경을 생각하는 일정을 넣는 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일회용품 대신 재활용품을 쓰는 리조트를 고르고, 머물 때 물이나 전기 사용을 의식적으로 줄이며, 화석연료를 쓰지 않는 이동수단을 이용해 현지 여행을 하는 겁니다. 사랑하기에도 바쁜 여행길, 너무 귀찮은 주문 드렸나요?
꼬사무이(타이)=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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