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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4.14 11:09 수정 : 2011.04.14 13:50

아이언 메이든(액세스엔터테인먼트 제공)

[매거진 esc]
‘전설’의 이글스부터 ‘핫’한 엠지엠티까지…음반 재미 못 봐 공연에 ‘올인’

한때는 1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한 특별한 일이었다. 그나마도 한물간 사람들만 오곤 했다. 해외 팝스타들의 내한 공연 얘기다. 하지만 이제는 엄연히 사정이 다르다. 한달에도 몇번씩, 내한 공연 소식이 전해지고 팬들은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한국을 찾는 뮤지션들의 층도 다양해졌다. 에릭 클랩턴, 이글스, 산타나 같은 전설적 이름들은 물론이고 마룬5, 코린 베일리 래, 엠지엠티(MGMT)처럼 전성기를 누리는 뮤지션들도 앞다퉈 한국 팬을 만나러 온다. 심지어 애저 레이, 라디오 디파트먼트 같은 마니아 지향성의 뮤지션들마저 이제는 내한 공연을 한다.

슬래시(액세스엔터테인먼트 제공)

한국이 팝의 불모지에서 이웃나라 일본이 크게 부럽지 않은 스타들의 공연처가 된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음악산업의 주도권 이동 때문이다. 현재 음악산업은 크게 음반과 음원, 공연 산업으로 이뤄진다. 1990년대까지 이를 주도했던 건 음반산업이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음반시장에 불황이 찾아왔고, 그렇다고 음원산업이 이를 대체한 것도 아니었다. 디지털 음원으로 인해 소비자가 음악 자체에 접근하기는 쉬워졌지만 그것이 곧 매출로 이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 상황에서 주도권을 잡은 건 공연이었다. 엠피3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음악은 공짜로 듣고,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게 음악 소비의 새로운 형태가 된 것이다. 게다가 공연이란 음원과 달리 복제된 대체재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음악 소비가 듣는 영역에서 보는 영역으로 이전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뮤지션으로서는 공연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전에는 가지 않았던 나라에서도 공연을 연다.

MGMT(소니뮤직 제공)

MGMT(소니뮤직 제공)

내한 공연을 유치할 수 있는 국내 기획사들의 역량도 상당히 축적됐다. 뮤지션이 새 앨범을 내면 매니지먼트 회사가 월드 투어 계획을 세운다. 실무를 담당하는 투어 에이전트는 자신들과 선이 닿아 있는 세계 각국의 공연 프로모터들에게 연락을 취해 대략의 일정을 알려주고 관심을 유도한다. 빡빡한 일정과 만만찮은 경비가 소요되는 일이다 보니, 현지 프로모터에게 신용이 있어야 한다. 2000년대 들어 꾸준히 내한 공연과 페스티벌을 유치하고 성공시킨 국내 기획사들이 생겨나면서 한국 시장에 대한 신용도가 높아졌다.


최근 내한 공연은 3~4월에 집중된다. 투어 스케줄 짤 때의 관행 때문이다. 6월은 본격적으로 유럽 록 페스티벌이 시작되는 달이다. 매주 어디에선가 대형 페스티벌이 열리기 시작해서 여름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뮤지션들은 이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한편, 영국이나 프랑스 등에서 단독 공연도 연다. 반면 아직 쌀쌀한 3~4월은 유럽 시장의 비수기인지라 이때를 노려 오스트레일리아나 일본을 가게 된다. 역시 큰 시장들이다. 특히 오스트레일리아는 여름과 겨울이 반대인 지역이니 1~2월에 집중적으로 공연을 열게 된다.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온 김에, 어차피 일본도 가야 하니 아시아 투어를 잡는 것이다. 이번 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투어를 취소한 뮤지션들의 내한 공연이 대거 연기된 건, 아직 한국이 일본에 종속적인 시장임을 보여주는 작은 예다.



무리해 띄운 몸값, 록스타 내한 막기도

인접한 지역에 있는 기획사들끼리 네트워크를 꾸려 투어 에이전트에게 먼저 제안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누구 공연을 하려고 하는데 관심 있어?’라고 제안하면 이에 응하는 국가들끼리 개런티나 공연횟수, 항공편 공유 등의 내용을 협의해서 지역 투어를 짜는 식이다. 일본과 달리 한 국가에서 여러번 공연을 하기 힘든 동아시아 국가들이 연합해서 아시아 투어를 만드는 일이 잦은 편이다.

에이전트도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에이전트로서는 높은 개런티를 받을수록 좋다. 따라서 지역 기획사들 간의 경쟁을 유발하기도 한다. ㄱ이라는 프로모터가 자국에서 ㄴ밴드의 공연을 유치하고 싶다고 계속 메일을 보내면 확답을 주기 전에 그 지역의 다른 프로모터에게 연락해 값을 올리기도 한다. 기획사들도 음반 판매량, 국내 인지도 등을 고려해 개런티를 책정할 수밖에 없으므로 과다 경쟁으로 흘러가는 경우는 잦지 않지만, 가끔은 그런 일이 벌어져서 턱없이 높은 개런티를 주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한번 높아진 몸값은 다시 떨어지지 않기에, 애써 불러왔던 톱스타를 다시는 한국에서 보기 힘들다는 문제도 있다.

공연이 확정되면 본격적인 일이 시작된다. 계약서와 함께 딸려 오는 두툼한 ‘라이더’에 맞춰 공연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라이더란 공연의 세부사항에 대한 아티스트 쪽의 요구사항을 적은 문서다. 우선 가장 중시되는 것은 ‘케이터링 라이더’. 대기실에 어떤 음식과 음료, 기타 아티스트의 컨디션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일목요연하게 적힌 목록이다. 물과 간단한 다과류 외에 별도의 요구가 없을 때도 있지만, 생수나 와인의 브랜드까지 세세히 열거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제일 흔한 주의사항은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배려. 유달리 채식주의자가 많은 서양인들인지라 대기실에 비치할 음식 중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를 포함시켜달라는 요청이 많다. 무대 세팅, 음향, 조명 등에 대한 매뉴얼은 ‘테크니컬 라이더’라고 한다. 정상급 아티스트 중에 의외로 이 테크니컬 라이더가 간단할 때가 있다. 아이언 메이든이나 이글스처럼 자신들이 직접 모든 장비를 갖고 다니는 이들이다. 이럴 때는 무대만 요구에 맞춰 제작하면 되니 상대적으로 수월해진다.

에릭 클랩턴(나인엔터테인먼트 제공)

입국 과정에도 협의는 계속된다. 긴 비행시간 동안 무대의상을 차려입고 날아오는 뮤지션은 거의 없을 터, 그러니 편한 차림으로 입국하곤 한다. ‘일반인’의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할 뮤지션 역시 거의 없기 마련이니 입국 일정을 비밀에 부쳐야 한다. 그래서 기획사에서는 투어팀을 맞이하러 공항에 나갈 때 투어 매니저의 이름이나 아예 가명을 적은 판을 들고 기다리곤 한다. 이런 비밀유지는 호텔에서도 이어진다. 투숙객 명부에 가명을 기재해 혹시 모를 일을 방지한다. 토토의 경우 내한 당시 멤버들의 실명 대신 로렌스 올리비에, 딘 마틴 같은 유명 배우들의 이름을 써서 보안을 유지했다. 이런 신비주의를 극도로 요구한 이는 밥 딜런. 그의 매니저는 국내 기획사에 “밥 딜런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 자체도 알려져서는 안 된다”며 호텔 안에서도 비밀 통로로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웬만한 호텔에 비밀 통로가 있을 리 없으니, 그냥 일반 통로를 비밀 통로라고 속여서 넘어가긴 했다지만.

유럽 공연 시장 비수기, 아시아·태평양에 몰려

세계 어디에서나 계약된 일정과 내용대로 진행되는 공연이지만 계약서에 명기하기 힘든 내용이 있다. 연주할 곡목을 정하는 ‘세트리스트’다. 라디오헤드처럼 한 국가 안에서도 공연 때마다 세트리스트를 바꾸는 팀이 있지만 대부분의 아티스트는 새 앨범과 히트곡을 고루 섞어서 미리 정해놓고 큰 변동 없이 세트리스트대로 소화한다. 문제는 그 아티스트가 첫 내한인데, 예정된 세트리스트에 대표적인 히트곡이 없거나 국내에서 특히 인기 있는 노래가 포함되지 않은 경우다. 먼저 한국에서 무슨 노래가 인기 있는지를 물어봐서 공연 때 팬서비스를 하는 쿨한 팀들이 있지만 ‘Before The Dawn’을 해달라는 부탁에 “우리는 그 노래를 어떻게 연주하는지도 모른다”며 거절한 주다스 프리스트도 있다.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인기 있었던 옛날 노래였으니 당연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지난해 플레이밍 립스의 공연을 주최한 마스터플랜의 이창의 이사는 휴대전화 벨소리를 그들의 히트곡 ‘Race For The Prize’로 바꾼 뒤 그들과 일본에서 미팅을 했다. 밴드의 리더 웨인 코인과 만났을 때 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이에 웨인 코인은 웃으며 “어쩌다가 이 노래를 벨소리로 했냐” 물었고, 결국 내한 공연 때 앙코르곡으로 이 노래를 연주했다. 혹시 모를 무례를 범하지 않으면서 센스 있게 팬들이 원하는 노래를 세트리스트에 포함시키는 전략이었다.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hanmail.net

비욘세 뒤흔든 야광봉의 충격

우리나라 공연장 앞에서만 파는 물건이 있다. 바로 야광봉이다. 국내 가수 콘서트에서 객석을 밝히는 이 야광봉은 그러나, 내한 공연장에서는 쉽사리 찾아볼 수 없다. 팝 팬들의 경우 디브이디(DVD)나 유튜브 등을 통해 외국 공연장 분위기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야광봉이란 물건을 들고 있자면 박수 치는 데도 지장이 있고 방방 뛰는 데도 거치적거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막상 관객들이 야광봉을 흔들어주면 팝스타들은 ‘문화 충격’을 받기도 한다. 비욘세의 공연, 내한 공연에 익숙지 않은 관객들이 많았던 탓인지 객석은 야광봉의 바다가 됐다. 생전 처음 보는 이 풍경에 비욘세는 “너무 아름답다”며 연신 감탄했고, 팝 콘서트가 아닌 록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관객들의 호응에 두배로 감동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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