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1.05.05 10:41 수정 : 2011.05.05 13:47

홍정욱 한나라당 의원. 탁기형 기자

[매거진 esc] 심정희의 스타일 액츄얼리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여기저기 떠벌리고 싶은 추억과 비밀로 하고 싶은 기억을 하나씩 꼽는다면 전자는 수능시험 날 늦잠을 자 시험을 못 볼 뻔한 일이고(저 대범한 여자예요, 후훗), 후자는 정치부 기자와의 소개팅에서 “박근혜, 이명박 중 누구 뽑으실 거예요, 이번 대선?” 했다가 경험한 딱지의 수모다. 2007년 겨울이었나? 나는 두 사람이 같은 당 소속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변명하자면 “바빠 죽겠어”를 입에 달고 사는 한편으로, ‘내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좋은 사람, 착한 편’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정치(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치 뉴스)는 내게 불가해한 고전과도 같다. 사람 구실 하고 살려면 봐야 한단 건 알겠는데, 봐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고, 겨우겨우 무슨 말인지 이해할라치면 ‘근데 이게 말이 돼?’ 하는 생각이 들며, 챕터마다 다른 이야기인 척하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지루한 책.

그런데 얼마 전 한국-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비준안 표결이 있던 날, 뉴스를 보다 한 줄기 희망을 찾았다. 정치 뉴스가 패션 잡지만큼이나 스타일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그 계기를 제공한 건 홍정욱 의원(사진). ‘기권’을 행사하던 날, 홍 의원은 검은색에 가까운 다크 네이비 슈트 차림이었다. 프렌치 커프스 셔츠에는 짙푸른 커프스단추를 착용하고 있었고, 셔츠는 ‘개츠비’의 옷장에서 막 꺼낸 것처럼 부드럽고 기품 있는 흰색이었다. 전반적으로 깔끔하면서도 정돈된 차림이라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었지만, 특히 내 관심을 끈 건 하늘색 바탕에 자잘한 흰색 점무늬가 들어간 넥타이였다. 우아한 흰색 셔츠 위에 자리잡은 하늘색 넥타이는 어찌나 부드럽고 화사한지 꿈같은 로맨스에 빠진 영화 속 남자주인공이 사랑을 고백하러 가는 장면에 매주면 적격일 것 같았다.

그의 ‘기권’ 장면을 보면서 나는 자못 궁금해졌다. 그날 아침 옷장 앞에 선 홍 의원이 어떤 생각으로 그 넥타이를 골랐을지. 별생각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선택한 결과일 수도 있을 것이고, ‘오늘 내가 할 일’을 염두에 두고 세심하게 골랐을 수도 있을 것이다. “소신을 보여주는 날이니 오히려 분위기를 부드럽게 가져가자”라든가 “화사한 넥타이로 ‘강행 처리’에 반대하는 나의 의사를 표현하자”라든가. 그리고 만일 후자라면 홍 의원은 보기 드문 멋쟁이. 멋내기란 그저 좋은 물건, 폼 나는 물건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일이 아니라 세심하게 물건을 골라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자신의 생각과 철학, 말하고자 하는 바를 상대에게 전달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끝>

심정희 <에스콰이어> 패션에디터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