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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5.05 11:29 수정 : 2011.05.05 11:29

사진의 또다른 이름, 추억

[매거진 esc] 카메라 히스토리아

3월11일 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도 한 달이 훌쩍 지났다. 대지진과 해일로 사망하거나 실종된 희생자가 3만여명이고, 집을 잃어버린 이재민도 20만명이다. 진앙지에서 가까웠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유출 사고 여파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유럽 전체에 방사능을 뿌렸던 최악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같은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 7등급이다. 한국이나 중국 등 주변국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영향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본에서 건너오는 소식은 우울하다.

최근 하마다 가쓰타로의 안타까운 죽음이 방송을 탔다. 올해 79살이었던 그는 지진해일이 집 안으로 밀어닥치자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다른 가족들은 모두 옥상으로 대피한 상태. 그가 아래층에서 가져오려고 했던 물건은 손자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앨범이었다. 사고 닷새 뒤 발견된 그는 가슴속에 앨범을 소중하게 껴안고 있었다. 앨범 속 사진에는 온 가족이 행복하게 웃고 있고, 손자를 안고 즐거워하는 하마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해일의 잔해를 치우기 전 구조대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추억 찾기’. 무너진 건물 속에서 사진앨범과 희생자의 유품을 수거한다. 해일로 마을 전체가 사라져버린 미야기현 미나미산리쿠에는 희생자들의 유품을 모아놓은 ‘추억의 물건’ 보관실이 있다. 유품 중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희생자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가족을 잃어버린 생존자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행복했던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진흙이 잔뜩 묻은 앨범 속 사진 한 장. 이제 곁에 없는 사랑하는 이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이 슬픔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우 인화를 부탁받아 촬영했거나 특별한 일이 아니면 사진이 아닌 ‘이미지 파일’로 컴퓨터에 저장할 뿐이다. 현상소에서 사진을 뽑아 앨범에 넣어본 지도 오래됐다. 간혹 사진을 뽑더라도 종이상자에 넣어 보관한다. 디지털카메라의 대중화는 사진을 보관하는 방법까지 바꿔버렸다. 요즘 신혼부부들에게 인기있는 선물 가운데 하나는 이미지 파일을 넣어 감상할 수 있는 디지털 액자다. 가족사진조차도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서 ‘공유’한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앨범 시장은 연 400억원 규모였다. 1970년대만 해도 카메라는 부잣집만 가지고 있는 비싼 물건이었지만 1980년대 이후 카메라는 사치품이 아니었다.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자 앨범 시장도 급격히 커졌다. 앨범은 졸업, 결혼, 생일 선물로 가치가 있었다. 신라산업, 다모아문구, 모나미, 바른손팬시 등이 앨범을 생산했다.

당시 가장 인기있었던 제품은 영문구의 ‘칸나앨범’. 1980년부터 시작된 칸나앨범은 1985년 86아시아경기대회와 88올림픽의 공식 상품화권자로 지정된 뒤 급속히 성장했다. 1988년 ‘500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고, 외국 시장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고급앨범으로 자리를 잡았다. ‘사진앨범=칸나앨범’이라는 등식이 자리잡은 데는 티브이 광고 효과도 컸다. 사진앨범 티브이 광고에 톱스타가 출연한다는 것은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1980년대 칸나앨범 티브이 광고(사진)에는 전영록·나한일 등 가장 인기있던 스타들이 출연했다. 이 글을 쓰느라 집에 꽂혀 있는 먼지 묻은 사진앨범을 오랜만에 꺼내본다. 흑백 결혼사진 속 아버지는 헌헌장부였고 어머니는 꽃처럼 고왔다.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어머니는 손자 보느라 몇 년 사이 흰머리와 주름살이 많이 느셨다. 수전 손태그가 명저 <타인의 고통>에서 남긴 말을 되새겨본다. “카메라가 발명된 1839년 이래로 사진은 죽음을 길동무로 삼아왔다. 카메라로 만들어진 이미지는 말 그대로 렌즈 앞에 놓인 그 무엇인가의 흔적이었기 때문에, 사진은 사라져간 과거와 떠나간 사람을 추억하게 해주는 데 있어서 그 어떤 그림보다도 탁월했다.” <끝>

글 조경국 카메라칼럼니스트·사진 출처 칸나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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