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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5.05 11:50 수정 : 2011.05.05 11:54

먼데 섬, 만재도의 바다는 늘 뭍에 대한 그리움으로 출렁인다. 만재도 마을길 풍경.

[매거진 esc] 강제윤의 섬에서 만나다

바닷가 민박집. 밤새 바람이 불고 파도 소리 끊이지 않았다. 파도가 밀려와 짝지밭을 때릴 때마다 쫘르르르 쫘르르르 갯돌 구르는 소리. 냉장고 돌아가는 작은 소음에도 뒤척이며 잠 못 드는 예민한 청각이 파도 소리에는 무감하다. 기계음과 자연음의 차이. 자연의 소리는 아무리 커도 소란스럽지 않다. 밤새 철썩이는 파도 소리에도 편안한 잠에 빠진 것은 그 때문이다.

신안군 흑산면 만재도는 목포에서 뱃길로 가장 먼 섬이다. 행정구역 개편으로 흑산면에 소속되기 전까지 만재도는 진도군 조도면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 노인들은 아직도 진도로 내왕하던 시절에 대한 추억담이 많다. 먼데 섬이라 해서, 혹은 재물을 가득 실은 섬이라 해서, 또 혹은 해가 지고 나면 고기가 많이 잡힌다 해서 만재도라는 이름을 얻었다지만 내력을 확인해 줄 사람은 없다. 만재도에도 농토는 귀하다. 주민들은 모두 바다에 의지해 산다. 물고기를 잡고, 낚시꾼들을 치고, 톳과 미역을 뜯고, 할머니 잠수들은 전복과 성게를 잡는다. 만재도의 폐교된 초등학교는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콘도가 됐다. 숙박업소가 된 학교에 만재도 아이들은 없다. 폐교된 뒤 아이들은 모두 뭍으로 유학을 떠났다. 오늘 콘도는 뭍의 교회에서 수련회를 온 아이들의 숙소다. 섬 아이들의 배움터가 이제는 도시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사내는 수숫대처럼 깡말랐다. 마을 앞 정자에 나온 노인들이 밥은 안 먹고 술만 마신다고 걱정하던 그 사내다. 사내는 물고기 잡는 그물을 고정시킬 돌들을 로프로 감고 있다. 돌 닻. 사내의 고향은 강원도 고성. 집은 삼천포. 사내는 주낙배를 타러 만재도까지 흘러들어 왔다. 가거도의 선주도 오라 하지만 의리 때문에 만재도로 왔다고 사내는 자랑이다. 젊은 날 사내는 통발 배를 타고 대마도까지도 갔었다. “육지 가면 술만 퍼묵고. 여도 술이 있지만. 그래서 잘 안 나가요. 육지는 골이 아퍼요. 그냥 수양 삼아 섬으로만 다녀요.” 사내는 배를 타지 않는 어한기에도 섬을 떠나지 않는다. “사연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겄어요.” 사내는 좀처럼 지난 일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내가 육지 나가면 조선 팔도를 다 돌아다닙니다.” 사내는 고향 고성 화진포를 떠나 부산에서 국민학교를 마쳤다. “여는 밤만 되면 적막강산입니다.” 사내는 마시다 남긴 됫병 소주를 담장 밑에 숨기고 허위허위 마을길로 사라진다.

섬에서 나서 섬 밖으로 한번 나가보지 못한 사람도 뭍의 사람들이 겪는 일을 다 겪고 살다 간다. 세상 온갖 풍파에 떠밀려 다니던 저 사내도 끝내 섬이 되지 않았는가. 섬에 있어도 섬을 떠나도 사람은 삶에서 터럭만큼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삶이란 것이 오늘은 외딴섬으로 숨어들어 한 세월 살다 가는 사내처럼 외롭다. <끝>

시인·<자발적 가난의 행복> 저자 bogilna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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