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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09 11:08 수정 : 2011.06.09 11:08

포천 국립수목원(광릉숲) 숲해설가 이경한씨가 올벚나무 이경한씨가 올벚나무 껍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경기도 포천 광릉수목원 숲해설가들의 초록빛 하루

“그저 어슬렁거리기만 해도, 메마르고 강퍅해진 심신이 촉촉하게 초록빛으로 물든다”는 숲. 여기 ‘일삼아’ 숲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들이 기다린다. 숲에서 지내며 ‘숲을 보면서도 나무도 볼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을 갖게 된, 피톤치드 향기를 품은 이들이다.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국립수목원, 이른바 ‘광릉 숲’을 찾아 숲해설가들의 하루를 들여다봤다.

“뻐꾸기·검은등뻐꾸기 소리가 부쩍 늘었네요.” “까막딱따구리 둥지는 안전합니다. 저번에 나타났던 구렁이는 안 보여요.” 지난 4일 토요일 오전 9시, 국립수목원 방문객안내센터 안 숲해설가 대기실. 10여명의 해설가들이 ‘아침 스터디’를 하는 중이다. 하루 일과 전, 먼저 숲을 살펴본 2명이 그날 숲의 상황을 보고한다. “매일 아침 숲의 변화나 특이상황을 챙겨 봅니다. 그래야 풍성한 숲해설을 할 수 있지요.”(박용식 팀장·63)

국립수목원 방문객안내센터의 숲해설가 대기실. 15명이 근무한다
국립수목원에 근무하는 숲해설가는 15명(남8·여7). 남자는 퇴직한 50~60대, 여자는 40~50대 주부가 많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까지 일한다. 방문객이 신청하면, 순번대로 나가 “쉽고도 재미있게”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숲의 순환과정, 나무와 꽃, 새와 곤충 등의 생태를 설명해 주는 것이 일이다. 이날 단체 예약객은 13~105명 규모의 17팀. 숲해설가들은 단체 방문객 말고도 현장에서 수시로 방문객의 해설 신청을 받는다. 1인당 보통 하루에 2~3건, 많을 땐 4건의 해설을 진행한다. 주5일 근무, 하루 활동비는 4만6000원이다. 한번 해설 시간은 코스에 따라 1시간~2시간30분.

“내 차례네.” 컴퓨터로, 개화를 앞둔 야생화를 살펴보던 김재옥(50·전 전업주부)씨가 모자와 가방, 마이크가 달린 기가폰을 챙겨 들고 서둘러 해설센터 앞으로 나갔다. 대전에서 온 방문객 9명이 기다린다. 김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멀리서 오시느라 힘드셨죠? 흔히 광릉숲이라 부르는 국립수목원은 1468년 조선 7대 왕 세조의 능(광릉) 부속림으로 정해지면서 540여년 동안 보전·관리돼 온 숲입니다.” ‘광릉숲 현황도’ 앞에서 또랑한 목소리로 숲해설을 시작한 김씨는 ‘육림호수’ 쪽으로 움직였다.

“딱따구리는 1초에 19번 나무 쫀단다”

“준비물요? 이 가방에 다 들어 있어요.” 연호진(61·전직 중학교 생물교사)씨가 보물단지 다루듯 조심스럽게 어깨에 멨던 작은 가방을 열었다. 각종 나무와 꽃 사진을 담은 두꺼운 비닐책, 호두·가래 열매, 복자기단풍 씨앗 봉지, 편백나무 피톤치드 원액병, 메타세쿼이아 열매로 만든 팔찌 10여개, 솔방울이 든 작은 물통, 도토리 봉지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연씨는 충주에서 올라온 고교생들을 이끌고 산림박물관 쪽으로 떠나고, 올해 처음 해설을 시작한 김용환(59·전 대기업 임원)씨는 몽골에서 우리나라 산림보전·관리 방식을 취재하러 온 몽골 국영방송(UBS) 부사장 일행 7명을 맞아 해설을 시작했다.

“지금 숲해설 될까요?” 부산 용호동과 경기 파주에서 온, 어린이 셋을 동반한 두 가족이 해설을 신청했다. 해설은 숲해설 경력 2년의 이경한(57·전 중소기업 근무)씨가 맡았다. “어린이 여러분, 공룡시대부터 있던 나무가 뭔지 알아요? 은행·소철·메타세쿼이아 나무예요.” 어느새 따라다니며 해설 듣는 가족이 다섯 가족으로 늘었다. 어린이만 7~8명에 이르자, 이씨는 신이 났다. “딱따그르르르…, 이게 무슨 소리죠? 자, 딱따구리가 1초에 몇번이나 나무를 쫄 수 있는지 아는 사람.”

숲탐방에 나선 어린이들이 나무의자 위를 기어가는 애벌레를 관찰하고 있다.
“…” “무려 열아홉번이에요.” “우아, 짱 빠르다.”


농약을 치지 않아 애벌레들이 나뭇잎을 다 갉아먹어버린 층층나무를 보고, 아름드리 졸참나무의 둘레를 재본 뒤 길이 462m 숲생태관찰로로 들어섰다. 햇살 받은 나뭇잎은 가볍게 살랑대고, 뻐꾸기 소리는 깊고 맑게 울린다. 그러나 아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몸을 비틀고, 딴청을 부리기 시작했다. “와 벌레다.” 한 아이의 외침에 어린이들이 길바닥에 둘러앉았다. 김씨가 해설을 멈추고 아이들 곁에 함께 앉았다. “요게 ‘숲속의 측량사’라는 자벌레예요. 길이를 재듯이 기어가지요? 저기 기어가는 뿔 달린 건 사슴풍뎅이입니다.” 구렁이가 타고 오르지 못하게 밑동에 비닐을 감아 둔 나무 줄기 중간의 까막딱따구리 구멍을 설명한 뒤 김씨는 해설을 마쳤다.

아침·저녁 스터디 힘겨워도 행복한 일

오후 1시부터 숨 돌릴 틈 없이 다시 해설 신청이 몰렸다. 박용식 팀장(전 수락산 숲해설가)은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 팀 안내에 나섰고, 김희순(전 송파구 근무)씨는 고등학생들을 맡아 이날 두번째 해설을 시작했다. 어느새 순번이 돌아 두번째 해설로 들어섰지만, 해설가들 표정은 이른 아침처럼 해맑다. 순번을 기다리며 대기하는 해설가들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도감을 왼다고 되는 건 아니고, 자연의 생태·순환 논리로 이해해야죠.” “동식물의 진화과정, 생태, 얽힌 이야기 등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또 어떻게 삶의 지혜를 얻을 것인가 하는 걸 얘기해야 해요.” “듣는 분들의 나이·직업·취향과 경청 분위기에 따라 이야기 방식도 달라져야 하고요.” “듣는 사람 표정을 보면 1시간에 끝낼지 2시간에 끝낼지 답이 나와요.”

숲을 한 바퀴 더 돌고, 오후 4시 넘어 해설센터 쪽으로 내려오니, 2년차 해설가 송원혁(61·전 토목회사 근무)씨가 사진기를 들고 올라오고 있다. “‘저녁 스터디’를 위해 숲을 다시 살펴보러 가는 길입니다.” 송씨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숲의 변화상을 사진 찍어 회의 자료를 만드는 ‘스터디 담당’이다. 탐방객 입장 마감은 오후 5시. ‘저녁 스터디’를 마치고 하루 업무를 마무리하며 박용식 팀장이 말했다. “숲해설가가 다 좋은 줄 알지만, 실제론 쉬운 일이 아녜요. 공부하고 경쟁해야 하고, 지식·체력에 유머도 갖춰야 하고 아주 바쁘죠.” 옆에서 연호진씨가 반박했다. “그래도 바쁘게 사는 게 낫지. 운동도 되고, 난 정말 좋아! 행복해!”

국립수목원은 하루 방문 인원을 평일 5000명, 토요일 3000명으로 제한한다(일요일 쉼). 이것도 철저한 예약제(1주일 전 예약)로 운영한다. 입장료 어른 1000원, 어린이 500원, 65살 이상 무료. 주차료 하루 3000원.

국립수목원(포천)=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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