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6.09 11:18
수정 : 2011.06.09 11:22
[밥스토리-밥알! 톡톡!]
몇 년 전이었습니다. 여름이 물러가고 막 가을이 시작될 무렵,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고, 마음은 즐겁고 입맛은 좋아지는 계절. 그날 저녁 우리 식구는 낮 동안 활동량이 많고 힘이 들었는지 모두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밥을 찾았습니다. 보온밥솥에는 아이들 먹을 만큼만 밥이 남아 있었습니다. 급히 밥을 해야 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친정어머니께서 길어주시는 약수터 물을 좋아했죠. 그 물로 밥도 짓고 그냥 마시기도 했습니다.
그날도 쌀을 씻고 약수터 물을 부어 밥을 지었습니다. 아, 얼른 밥이 돼야 할 텐데…. 다행히 압력밥솥이라 15분도 채 안 돼서 ‘칙칙~치 칙칙~치’ 하고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고소하고 달콤한 밥 냄새! 뱃속이 요동쳤습니다. 아이들은 갓 지은 밥을 먹고 싶어서 남아 있던 밥을 안 먹고 기다리고 있었지요. 뜸이 들기를 기다려 밥솥 뚜껑을 열었습니다. 음~ 이토록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밥이 또 있을까요. 한눈에 봐도 유난히 반짝거리고, 달콤한 향이 퍼졌습니다. 아 맛있겠다. “얼른 밥 먹자!”
한 그릇 한 그릇 밥공기에 밥을 담아 먹기 시작했습니다. 아이 아빠가 제일 먼저 밥을 푸자마자 한술 가득 떠서 입안에 넣었지요. 우적우적. 아이들도 아빠 따라 숟가락질하기 바빴어요. 냠냠쩝쩝. 그런데 이게 웬일! 갑자기 얼굴들이 굳어지기 시작합니다. 아빠는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고, 아이들도 밥 씹다 말고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밥이 너무 달콤하다고 합니다. 복숭아 향도 난다고 난리였습니다. 엥? 이상하다. 약수터 물이 달콤했던가? 복숭아 향이 왜 나지? 남편은 저에게 어떤 밥물을 부었냐고 물었죠. 아뿔싸! 냉장고에는 페트병이 여러 개 있었습니다. 소중한 식구들에게 빨리 밥 지어 먹이고 싶은 급한 마음에 그만 약수터 물 대신 음료수를 부어버렸던 것입니다. 사랑을 듬뿍 담아 밥을 짓는다는 게 큰 실수를 해버렸습니다. 하필이면 그 음료수가 무색이고 향이 강하게 나는 것이 아니어서(아주 유명한 음료수인데 표현할 방법이 없네요. ^^;)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졌지요. 그 밥은 반찬과 함께 먹기에는 힘든 맛이었습니다. 다 먹지 못하고 아쉽게도 그 밥과 헤어져야 했습니다. 아이들은 깔깔대고 동동 구르며 웃느라 뒤로 나자빠졌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엄마의 ‘어록’이 아니라 ‘행장’을 기록한다면 수많은 일화들이 있다고 합니다. 자신들을 낳고 기르느라 엄마가 이것저것 잊어버리는 일도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이해해줍니다. 2% 부족한 밥? 2% 사랑 더한 밥! 가끔 이런 재미난 일로 가족들이 웃으며 지낼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최경아/경기 안양시 동안구 관양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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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밥에 얽힌 추억담, 밥과 관련한 통쾌, 상쾌, 유쾌한 이야기.
분량 | 200자 원고지 8장 안팎
응모방법 | <한겨레> 누리집(hani.co.kr) 위쪽 메뉴바의 ‘esc’를 클릭한 뒤 ‘밥알! 톡톡!’에 사연과 사진을 올려주시거나 한겨레 요리웹진 끼니(kkini.hani.co.kr)의 ‘커뮤니티’에 사연을 올려주세요.
상품 | PN풍년 압력밥솥 ‘스타켄’(STARKEN) 시리즈 1개
문의 |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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