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6.23 10:04
수정 : 2011.06.23 10:04
남녀 권력관계의 변화 vs 단순 희화화일 뿐
그루밍(Grooming)족. 외모 가꾸기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성들을 가리킨다. 마부(groom)가 깔끔하게 말을 빗질하고 목욕시켜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런 말이 만들어질 정도로 남성들의 치장은 유별난 일이었다. 그러나 이젠 남성들의 꾸미기가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10~20대 남성들에겐 진작 당연한 일이 되었다. 30대 이상 중년 남성들도 이런 흐름에 합류하고 있다. 51살의 최홍 아이엔지(ING)자산운용 대표이사 사장은 ‘쿨가이 콘테스트’ 본선에 진출해 “아직 식지 않은 열정과 도전정신을 보여주려고 나섰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이렇듯 요즘 남자들, 여자 못잖게 스스로를 가꾸는 데 주저함이 없다.
얼굴에 비비크림 바르기 정도는 기본이다. 창백해 보이는 피부에 검은 눈매를 연출하는 스모키 화장법이 유행할 때, 서울 명동이나 홍대 앞 거리에선 눈매가 거뭇한 남성들을 목격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몸에 달라붙는 옷을 즐기는 남성들도 흔하다. 성형수술도 꺼리지 않는다.
이런 변화는 어떤 맥락에 놓인 것일까? 남성들의 사회적 위상의 변화와 관련돼 있다는 해석이 많다. 전상진 서강대 교수(사회학과)는 “남성들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관찰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은 한국 사회에서 남녀의 권력관계가 점차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미셸 푸코의 ‘팬옵티콘 이론’(원형감옥 이론: 감시하는 사람과 감시당하는 사람의 관계는 권력의 위계와 관련된다는 이론)을 차용한 분석이다. 김정운 명지대 교수(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는 “여성들이 남성의 몸을 평가하고 소비의 대상으로 삼는 주체로 떠오르기 시작했다”며 “이런 현상은 또한 상업주의의 결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남성의 몸을 개그의 소재로 삼아 웃고 떠드는 일도 새로운 현상이다. 한국방송 <개그콘서트>의 ‘발레리NO’, ‘꽃미남 수사대’ 등이 여기에 속한다. 전 교수는 “이전 남성의 몸은 강인한 마초 이미지로 고대의 조각이나 중세의 회화에서 보여지듯 숭배나 신격화의 대상이 되었으나 지금은 그 지위에서 내려오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반론도 있다. 나임윤경 연세대 교수(문화학 협동과정)는 “남성 몸의 희화화가 귄위 상실과 연결되지 않는데, 자꾸 착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성의 몸을 꾸며 웃긴다고 해도 결국 남성을 여성화시킨 지점에서 코믹한 요소가 생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임 교수는 “남성의 몸은 볼거리의 대상으로 내려오지 않았다”며 “발레를 하는 남성이나 패션에 열광하는 남성 등은 남성성을 다소 위반하는 존재들로, 개그의 소재가 됐더라도 일반 남성의 몸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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