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7.21 10:34
수정 : 2011.07.2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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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가 김이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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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곡 제조기’ 김이나 작사가를 만나다
‘나 스무살 적에 하루를 견디고/ 불안한 잠자리에 누울 때면/ 내일 뭐하지 내일 뭐하지 걱정을 했지/ …난 왜 안되지 왜 난 안되지 되뇌었지…’ 유재석이 직접 쓴 노랫말이다. <문화방송> ‘무한도전’에서 지은 ‘말하는 대로’가 인기다. 오랜 무명생활 동안의 단상을 진솔하게 담아내 공감을 자아낸다. 그의 작사곡은 떴고(가온차트 7월 셋째 주 디지털 종합순위 10위), 유재석은 ‘공인’ 작사가(한국음악저작권협회 등록)가 됐다.
티브이 오디션·서바이벌 프로그램과 더불어 ‘노래 만들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중이다. 음반 제작자나 작곡가·편곡가에게만 쏠리던 관심이 이제는 재미와 공감을 주는 노랫말의 주인공 ‘스타 작사가’에게까지 옮아가고 있다. 이 화제의 중심에 작사가 김이나(33·사진)가 있다. 신경질 가득한 여자의 마음을 표현한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 뭇 남성들을 미소짓게 한 아이유의 ‘좋은 날’에 그가 노랫말을 불어넣었다. 최근에는 노래로 사랑 고백의 무대를 펼쳐주는 <엠넷>(Mnet)의 ‘세레나데 대작전’에서도 노랫말을 해석해주고 있다.
가 지난 8일 서울 삼성동에서 그를 만났다.
그의 오늘은 ‘간절한 바람+우연’의 변주곡이다. 대학에서는 미술사를 전공했다. 졸업 뒤엔 수입차 부속 업체 판매담당자로 일했다. 그러나, 가수 윤상을 동경하며 작곡가의 꿈을 키워왔다. 그러다 음악과 가까운 일을 해야겠단 생각에 회사를 옮겼다. 휴대전화 벨소리 관련 업무를 보던 그는 우연히 작곡가 김형석에게 오디션 볼 기회를 얻었다. “작곡가로서는 소질이 없는 것 같네요.” 꿈은 무너졌다. 얼마 뒤 그의 홈페이지 글을 본 김형석은 다른 제안을 해왔다. “글 느낌이 좋은데, 작사가에 도전해보는 건 어때요?” 그 작품이 2003년 성시경이 발표한 ‘10월에 눈이 내리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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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좋은 날’이 수록된 아이유의 미니앨범 <리얼>, 조권·가인이 부른 ‘우리 사랑하게 됐어요’, ‘천하무적 이효리’가 수록된 이효리 3집 <이츠 효리시>(It’s Hyorish). 김이나가 작사한 노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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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꿈꾸다 어느날 작사가 돼있었다
그 뒤로 1년간 노랫말은 나오지 않았다. “작사는 그냥 한때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회사 생활이나 열심히 하자고 생각하고 있었죠.” 어느 날 두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작곡가 박근철씨가 드라마 <궁>의 오에스티(OST) 노래를 들고 찾아오셨어요. 노랫말이 마땅한 게 없어, 돌고 돌아서 완전 신인인 저한테까지 기회가 온 거였죠.” 1시간 뒤 녹음 일정이 잡힌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러 신인 작사가에게 의뢰했던 것이다. “어떻게 썼는지도 모르겠어요. 데뷔 때처럼 하느님이 보우하셨는지 제 노랫말이 선택됐죠.” 그의 두번째 작품 하울앤제이의 ‘퍼햅스 러브’(Perhaps Love)는 그렇게 태어났다. 노래가 인기를 모으면서, 그를 찾는 작곡가의 발길도 잦아졌다. 그의 히트곡 대부분은 작곡가 이민수와 함께 한 작업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히트곡 콤비’라 불린다.
그의 노랫말엔 섬세한 감정 묘사가 살아있다. “작곡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만, 작사가는 곡에서 출발하죠. 곡마다 정서가 있어요. 노랫말이 없어도 이건 슬프다, 짜증 섞인 슬픔이다, 어떤 건 비통한 슬픔, 지질한 슬픔까지…. 여기에다 가수까지 감안해 노랫말을 생각해야 하죠.”
영감은 주로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와 연애상담 등을 통해 얻는 경우가 많다. 화자의 시점에서, 또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다 보면 노랫말의 얼개가 떠오른다. “아는 언니와 연애상담을 하면서 ‘별로 마음에 안 들던 그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다르게 보이더라’라고 말하면, 시점을 바꿔서 생각해봐요. ‘예전에 빛났던 난 어디 갔나, 지금은 나는 왜 이렇게 초라해졌을까’라고 이야기를 풀면서 가사를 생각하는 거예요.”
‘나만 몰랐던 이야기’는 아이유와 직접 이야기하며 만들었다. “어린 가수의 노래를 아이러니하게 무거운 가사로 썼죠. 성인들한테는 당연한 이야기가 소녀에게는 처음 알 수도 있는 충격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아이유를 만나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다. “저는 거의 (남녀가) 헤어지면 다 끝장이라는 정서로 쓰는데, 아이유가 묻더라고요. ‘정말 (헤어지면 아무것도) 없나요?’라고요.(웃음)”
이효리는 ‘천하무적’ 테마에 강한 노랫말 나와
‘천하무적 이효리’는 이효리가 먼저 제목을 정해 노랫말을 의뢰해 왔다. 오랜만에 가수로 돌아온 이효리를 생각해 첫 무대를 떠올리자 엉뚱하지만 강한 노랫말이 나왔다. ‘잊을 순 없었다고/ 나에게 소리쳐봐 하루하루 손을 꼽았지/ 근질대는 몸을 참았지/ 볼륨을 더 크게 높여봐/ 내가 돌아왔으니…얼마나 내가 눈물 흘린 건지/ 넘어졌었는지 상처 숨겼는지/ 얼마나 내가 많은 걸 버리고/ 이 자리에 섰는지 아무도 모르지…’
최근 아이돌 가수들의 의미없는 노랫말에 대해 묻자, 그는 “요즘 곡의 스타일이 바뀐 걸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은 팝적이고 리듬감도 달라졌죠. ‘아브라카다브라’ 같은 곡에 시적인 명가사 붙이는 것도 우스워지죠. 가수들의 퍼포먼스도 고려해야 하고…. 이응, 니은 발음을 넣으면 곡 분위기도 바뀌죠.”
그는 아직까지 깊이 있는 가사를 쓰기에는 스스로 부족하다고 말했다. “제이슨 므라즈, 마룬5처럼, 저런 거 왜 가사로 썼나, 하찮고 시답잖은 거 왜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너무나 좋은, 그런 노랫말을 쓰고 싶어요. 내가 평소에 겪는 이야기, 화장 안 받은 날 소개팅한 이야기처럼 웃기는 것도 써보고 싶고요. 그래서 가수 유브이(UV), 노라조의 노래 가사를 들으면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러브콜 보내고 싶어요. 제가 쓴 노랫말로도 한번 불러주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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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봐요 김이나의 ‘도전 나도 작사가!’
⊙ 멜로디·리듬을 글자로 타봐요 | 작사는 시처럼 멜로디·리듬을 살려야 해요. 곡의 특성에 맞춰 반복, 라임(운율·각운), 발음 등을 신경써야 하죠. 직접 불러서 입에 걸리는 느낌인 가사는 무조건 실패예요. 팝송에 한글 가사를 붙이는 연습이 혼자서 습작하는 것보다 몇 배 더 효과적이죠. 티아라의 ‘너 때문에 미쳐’에서 ‘철없게 철없게’라는 가사는 원래 ‘shut up and shut up and’예요. <25C9> 뜬 가사, 자세히 들여다봐요 | 작사가가 가사를 쓴다고 무조건 발표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작곡가·프로듀서에게 선택받아야 하죠. 단순하고 별 내용 없는데 왜 저 가사가 붙어 있을까 하는 의문보다는, 장점이 무엇인지 찾아보세요.
⊙ 모든 글자 속에서 영감을! | 시집은 ‘압축’의 미학을 배울 수 있는 최고의 참고서입니다. 또 센스 있는 문장력을 구사하는 잡지, 말 잘하는 친구의 기막힌 비유나 표현 등 ‘요즘 살아있는’ 표현들에 주목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 장르별 가사의 특징 파악하기 | 장르마다 나의 ‘멘토’ 작사가를 정해두고 장점을 철저히 분석해보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일반적 가사의 틀을 파괴하는 파격적인 표현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지드래곤이나 테디의 가사, 리듬감과 확실한 테마 쪽으로는 박진영씨의 가사에서 많은 테크닉을 배우려고 하는 편입니다.
⊙ 트렌디한 감각 키워요 | 요즘은 트렌디한 가사가 주목받아요. 하지만 트렌디함과 우스꽝스러움은 종이 한 장 차이예요. 내가 생각하는 트렌디한 표현이 대중한테는 우스워 보일 수 있으니, 늘 점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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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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