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7.28 11:50
수정 : 2011.07.2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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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여행축제는 여행으로 성장하고 길을 찾는 여행자들의 에너지로 뜨겁다. 이매진피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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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째 접어든 국내 공정여행의 현주소
공정여행 유해론이 있다. 어렵게 얻은 자유에 규율과 책임을 씌우려는 불온한 시도라는 항의다. 직장인들의 짧은 휴가에 ‘공정한’이라는 수식어는 가혹하다는 생각도 든다. 더구나 공정여행이 국내에 알려진 건 이제 겨우 4년째에 접어든다. 아직 충분한 정보와 다양한 선택지가 거의 없는 셈이다. 국내 공정여행은 어디쯤 와있을까.
‘공정여행’이라는 신조어가 한반도에 상륙한 건 2007년 12월 시작된 공정여행 축제에서였다. 이 축제는 자발적 참여와 정보의 공유라는 틀을 유지하며 여행인문학, 여행자 평화행동, 공정여행 가이드북 등 다양한 결과물을 빚어오고 있다. 선배 격인 영국에서도 1989년 ‘투어리즘컨선’ 등을 통해 관광산업의 그늘을 마주한 여행자의 자각과 고민이 퍼즐 조각처럼 모여들었다. 이에 대한 연구·조사를 거쳐 여행자와 여행지 사람들이 함께 웃을 수 있는 책임여행의 길찾기가 시작됐다.
국내에서 공정여행 운동은 이매진피스나 국제민주연대처럼 국제활동을 하는 엔지오(NGO) 중심으로 출발했다. 그 뒤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개인 여행자들의 정보 공유와 소통이 시작됐다. 2008년부터는 공정여행 사회적 기업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패키지 프로그램을 개발한 국제민주연대의 중국·몽골 프로그램부터 트래블러스맵의 네팔·아프리카 여행, 필리핀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아시안브릿지의 필리핀·타이·캄보디아 공정여행, 대전의 공감만세, 제주 생태관광의 제주 공정여행 프로그램까지 국외부터 국내까지, 서울에서 지역에까지 이르는 다양한 실험과 모색이 이어지고 있다. 또 하나투어의 공정여행 프로그램 공모와 캄보디아 공정여행 상품 출시, 한국관광공사의 국내 공정여행 캠페인까지 공정여행은 이제 여행자를 넘어 기업으로, 기업을 넘어 정부까지 넘나드는 여행의 열쇳말이 됐다.
그러나 2011년 여름, 여전히 휴가를 준비하는 직장인들에게 공정여행은 접근하기 쉽지 않고 선택하기엔 부담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2009년 일찍이 업계 선두로 캄보디아 공정여행 패키지를 개발한 하나투어는 여행 여정 가운데 반나절 자원봉사와 기부 등을 전격 도입해 긍정적 반응을 끌어냈다. 그러나 꼼꼼하게 일정을 살펴보니 다른 날은 일반 관광과 똑같이 코끼리 트레킹이 포함되어 있었다. 공정여행으로 포장된 일반 패키지 여행의 한계가 금세 드러난 셈이다. 또 소규모 여행사들이 공정여행이라는 이름을 어떤 검증도 없이, 심지어는 콘텐츠도 없이 자신들의 온라인 누리집에 올리는 일도 적잖아 여행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심지어 올여름에는 한 사회적 기업에서 제주 크루즈 프로그램을 개발했지만 판매가 시원치 않자 한 소셜코머스업체에서 반값에 파는 사례도 나타났다. 이것이 공정여행 4년차, 성숙의 시간 없이 지나치게 빨리 상품화와 기업화로 달려온 국내 공정여행의 현주소다.
공정여행, 지속가능한 여행, 책임여행 등 다양한 이름으로 나타나는 새로운 여행의 본질은 결국 여행자들이 개척하는 새로운 여행법이다. 공정여행이 새로운 상품을 넘어 새로운 여행문화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더 많은 새로운 여행자와 정보, 소통이 필요하다. 올해 여름 당신이 고심하며 기웃거렸던 공정한 휴가에 대한 정보들을 부디 삭제하지 말길 바란다. 블로그에, 온라인 커뮤니티에, 페이스북에, 트위터에 몽땅 올려주길 부탁해 본다. 어떤 사람은 그 포스팅을 보고 휴가 중 하루를 동물권을 소중히 여기는 에코 게스트하우스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머무를지도 모른다. 또 어떤 여행자는 동강마을 사람들이 만든 회사에서 래프팅을 즐기고 그 수익이 마을에 전해졌다는 기분 좋은 소식을 듣게 될는지도 모른다. 당신의 ‘페북질’이 공정한 여행을 만들어 간다면, 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임영신/<희망을 여행하라> 공저자·이매진피스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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