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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8.04 11:22 수정 : 2011.08.05 16:43

7월29일 경주 골굴사 대적광전 앞마당에서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선무도 기본 동작을 수련하고 있다. 가운데 앞쪽 여성이 프랑스에서 여행 온 고교 교사 마리, 오른쪽 뒤쪽은 이병학 기자.

이병학 기자의 경주 골굴사 ‘선무도 체험 템플스테이’ 참가기

골굴사는 국내 ‘템플스테이’의 시초가 된 절이다. 한국 불교와 전통 무예를 배우려는 외국인들이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면서 1992년부터 자연스럽게 ‘사찰 숙박 체험’이 시작됐다. ‘선무도’는 스님들의 심신 수련법의 하나로, 신라·고려·조선 승병들의 호국정신의 맥을 이은 전통 무예다. 경북 경주시 양북면 안동리 함월산 자락, 골굴사 ‘선무도 체험 템플스테이’의 한 자락을 체험하고 왔다. 고요한 산중에서 격렬하게 진행된 1박2일 사찰체험은 짧지만 굵고, 덥지만 개운한 일정이었다.

신라의 도시 경주시내 지나 골굴사로 불교 유적 즐비한 경주 시내와 관광객 들끓는 보문단지를 거쳐 찾아간 함월산 밑 골굴사(骨窟寺·주지 적운 스님). 6세기께 석회암 절벽에 굴을 파고 조성했다는 석굴사원이다.

오후 4시. 사무실에서 2층 석조건물에 방을 배정받고, 체험복으로 갈아입은 뒤 일정과 몸가짐·마음가짐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1박2일 함께 생활할 일행은 어린이를 동반한 네 가족과 프랑스인 여성, 자원봉사차 찾아온 한국계 미국인 여성까지 10여명. 매서운 눈매와 따뜻한 표정을 함께 지닌, 보림 법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몰래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면 1080배에 처해집니다.” 그는 경력 10년의 선무도 고수(4단·법사)다. 공양간(식당)에서 오이냉국에 콩나물·볶은김치 등 나물로 저녁공양을 한 뒤 절하는 법, 가부좌·반가부좌 등을 배웠다.

호국불교 무예 맥 이은 선무도 7시. 스님들과 함께 한 저녁예불 시간. 찬불가나 염불은 몰라도, 조금 전에 배운 차수·합장·반배·삼배 등을 종합적으로 써먹는 자리였다. 삼배를 하며 보림 법사가 전해준 말을 떠올렸다. “예불은 부처의 상에 하는 게 아닙니다. 몸과 마음의 주인인 자신에게 하는 거지요.” 선무도대학 1층 널찍한 수련장에서 이어진 선무도 수련은 느리게 진행됐지만, 힘겨운 동작의 연속이었다. 선무도는 요가·명상·선기공·선무술·선체조 등을 종합한 불가의 전통 수련법. 일제강점기 맥이 끊겼던 것을 광복 뒤 부산 범어사에서 복원하고 이를 골굴사에서 이어받아 20여년째 국내외에 보급하고 있다.

호흡법부터 시작해 체조로 몸을 푼 뒤, 선무도 선기공의 기본동작들을 배웠다. 장(손바닥)지르기·장족앞차기·권족(주먹과 발)옆차기 등 ‘장공’과 ‘권공’의 기본동작을 수십번씩 되풀이하자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프랑스에서 온 고교 역사교사 마리(26)도, 부산 용호동에서 엄마 아빠 따라온 “태권도 노랑띠” 손훈범(6) 어린이도 힘차게 구호를 외치며 땀을 흘렸다.


녹초 돼 눕자, 어느새 목탁 소리가 땀에 젖은 몸을 씻고 누우니 밤 10시, 기분 좋은 피로감이 몰려온다. 대체 10시에 이부자리에 들어 본 게 몇년 만인가? 행복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깊고도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새벽예불을 알리는 4시의 목탁 소리.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지는 그 소리는 머리맡 가까이 다가왔다가, 잠시 아득히 먼 어둠 속으로 사라지더니 다시 곁으로 다가와 가슴을 때리고 머리를 맑혔다.

새벽예불을 마치고 대적광전 앞마당에서 여명을 향해 가부좌를 틀고 좌선에 들어갔다. 어둠도 빛도 아닌 고요한 시간, 들숨날숨에 집중한 일행은 이미 숲 안에 자욱한 새소리 벌레소리와 하나가 돼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가라앉은 몸을 일으켜 천천히 숲길을 걸어올랐다. 합장한 채 탑을 돌며 명상하는 ‘행선’을 하는 동안 어둠이 걷히더니, 주변이 차츰 밝아졌다.

빈 그릇을 빈 그릇으로 되돌리는 발우공양 5시50분. 스님들의 식사법을 따라 해보는 아침 발우공양에 앞서 주방 담당 스님으로부터 발우공양의 의미와 순서를 설명들었다. 빈 그릇으로 시작해 빈 그릇으로 마치는, 친환경적 식사법이다. 스님들과 수십명의 참가자가 일제히 발우를 늘어놓고, 일제히 밥을 푸고 반찬을 덜어, 일제히 나무수저를 놀렸다. 그릇 소리와 씹는 소리 외엔 들리지 않는 묵언의 시간이다. 흰쌀밥에 무·두부국, 김치·두부조림·콩나물 반찬으로 공양을 끝내고, 김치 조각으로 발우를 씻고 헹군 물을 마신 뒤, 다시 헝겊으로 닦았다.

골굴사 극락보전에서 108배를 하고 있는 어린이들.
아침공양 뒤 주지 적운 스님과 함께 한 차담. 그가 차를 권하며 덧붙인 말이 가슴에 남았다. “모든 생명은 각자 자신의 삶의 주인입니다. 몸과 마음의 주인이요 부처입니다.”

다리 찢고 허리 꺾은 뒤 평화 기원 108배 8시30분. “몸에서는 긴짱을 싸악 풀꼬, 동짝을 하나씩 따라서 하쎄요.” 오전 선무도 수련 강사는 노르웨이에서 온 ‘무정’(29·본명은 스베인 이바 링헤임) 사범. 2003년 골굴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했다가, “선무도가 너무 좋아” 다시 찾아와 정착한, 선무도 유단자(3단)다. 그는 앉고 누워서, 두 다리를 일자로 찢고 허리를 꺾고 팔다리를 비트는, 유연성을 강조하는 동작들을 주로 가르쳤다. “자, 딸라해 보세요.” 그가 아주 쉽게 보여준 동작은, 무릎 꿇고 엎드려 있다가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그대로 주저앉아 다리를 일자로 만드는 동작이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나오는데, 어느새 그는 고개를 꺾어 발을 바닥에 딛고 돌리는 동작으로 넘어갔다. 일행이 다시 땀으로 흠뻑 젖자, 무정 사범이 말했다. “자, 이제 빽빨빼(백팔배) 하러 갑니다. 40분밖에 안 걸려요.”

백팔배는 해볼 만했다. 인간을 짓누르고 있는 108가지의 번뇌에서 벗어나기 위해 올리는 108번의 절. 방석을 깔고, 절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아 녹음한 설명을 들으며 절을 한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 생각하며 첫번째 절을 올립니다.” 인상적인 건 “병들어가는 지구를 생각하며” 올리는 일흔여섯번째와, “종교와 종교 간의 평화를 위해” 올리는 아흔여섯번째 절의 설명이었다. (‘빽빨빼’의 효력은 다음날 아침, 온몸이 결리고 쑤시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선무도 고수들의 시연 감상으로 체험 마무리 11시40분. 점심공양은 호박나물을 채썰어 넣은 따뜻한 물국수. 매콤하고 시원한 열무김치 국물을 부어 먹었다. 점심공양으로 공식 일정을 마치고, 대적광전 앞마당에서 벌어진 선무도 고수들의 시연을 감상했다. 일주문을 나설 때 몸과 마음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내 몸과 마음의 주인이 ‘나’인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고, 어둠 속에서 가슴을 때리던 목탁 소리도 얻었다.

골굴사(경주)=글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알아두면 좋아요
그릇 깨끗이 비워야죠

● 발우공양 스님들이 식사하는 일을 가리킨다. 발우는 그릇을 뜻한다. 밥·국·반찬·청숫물 그릇 등 크기가 다른 네 개로 이뤄진다. 음식은 정해진 격식에 따라 다 먹은 뒤, 물과 김치조각 하나로 그릇을 깨끗이 씻어 밥그릇 안에 국그릇·청숫물그릇·반찬그릇 차례로 포개 넣는다. 식사 땐 말을 하지 않는다. ● 울력 힘을 모아 함께 하는 노동. 운력이라고도 한다. 공동작업·청소·설거지 등. ● 차수(叉手) 이동할 때나 대화할 때 손을 모으는 자세. 정숙한 태도를 뜻한다. 오른손을 명치 아래쪽에 대고 그 위에 왼손을 얹은 다음 양 엄지손가락을 살짝 포갠다. ● 하심(下心) 자신을 낮추는 일. 상대방을 높여주는 겸손한 마음가짐을 말한다. ● 접족례 엎드려 절할 때 이마를 땅에 댄 뒤 양손을 뒤집어 손바닥을 귀밑까지 살짝 들어올리는 일. 부처의 발을 떠받드는 걸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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