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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풍광과 아름다운 계곡들이 연이어 펼쳐지는 오이라세 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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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혼슈섬 최북단 ‘푸른 숲의 왕국’ 아오모리현
공기 없이 살 수 없는 인간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주는 숲. 하지만 현대인들은 숲을 접하고 살 기회가 거의 없다. 시간을 내어 외국여행을 가도 유명한 대도시 위주로 돌아보다 다시 대도시로 돌아오는 게 우리 모습이다. 웬만한 일본의 대도시를 모두 둘러봤다면, 올해에는 숲을 테마로 한 일본 관광은 어떨까. 일본은 전 국토의 85%에 이르는 곳이 산일 정도로 삼림이 울창하지만 아직까지 일본의 숲은 관광객들에게 제대로 각인된 적이 없다. 우리나라 관광객에게 지금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일본 아오모리현의 숲은 그중에서도 최고로 꼽힌다. 설문조사를 해보면 일본인들이 다시 방문하고 싶은 관광지로 교토 다음으로 꼽는다는 아오모리는 일본 혼슈섬의 최북단에 위치해 있다. 비록 일본의 북부 지방이지만 지난 3월 원전사고를 겪은 후쿠시마로부터는 350㎞나 떨어져 있어 크게 위험한 지역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도쿄는 후쿠시마로부터 200㎞ 떨어져 있으니 오히려 거리상으로는 아오모리가 더 안전한 셈이다. 아오모리는 푸르다(靑)는 뜻의 일본말 ‘아오이’와 숲(森)을 말하는 ‘모리’가 합쳐진 말이다. 이름이 말해주듯 아오모리현 9607㎢ 대지 중 삼림이 70%를 차지한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숲,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숲일 정도로 이곳은 ‘숲의 왕국’이다. 현지 가이드의 말로는 1956년 이후 지속적으로 이곳에 나무를 심은 결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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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산나이마루야마에는 5000여년 전 집터 등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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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모리의 숲 관광으로 가장 일품인 곳은 오이라세 계류(溪流)다. 일본의 메이지 시대 문인인 오마치 게이게쓰가 산책하기 좋은 길로 추천한 숲으로 유명한 이곳은 숲속의 잎 하나도 엄격히 관리하는 도와다 국립공원이다. 너비 1m가량의 산책로 이외에는 사람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돼 있다. 일본철도(JR)가 다니는 하치노헤역에서 내려 버스로 50분 정도면 오이라세 계류 산책코스 들머리에 도착한다. 14㎞ 정도 되는 산책코스를 4시간 동안 차분하게 모두 걸어보는 것도 좋고 중간부터 짧은 시간 걸어보는 것도 좋다. 반백년 나무 심었더니…여기도 숲 저기도 숲
오이라세 계류의 숲은 ‘삼림욕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느껴질 정도로 울창한 숲이 일품이다. 야생곰이 살아 있을 정도의 원시림인데 이에 걸맞게 엄청난 높이의 고목들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다. 고목에는 푸른 이끼가 잔뜩 끼어 있어 삼림욕을 즐기다 보면 어느 순간 이끼들이 온몸에 붙어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이리저리 춤을 추던 나무들을 조물주가 어느 한순간 멈춰 세운 것처럼 다양한 모양으로 뻗어 자란 나무들을 살펴보며 걷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산책로는 완만한 경사로 조성돼 있어 노약자가 걸어도 무방한 수준이다. “쭈잇쭈잇 쭈르르. 삐리리리 삐리리리.” 노래하는 새소리에 얹혀오는 시원한 바람은 발걸음을 절로 가볍게 만든다. 오이라세 계류의 ‘오이라세’는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여울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산책코스로 깊이 들어갈수록 뛰어난 풍광의 계곡물을 만날 수 있는데 협곡의 험준한 정도에 따라 다양한 물살이 기다리고 있다. 지옥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모습의 아수라 급류,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단실처럼 얇은 물줄기가 아름다운 시라이토노타키, 울퉁불퉁한 바위에 부딪혀 계단처럼 내려오는 구단노타키 등 크고 작은 14개의 폭포를 살펴보는 것도 산책의 재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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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다신사에는 8세기 초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 장군의 위패가 보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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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 마지막에 나오는 조시오타키 폭포가 그중에서도 제일이다. 너비 20m, 높이 7m의 비교적 작은 폭포인데 이 폭포는 ‘도쿠리’라는 재미있는 별칭을 달고 있다. ‘도쿠리’는 목이 얇은 호리병을 뜻하는 일본말로, 고대 일본인들은 산신령이 오이라세 계류의 원천인 ‘도와다호수’의 술병을 기울여 이 폭포를 만들어냈다고 믿었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이 폭포는 푸르스름한 옥빛을 띠고 있다. 마치 ‘신선들의 청주’가 콸콸 쏟아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오이라세 계류를 봤다면 그다음은 도와다호수를 봐야 한다. 도와다호수는 계곡의 꼭대기에 있는 둘레 44㎞의 엄청난 크기의 호수인데 20만여년 전 화산의 분화로 생긴 거대한 칼데라호다. 이 도와다호수의 물이 흘러내려 오이라세 계류가 형성되는 것이다. 해발 400m에 위치해 있고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이 326.8m에 이른다. 도와다호수는 규모가 워낙 커서 호숫가에는 얕은 파도가 친다. 아오모리 특유의 낮게 깔린 구름이 마치 호수를 품고 있는 듯한 모습은 그 자체로 장관이다. 하늘빛을 그대로 머금은 이 호수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50분 코스의 유람선을 타보는 것이 좋다. 연인이라면 오붓하게 오리배를 타볼 수도 있다. 현지 가이드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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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조각가가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그리움을 담아 만들었다는 도와다 호숫가의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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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다호수의 마지막 산책 코스인 도와다신사로 발걸음을 옮겨 보자. 8세기 초에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 장군을 모시려고 창건된 이곳은 신사로 걸어들어가는 5분여간의 숲길이 인상적이다. 높이 50m의 삼나무 고목들이 일렬로 배치돼 있는데 숲이 워낙 울창해 햇볕이 들지 않을 정도라 음습한 느낌마저 든다. 이 때문에 숲길을 걷다 보면 미지의 세계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관광객이라면 숲길 끝에서 만화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치히로가 발견한 신비의 세계를 마주할지도 모른다. 산책길 따라 즐비한 폭포, 거대한 호수 하루 일정을 잡아 시라카미 산지를 들러보는 것도 아오모리 삼림 관광의 필수다. 시라카미 산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1993년 세계자연유산에 등재시켰을 정도로 중요한 삼림자원인데 일본 북부 아오모리현과 아키타현에 걸쳐 13만㏊에 이르는 곳이다. 너도밤나무 원시림이 일품이고 그 외 물참나무군락·호두나무군락 등도 형성돼 있다. 일본원숭이와 딱따구리 같은 다양한 동식물도 다수 살고 있다. 오래전에 사라져버린 일본 열도의 원시 상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라 <원령공주>를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도 이곳을 들러 작품의 배경을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다만 깊은 원시림은 보호구역이라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다. 대신 산책코스가 따로 지정돼 있는데 시라카미 산지의 매력을 느껴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산책을 하다 보면 간간이 시원한 시냇물을 발견할 수 있다. 3초 이상 손을 대면 통증을 느낄 만큼 한여름에도 얼음장처럼 차갑다. 등줄기를 흘러내리는 땀을 차가운 시냇물에 식힌 뒤 미야자키 감독이 직접 녹음해 갔다던 이곳의 새소리를 지그시 들어보는 것도 좋다. 아오모리(일본)=글·사진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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