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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행자들이 탄 요트. 멀리서 찍은 모습은 한가로워 보였지만, 요트 위의 선원들은 정신없이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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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섬 왕복 ‘첫 요트 항해’ 꿈 이룬 초보자들…초호화 아닌 ‘초고강도 스포츠’
길게는 1년부터 짧게는 단 4개월 전 요트를 처음 만난 사람들 20명은 지난 12일 겁도 없이 부산 해운대 수영 요트선착장에서 일본 쓰시마섬(대마도)으로 향하는 크루즈 요트에 몸을 실었다. 떠날 때는 말끔하고 깔끔한 도시인들이었던 그들. 3박4일, 33시간의 요트 항해를 마치고 난 뒤, 뱃사람이 다 되었다. 하얀 얼굴은 오간 데 없었고, 빨갛고 까만 얼굴빛에 흰 이가 도드라져 보였다. 항해를 마친 이들이 털어놓은 항해기를 시간대별로 재구성했다. 언젠가는 멋진 풍모로 여유롭게 요트를 타보리라 생각하는 분들. 이들의 환희와 고통에 찬 이야기를 들어보고 결정하실 일이다.부산(해운대)=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사진 제공 김태환, 송현정
8월12일 오후 2시 서울역→ 응원부대 없어도 패기는 국가대표급
서울역 7번 탑승장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회사로 출근을 했다가 이른 퇴근을 하고 온 사람들은 헐레벌떡 뛰어와 말끔한 캐주얼 정장을 벗고, 편안한 항해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이동기씨와 김치환씨는 올해 4월 처음 요트를 만났고 바다 건너기는 처음이다. 얼굴에는 설레는 빛이 스쳤고, 웃음은 가득했다.
서울에서 출발은 하지만,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무슨 소리? 막무가내로 바다로 돌진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뜻에 달렸다. 바닷길이 열려야 요트를 탈 수 있다. 이날 바닷바람이 초속 10m 이상으로 불 것이라는 기상예보가 있었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아예 요트를 못 띄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망설이는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기차가 떠나기 5분 전 기념사진을 찍었다. 휴가 떠나는 인파만 북적일 뿐 어느 누구의 응원도 없었지만, 패기는 국가대표 선수들 못잖았다.
밤 9시 부산 수영만 요트 선착장→ 짙은 안개로 회항 뒤 재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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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트에 올라 한가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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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10명씩 두 척의 요트에 나눠 탔다. 한 척에는 지난 6월 코리아국제요트대회에 참가해 항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다른 한 척에는 요트 교육 수료 4개월 경력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탔다. 4개월? 너무 짧은 것 아닌가? 게다가 한강도 아니고, 바다를 건넌다는 사람들이? 짧은 경력은 맞지만 그렇다고 요트 항해를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19명의 교육을 도맡고, 이번 항해에서 캡틴을 맡은 김초성 한국해양소년단연맹 세일링아카데미 교육팀장은 “초등학생도 교육을 받으면 쓰시마섬 항해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안전을 위해 고려해야 할 것은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크게 겁먹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어둠이 깔린 바다로 배는 나아갔다. 하지만 하늘은 쉽게 바다를 열어주지 않았다. 김 팀장은 수영만을 떠난 지 1시간 만에 회항을 결정했다. 애초에 걱정했던 강한 바람 때문이 아니었다. 바다 수면 위로 낮게 깔린 안개가 문제였다. 이걸로 끝? 하늘은 요트에 탄 사람들을 놀리는 듯했다. 그러나 긴 기다림 끝에 하늘은 다시 기회를 줬다. 때마침 부는 바람과 고운 달빛이 길을 열어줬다. 요트는 밤 12시가 되어서야 수영만을 벗어나 쓰시마섬으로 향하는 바람길을 탔다.
13일 새벽 1시 ‘초행자 요트’ → ‘고생’ 끝에 끈끈한 유대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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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항해에서 캡틴을 맡은 김초성 팀장이 선원들에게 지시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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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바다 항해 경험이 있는 이들은 비교적 여유롭게 조종대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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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기도 했지만, 무섭기도 했어요. ‘과연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바다에서 요트를 처음 타 본 최은정씨에게는 첫 바다 항해가 벅찼다. 친구 따라 요트를 배운 그는 “바람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바다에서 나고 자라, 물에서 놀던 향수를 이기지 못해 요트를 시작한 김치환씨는 항해를 하는 동안 안경은 바다에 빠뜨리고, 모자는 바람이 훔쳐가버렸지만 싱글벙글이다. “일단 선착장을 떠나면 끝까지 목적지를 향해 가야 하는 겁니다. 혼자 못하겠다고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죠. 바로 그게 항해의 또다른 매력이에요.”
항해 초행길에 나선 사람들은 부산에서 쓰시마섬까지 22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보냈다. 누가 요트 위에서 와인 한잔 마시는 장면을 꿈꾸는가?
“요트의 낭만이요? 말도 마세요. 기우는 배에서 왔다갔다, 돛 올리고…. 비키니까지 챙겼는데 에휴 그거 입을 정신 없더라고요.” 배성민씨는 가방 속 비키니를 꺼내보지도 못했다. 어떤 이는 온몸이 멍 때문에 얼룩무늬가 됐단다.
이동기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개, 고, 생! 안 타봤지만 노예선이나 새우잡이배가 따로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니까요. 당분간 항해는 안 나갈 거예요.” 바다에서의 첫 항해 경험은 이렇게 기억됐다. 이씨는 22시간 동안 밥도 잠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한 배를 타고 팀을 이뤄 항해까지 떠나본 경험은 그에게 ‘개고생’ 말고도 ‘폭넓은 인간관계’라는 열쇳말을 남겼다. “무엇보다 고인 물에서 만날 봐 온 회사 사람들만 알다가 이렇게 하루 종일 항해하며 부딪치고 나니 끈끈한 유대감이 생기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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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섬 앞바다에 띄운 요트 위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항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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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경험자 요트’ → 고요한 밤바다 적시는 달빛 환상적
바다 항해를 한두번 해본 유경험자들이 탄 배의 분위기는 비교적 여유로웠다. 22시간 동안 세끼 식사를 꼬박꼬박 챙겨먹고, 잠도 잘 만큼 잤단다.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것은 아름다운 달빛이었다. 음력 보름 하루 전이라 달은 휘영청 밝았더랬다.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도란도란 앉아서 이야기도 나누고…. 바닷물이 뱃전을 치는 소리만 간간이 이어질 뿐이었죠.” 김태환씨는 달빛 아래 요트 안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며 행복해했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면서 관련 사진도 찍는 김씨가 요트를 배운 지는 1년째다. 김씨는 실은 가수 이문세를 찍는 사진작가로 유명하다. 이문세씨도 김씨의 권유로 요트를 배웠단다.
이수현씨는 스스로를 “서울 촌놈”이라고 불렀다. 그도 그럴 것이 난생처음 케이티엑스(KTX)를 타보고, 요트를 타고 쓰시마섬 항해를 떠난 그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바다 한가운데서의 고요함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바닷물 포말이 터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니까요.”
“오토바이를 몰다가 그만두고 다른 운동을 찾다 요트를 시작했다”는 안종태씨. 그는 이번 항해에서 ‘내비게이터’의 역할을 맡았다. 말 그대로 배의 현재 위치 등을 파악해 배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 역할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캡틴의 지시에 맞춰 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도 해야 했다. 몸을 정신없이 움직인 덕에 뱃멀미는 심하지 않았단다. 그 고생을 하고도 “앞으로 기회가 생긴다면 꼭 요트 경기에도 참가해보고 싶다”는 안씨다.
8월13일 저녁 7시 쓰시마섬 → “요트인의 마지막 꿈 세계일주”
“‘와, 살았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초행자들은 22시간 거의 뜬눈으로 지샌 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인 사람들도 있다. 요트를 즐기는 사람들의 마지막 꿈, ‘세계일주’를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전세계에는 요트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을 요티(yachtie)족이라 일컫는다. 이번 요트 항해단의 단장을 맡은 윤재익 헬리한센 부장은 쓰시마섬에서 만난, 요트를 타고 세계일주 중이던 캐나다인 노부부를 부러운 듯 떠올렸다.
오스트레일리아 어학연수 시절, 요트를 즐기는 현지 사람들을 보고 요트를 꿈꿔오다 지난해 말 첫발을 내디딘 정하원씨의 꿈도 “요트로 세계일주를 한번 해보는 것”이다. 꿈이지만 꽤나 구체적이다. “미국에서 싼 중고 요트를 마련해서 한국까지 타고 들어오는 것”까지 계획했다. 다만 언제 그 꿈을 실행에 옮길지는 정하지 못했단다.
이들은 쓰시마섬에서 잠을 잔 뒤 14일 저녁 다시 수영만을 향해 출발해 11시간 만인 15일 오후 1시 항해를 마쳤다. 요트 앞에는 항상 ‘초호화’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요트를 한강에서 처음으로 배우고 쓰시마섬까지 다녀온 사람들 누구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초호화라는 말보다는 ‘초고강도 스포츠’라는 말이 어울려 보인다. 멋들어진 요트 복장은 필요 없다. 다만 반바지가 아니라 긴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정도? 뭣 모르고 반바지를 입고 탔던 한 대원은 종아리에 화상을 입고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절뚝거리며 서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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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좋아요
⊙ 돛(세일·sail) | 바람으로 이동하는 요트에서 가장 중요한 주요 구조물이다. 크루즈 요트에는 보통 메인 세일(main sail)과 집 세일(jib sail)을 단다. 메인 세일은 돛대(mast) 뒤에 부착하고, 집 세일은 돛대 앞쪽에 단다. 돛의 크기는 돛대의 높이에 따라 결정된다. 요트 경기를 할 때 타는 레이싱 요트가 일반 요트보다 돛대의 높이가 더 높고, 따라서 돛의 크기도 큰 편이다.
⊙ 돛대(마스트·mast) | 돛을 매다는 지지대이다. 돛대가 1개이면 슬루프(sloop), 2개 이상이면 스쿠너(schooner)라 한다.
⊙ 선체(헐·hull) | 선체가 하나인 요트는 모노헐, 2개 이상인 경우는 멀티헐이라고 분류하기도 한다.
⊙ 방향키(러더·rudder) | 선체의 좌우 진행 방향을 조종하는 키이다. 러더 자체는 선체 바닥 뒤쪽에 달려 있고, 러더에 이어진 조종대는 자동차 운전대와 비슷하게 생겼다. 조종석은 콕피트(cockpit)라 한다.
⊙ 킬(keel) | 선체 아래 중간쯤에 부착된 구조물. 선체가 전복되지 않도록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구실을 한다. 보통 선박 전체 무게의 30%를 차지한다.
⊙ 스테이(stay) | 돛대를 지지하는 역할을 하는 구조물. 선체 앞쪽의 것을 포스테이(forestay), 뒤쪽 것을 백스테이(backstay)라 한다.
⊙ 선장(스키퍼·skipper)과 선원(크루·crew) | 선장은 조종대를 잡는 사람이다. 선원은 선장의 지시에 따라 바람을 더욱 효율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돛을 조절하고 이동하는 등의 구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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