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9.01 11:36
수정 : 2011.11.0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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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은 정치 중? 시민들은 노는 중!/ 일러스트레이션 최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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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적막강산 근엄한 국회의사당
문턱 닳고 담장 무너지도록 누벼볼까
후끈후끈 늘어지던 어느 여름날, 페이스북을 뒤적거리다 발견한 사진 한 장. 독일인 친구가 베를린 국회의사당 앞 잔디밭에 선글라스를 낀 채 엎드려 있었다.(사진) 오홋, 멋진데? 고혹적인 유럽풍 건물 위에 유리를 휘감은 세련된 돔이 있는 국회의사당.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멋진 건물 앞에서 한가로이 휴식을 즐기는 이 풍경. 한마디로 멋.있.다.
질투와 부러움의 마음을 누르며 여의도로 향했다. 건물 크기로는 베를린 국회의사당에 뒤지지 않을 우리의 국회가 있는 곳으로. 36년째 여의도 터줏대감을 자처하고 있는 우리의 국회의사당. 서강대교 건너 끝없는 듯 뻗은 담장 너머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처럼 국회의사당이 적막하게 홀로 서 있었다. 왠지 쓸쓸해 보였다. 텔레비전 뉴스 속 배경이라면 모를까 시민의 일상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그 모습. 그렇지, 너도 외.롭.지?
눈을 감고 국회를 그려본다. 국회 안 잔디밭에선 아이들이 소리 지르며 뛰놀고 아름드리나무 아래 으슥한 구석에서는 연인들이 뜨거운 밀애를 즐긴다. 잔디 깎는 직원들만 있는 게 아니라 잔디 밟으며 축구 즐기는 조기축구회 사람들도 있다. 축구 전반전 뒤에는 물 뿌리는 인디 밴드의 시원한 공연은 어떨까. 일상 속 축제와 휴식이 넘치는 곳. 남의 동네 아닌 우리 집 앞마당같이 푸근한 곳. 외로움에 몸부림쳐온 우리 국회의사당도 그려왔던 모습 아닐까.
한동안 걸어잠갔던 문을 열고 손님들을 맞았지만, 우리 국회의사당은 너무나 오래 적막했나 보다. 도통 사람들과 친해지는 방법을 모르는 것만 같다. 사람이 공간을 만들고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 시민들이 먼저 국회의사당과 친해져 볼 이유다. 여러 사람이 오가면 국회 담장도 낮아지고 문턱도 닳아 없어지리.
오늘부터 18대 마지막 정기국회가 열린다. 할 일이 산더미인 국회의원들이 끝 모를 회의에 열중하는 동안, 우리는 국회 안 곳곳을 누비며 마음속 장막을 걷어 보자. 자, 다 함께 소리 질러 봐! 의사당 프리~덤!
글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최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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