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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9.01 16:32 수정 : 2011.09.01 16:32

청송 파천면소재지 관1리 앞 용전천 물길에 놓인 징검다리.

외씨버선길 ④ 경북 청송 용전천 물줄기 넘나드는 13km

경북 내륙 깊숙이 자리한 청송. 부르기만 해도 푸른 솔바람이 이마를 스칠 듯한 이름이다. 초가을 청송의 빛깔은 유난히 붉기도 하다. 익어가는 사과와 고추 때문이다. 어느 길을 걸어도 좌우로, 제철 맞은 사과 향기와 고추 내음이 줄기차게 따라붙는다. 외씨버선길(영월~봉화~영양~청송) 청송 1단계 구간은 주로 선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길이다. 청송읍 운봉관에서 청송한지체험장까지 약 13㎞를 걷는다.

운봉관은 조선 세종 때 처음 지어진, 청송도호부의 객사다. 가운데 정청과 좌·우 양 익사로 이뤄진 객사 건물은 우익사만 옛 모습이다. 정청과 서익사는 일제 강점기에 헐렸던 것을, 2008년 복원했다. 객사 앞의 대형 누각 찬경루도 세종 때 처음 지어진 이래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친 건물이다. 누각에선 용전천 물길과 건너편의 바위절벽 현비암, 보광산 자락이 바라다보인다. 여기서 청송 심씨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청송은 조선시대 4명의 왕비와 13명의 정승을 배출했다는 청송 심씨의 본향이다. 세종의 정비 소헌왕후도 이 중 하나로, 현비암은 소헌왕후를 상징한다. 보광산은 청송 심씨의 시조묘가 있는 곳으로, ‘찬경루’란 이름은 ‘보광산의 소헌왕후 시조묘 쪽을 바라보니 찬미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신기1리 박씨 효부각 옆 사과밭.

객사 옆에 모아놓은 선정비 무리를 보고 읍내 거리를 걸어 청송시장으로 향한다. 청송장(4, 9일장)은 진보장(3, 8일장)과 함께 청송의 대표적인 오일장이다. 내외관이 깔끔하게 정리된 현대식 시장이지만, 장날이면 주변 마을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모여들어 채소, 과일 좌판을 벌이는 정겨운 장터가 된다. 거리에선 각종 펼침막들이 펄럭인다. ‘객주의 김주영 작가와 함께하는 청송 문학의 밤’을 알리는 펼침막(김주영은 청송 진보면 출신)과 함께 청송농민회의 ‘4대강이 니끼가, 쌀 문제나 해결하라’고 적힌 4대강 공사 반대 펼침막도 내걸렸다.

벼이삭 영근 논길엔 가을 내음 물씬

현비암 바라보며 월막교(월막리는 청송읍 소재지 마을) 건너 용전천변으로 이어진 자전거길을 따라 걷는다. ‘수달 생태공원’이라 이름 붙인 2.8㎞ 길이의 강변 산책로다. 산책로 옆에서 덩굴식물 제거작업을 하던 공공근로요원 김종훈(65·청송읍 덕리)씨를 만났다. “이기 호박덩굴도 아니고 박도 아니고, 첨 보는 외래종인 기라. 싹 다 치와뿌리라카데예.” 덩굴식물은 수입종인 가시박으로, 번식력이 강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청송군청 서수환 계장)

강변길에선 메뚜기들이 제철을 만났다. 벼메뚜기도 송장메뚜기도 이리 뛰고 저리 날며 난리들인데, 길섶 풀잎에는 방아깨비·사마귀들이 미동도 없이 앉아 있다. 메뚜기 밟을라 조심조심 걷는 길 옆으론, 삼색 코스모스들이 하나둘씩 해맑은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물길 벗어나 대추나무밭·콩밭·깨밭·고추밭·사과나무밭으로 이어지는 논길엔 가을 내음이 물씬하다. 가을 내음은 물씬해도 정작 논길에선 메뚜기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농약 때문이다. 어쨌든, 지독했던 폭우를 견뎌낸 벼이삭은 묵직하고 믿음직스럽게 영글어 고개를 숙였다.


용전천변 산책로 고추밭에서 만난 서춘대·김태순씨 부부.
개망초·마타리 흔들리는 숲길로 올라 농가 지나 잠시 걸으면, 소나무 거목들이 짙은 솔바람을 내뿜는 벽절정에 이른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가 순절한 벽절 심청 선생을 기려 세운 정자다. 벽절정 뒤 별동산 너머에 송소 고택으로 잘 알려진 마을 덕천리가 있다. 여기서 덕천리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별동산으로 올라 주민들이 마련한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거나, 다시 돌아나가 914번 지방도 만나 찻길 옆으로 조성한 샛길 따라 가면 된다.

덕천리는 청송 심씨 집성촌으로, 지난 6월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슬로시티로 인정받은 전통마을이다. 조선 영조 때 만석꾼이던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1880년 지었다는 아흔아홉칸의 한옥 송소 고택과, 1933년 지은 찰방공 종택 등 아름다운 한옥들이 즐비하다. 안동에서 시집왔다는 찰방공 종택의 김순한(58·덕천1동 동장)씨는 “지금도 주민 90%가 청송 심씨”라며 “이 집이 이 바닥에선 종택인데, 주민들이 다 20촌 안쪽의 한집안”이라고 설명했다. 고택들의 수많은 방은 사철 한옥숙박 체험용으로 개방된다. 숙박객들은 전용 식당인 소슬밥상에서 식사하며 천연염색 체험을 할 수 있다.

사과향기·고추내음 길 따라 흘러다니네

마을을 나와 “최근 들어 저녁이면 반딧불이들이 자주 눈에 띈다”는 덕천교 건너면, 한동안 강변 산책로가 이어진다. 왼쪽엔 칡덩굴과 아까시나무숲이, 오른쪽으론 논과 밭이 이어지는 다소 지루한 강변길이지만, 잔풀 발로 걷어차며 걷노라면 검은 날개 가는 몸매의 물잠자리들이 앞장서 길 안내를 해준다. 상주~영덕 고속도로 다릿발 공사장 지나면 강변길이 마무리되고, 중평교 건너편 중평마을(중뜰) 들머리에 쉴 만한 소나무숲이 기다린다. 200년 됐다는 중평솔밭 앞에 정자도 있고 화장실도 있다. 평산 신씨 집성촌인 중평마을에도 판사공파 종택, 서벽 고택, 사남 고택 등 고래등 같은 고택들이 기다린다. 한때 파천면 소재지(1914~1936년)였던 마을이다.

청송읍 ‘수달생태공원’에서 풀베기 작업중인 일꾼 앞쪽에 메뚜기 한 마리가 앉아 있다.
강변길 따라 걷다 물길로 내려서서 징검다리 건너면, 파천면 소재지인 관리로 들어서게 된다. 외씨버선길 안내 팻말은 다시 논길과 고추밭길이 이어지는 강변길로 안내한다. 길은 “아무리 비 놔도(베어 놓아도) 금방 좋아지는(자라나는)” 잡초 길이다. 고추밭에서 “인자 첫물을 딴다”는 서춘대(71)·김태순(70)씨 부부를 만났다. 지난여름 수해 때 탄저병 피해를 봐 고추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김태순 할머니가 맛보라며 한 움큼 따준 빨간 청양고추를 받아 주머니에 집어넣고, 서춘대 할아버지가 “40년 전까지 소구루마 끌고 넘어다녔다”는 한티고개 숲길로 올랐다. 빨간 물봉선들이 반기는 산길은 넓고 완만한데, 어두울 정도로 숲이 우거졌다. 고개 꼭대기엔 ‘소망의 돌탑’이란 팻말을 곁에 두고 돌무더기가 잔뜩 쌓여 있다. 옛날 신기리·옹점리의 어린이들이 이 고개를 걸어 넘어 관리로 통학할 때, 오고 가며 고개 위에 돌을 주워 쌓아놓으면, 고개 밑 밭에서 일하던 부모들이 찾아가 쌓인 돌을 보고는 자녀의 통행 여부를 확인했다고 한다.

신기1리 쪽으로 내려가자 좌우로 즐비한 사과밭에 사람은 안 보이는데, 볼륨을 높인 라디오 소리가 요란하다. 외씨버선길 탐사팀장 김순주씨는 “산자락에서 난데없는 라디오 소리가 나면, 거기가 사과밭이라고 알면 된다”고 했다. 사과를 노리는 새들을 쫓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 라디오 소리는 때때로 폭약 터지는 굉음으로 바뀌기도 한다.

신기1리는 볼거리 많은 마을이다. 400년 넘은 거대한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낡은 흙벽이 그대로인 방앗간과 옛 우물, 정겨운 돌담 등이 곳곳에 남아 있고, 17살에 시집와 병든 시아버지를 자신의 젖을 짜 먹이며 봉양했다는 며느리를 기린 효부각도 있다. 마을 청년회장 황현태(50)씨가 느티나무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어르신들도 나무 옆을 지날 땐 고개를 숙입니다. 군대 갈 때도, 새 차를 뽑을 때도, 이사를 와서도 이 나무에 정성 들여 제를 올리죠.” 신기1리 재배 작물의 60% 이상이 사과다. 마을을 나서면서 보니, 붉은빛을 더해가는 사과밭 중에서도 효부각 옆 나무의 사과들이 유난히 빨개 보였다.

신기리는 전통 한지 생산지이기도 했다. 1920년대까지도 20여집에서 참닥나무를 이용해 한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외씨버선길 1단계 구간 종점이 청송한지체험장이다. 이자성 전통한지 장인(무형문화재 23호)이 7대째 “먹글씨가 전혀 피지(번지지) 않는 한지”를 만들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지 만들기와 한지공예 체험을 진행하는 곳이다. 여기까지 약 6시간. <끝>

청송=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 청송 여행쪽지

차돌박이 든 청국장은 어떤 맛?

가는 길 |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 강릉 방향~원주 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 대구 방향~서안동 나들목. 34번 국도 우회전, 안동시내 거쳐 임하호 지나 청송 진보면 소재지 진안사거리에서 31번 국도 따라 우회전해 청송읍으로 간다.

먹을 곳 | 청송읍 월막리 수궁식당(054-872-3010) 차돌박이청국장 9000원, 쌈밥 7000원, 파천면 관1리 남해식당(054-872-3238) 메기매운탕, 추어탕 6000원, 진보면 소재지 명동식당(054-872-9797) 골부리국(다슬기국) 5000원, 청송읍 부곡리 달기약수탕 주변엔 약수를 이용해 토종닭백숙을 내는 집들이 있다.

묵을 곳 | 송소 고택(054-874-6556), 찰방공 종택(054-873-6502) 등 파천면 덕천리 고택들에서 묵을 수 있다. 1박 7만원 안팎. 청송읍 주변에 주왕산관광호텔과 여러 모텔이 있다.

여행문의 | 경북 북부연구원 외씨버선길 탐사팀 (054)683-0031, 청송군청 문화관광과 (054)870-6240, 파천면 신기1리 청년회장 황현태씨 010-2558-3763, 청송한지체험장 (054)872-2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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